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85) 몬드라곤의 기적
하느님 나라 ‘진리’ 구현하는 공동체
세상 많은 이들로부터 ‘협동조합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스페인 몬드라곤협동조합공동체(Mondragon Corporation Cooperative, 이하 몬드라곤협동조합)는 초대교회 공동체가 누렸을 법한 불평없이 소유물을 나누던 기적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우선 가장 부러운 것이 예수님을 닮은 소통의 모습입니다. 누구든 1만4000유로(약 2000만 원) 이상 출자하면 조합원이 되어 경영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조합원은 출자금 규모와 관계없이 1인 1표를 행사해 이사진을 선출하고 경영진을 임명하는 등 중요한 사안에 자신의 의사를 개진할 수 있습니다.
몬드라곤협동조합이 일궈가고 있는 세상은 자체적인 토론문화에서 잘 드러납니다. 몬드라곤협동조합에서는 조합의 정책이나 운영 방향과 관련해 중요한 사안이 생길 때,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합원들과 소통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감대와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합니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을 수 있는 사안일수록 조합원들 간의 토론은 지루할 정도로 심도있게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이윤을 중시하는 다른 기업들에 비해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몇 배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더 큰 추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이 소통의 힘이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도 몬드라곤협동조합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배경입니다.
몬드라곤협동조합에는 우리 문화에서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회장’, ‘CEO’, ‘사장’, ‘대주주’, ‘재벌’ 등의 개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조합의 주인이 어느 특정인이 아니라 출자를 통해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조합에 속한 공동체에서 직접 공동체를 꾸려가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경영진이라고 해서 일반 조합원에 비해 특별히 큰 혜택을 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합의 임원이나 간부는 전체 조합원들을 위한 봉사정신과 사명감을 바탕으로 더 큰 책임을 지는 자리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이러한 조직문화로 인해 조합의 대표나 간부와 조합원들은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적 가족이라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있고, 이 때문에 모두가 투철한 주인의식을 발휘하며 기적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또한 몬드라곤협동조합에는 ‘해고’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조합 소속 사업체가 착한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서로 도우며, 비록 사업체가 좌초위기에 있다고 해도 노동자들은 해고되거나 쫓겨날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조합 안에서 전직을 위한 교육을 받고 조합에 속한 다른 사업체에서, 다른 일을 하며 새로운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끝까지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점은 조합 내에 일자리가 남아돌아서가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양보함으로써 일자리가 생긴다는 사실입니다. 일자리를 양보한 조합원은 자신이 받던 기본급의 80%를 실업수당으로 받으며 새로운 투신을 위한 모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몬드라곤협동조합 공동체의 모습은 철저한 신뢰와 연대가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몰아닥친 2008년 이후 수많은 기업들이 파산하고 정리해고에 나서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서도 단 한 명의 해고 없이 오히려 1만5000여 명의 신규고용을 창출하며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몬드라곤은 하느님 나라의 진리를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2013년 3월 24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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