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교리상식] (33) 십자가의 길 기도 유래와 의미가 궁금합니다 (상) 십자가의 길 기도는 어떻게 해서 생겨났나요? - 예루살렘에서 14처를 따라 가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있는 순례자들. 성당 안에 들어가면 보통 양쪽 벽면에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시는 모습부터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모습, 십자가에 못박히는 모습, 무덤에 묻히시는 장면 등이 조각이나 그림, 또는 색유리화 등으로 묘사돼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수는 14개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를 십자가의 길 14처라고 하지요. 신자들은 이 14처를 한 처씩 찾아 그 아래에서 기도를 바치는데 이 기도를 십자가의 길 기도라고 부릅니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의 길을 따라가면서 바치는 기도여서 신자들이 특히 사순시기에 개인적으로나 단체로 많이 바치는 기도입니다. 물론 십자가의 길은 사순시기에만 바치는 기도가 아니라 다른 시기에도 얼마든지 바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 기도 유래와 이 기도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십자가의 길 기도 유래 성경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바위로 깎아 만든 무덤, 곧 돌무덤에 묻히셨다고 전합니다(루카 23,53). 그러나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계속되면서 예수님 무덤은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칙령으로 그리스도교가 자유를 얻게 되자 예수님 무덤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습니다. 특히 황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는 예수님 무덤을 찾는 데 열성적이었습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헬레나 성녀는 꿈에 예수님 무덤이 땅 속에 묻혀 있는데 그 위에 아프로디테 신전이 세워져 있다는 말을 듣고는 무덤을 발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성당을 지었습니다. 그 성당이 예루살렘의 예수님 무덤 성당입니다. 예수님 무덤 자리에 성당이 세워지자 사람들은 자연히 이 무덤 성당을 찾아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세기에 예수님 무덤 성당은 특히 참회하는 고행자들의 순례지가 됐습니다. 여기에는 사제들이 중죄를 지은 이들에게 예루살렘 성지순례, 특히 예수님 수난과 관련된 장소들을 순례하라는 보속을 준 영향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순례의 중심은 예수님 무덤 성당이었습니다. 그곳은 또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곳이기도 하니까요. 예루살렘을 순례해 예수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것 자체가 은총의 체험이었지만 또한 성지를 순례하고 온 이들은 전대사를 받는 특전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교통편이 발달한 것도 아닌 중세기에 예루살렘 성지순례는 보통 사람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돈이 많은 사람들, 신분이 높은 사람들, 건강한 사람들만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하고 전대사를 받는다는 것은 공평치 못해 보였지요. 그래서 일부 수도회들을 비롯해서 교회 단체들은 유럽 여러 도시에 예루살렘 예수님 무덤 성당을 본딴 성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성당에는 조각이나 그림 등으로 예수님의 수난과 관련된 장소들을 표시했지요. 이제는 굳이 예루살렘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 성당들이 있는 도시들로 가서도 예수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영적 은혜를 체험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가난한 농부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은 또 다른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각 성당마다 예수님 수난의 길을 묵상할 수 있도록 성당 안에 나무 십자가로 수난과 관련된 주요한 지점(처)들을 표시해 놓은 것입니다. 처는 조금씩 차이가 있긴 했지만 보통 14처로 이뤄졌습니다. 이때가 14세기 쯤이었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교황청에 청원을 해 이 십자가의 길을 따라 기도하는 이들이 전대사를 얻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신자들은 예루살렘을 가지 않아도, 또 큰 도시에 가서 순례하지 않아도 가까운 성당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전대사를 얻을 수 있게 됐습니다. 1731년 교황 클레멘스 12세는 십자가의 길을 오늘날처럼 14처로 고정하면서 교구 직권자(교구장 주교나 또는 교구장에게서 위임을 받은 책임자, 예컨대 총대리)의 허가를 얻어 합당한 방법으로 세운 14처가 있는 성당이나 경당, 순례지 등지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칠 때 전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평화신문, 2007년 3월 4일, 이창훈 기자] [교회상식 교리상식] (34) 십자가의 길 기도 유래와 의미가 궁금합니다 (하) 십자가의 길 기도를 통해 얻는 전대사 지난호에서는 십자가의 길 유래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에도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면 전대사를 얻을 수 있을까요. 물론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 기도를 통해 전대사를 얻으려면 대사를 얻는 데 필요한 일반적 조건(고해성사와 영성체, 교황의 지향을 위한 기도)을 이행하면서 십자가의 길 기도에 따르는 몇 가지 조건을 채워야 합니다. 우선, 십자가의 길 14처가 적법하게 세워진 곳이어야 합니다. 봉헌식을 한 성당에 있는 14처는 적법하게 세워진 14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을 바치고 싶다고 개인이 임의로 14처를 세우는 것은 적법한 14처라고 볼 수 없겠지요. 다음으로, 14처가 있어야 합니다. 14처는 성화나 조각으로 설치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십자가만 있어도 상관은 없습니다. 또 14처 전체를 중단하지 않고 순서대로 바쳐야 합니다. 이밖에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몸소 가신 것처럼, 십자가의 길을 바칠 때는 각 처로 이동하면서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공동체가 한꺼번에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칠 경우에는 주송자만 이동하고 나머지는 그 자리에서 바쳐도 무방합니다. 그렇다면 불가피하게 14처가 있는 곳에서 십자가의 길을 바칠 수 없는 사람들, 예를 들면 병자들이나 감옥에 갇힌 수인들은 전대사를 받을 길이 없을까요. 이들의 경우 적어도 30분 이상 예수님 수난과 죽음에 관해 묵상하면서 기도하면 전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 기도의 형태와 의미 1731년 교황 클레멘스 12세가 십자가의 길을 14처로 고정한 이후 14처 십자가의 길 기도는 오늘날까지 가장 전통적이고 대중적인 기도로 자리잡아 왔습니다. 이 14처는 ① 사형선고 받으심 ② 십자가를 지심 ③ 첫 번째 넘어지심 ④ 어머니 마리아를 만나심 ⑤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짐 ⑥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 ⑦ 두 번째 넘어지심 ⑧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⑨ 세 번째 넘어지심 ⑩ 병사들이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초와 쓸개를 마시게 함 ⑪ 십자가에 못박히심 ⑫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심 ⑬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 ⑭ 무덤에 묻히심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십자가의 길에 예수님 부활을 포함시켜 십자가의 길 기도를 15처로 바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그 자체로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부활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점에서 15처를 포함시키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보는 신학자들도 있고, 반면에 예수님이 묻히신 그 무덤이 또한 부활하신 장소이기에 14처로도 충분히 예수님의 부활까지 묵상할 수 있다고 보는 신학자들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14처로 바쳐야 하느냐 15처로 바쳐야 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느냐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신 때부터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으로 올라 마침내 그곳에서 못박혀 숨을 거두시고 무덤에 묻히시기까지는 비록 거리상으로나 시간상으로는 짧은 여정이지만 예수님의 전 생애를 집약하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죄한 분이 대역죄인으로 낙인찍히고, 놀라운 표징들로 하느님 나라가 이미 와 있음을 선포하시던 분이 십자가의 무게에 짓눌려 무참히 쓰러지십니다. 예수님 공생활에 비춰보면 십자가의 길은 참으로 기막힌 역설이요 반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역설의 길은 마침내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죽음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영광스럽게 부활하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면서 묵상해야 할 것이 있다면 이러한 점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길이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순시기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어봅시다. [평화신문, 2007년 3월 11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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