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교리상식] (51)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에 대해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교황 수위권(首位權)은 교황이 가톨릭 교회에서 으뜸가는 권한을 지닌다는 뜻입니다. 또 교황 무류성(無謬性)은 교황이 신앙과 윤리에 관해 권위를 가지고 선포할 때 그 가르침은 오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수위권과 특히 무류성은 오해의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봅니다. 수위권 교황 수위권은 교회법전 제331조에 잘 표현돼 있습니다. "사도들 중 첫째인 베드로에게 독특하게 수여되고 그의 후계자들에게 전달될 임무가 영속되는 로마 교회의 주교는 주교단의 으뜸이고 그리스도의 대리이며 이 세상 보편 교회의 목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교황이 수위권을 갖는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을까요. 교황 수위권은 교황과 사도들 가운데 으뜸인 베드로와의 관계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사도들 가운데 첫째인 베드로를 교회 반석으로 삼으시고 당신 양들을 잘 돌보라는 사명을 맡기셨습니다(마태 16,18-19; 요한 21,15-17 참조). 둘째, 사도 베드로가 로마 교회의 초대 주교이고, 교황은 초대 주교인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것이 2000년을 이어 오는 가톨릭 교회의 전통입니다. 그래서 사도들 가운데 으뜸으로 베드로에게 주어진 수위권이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에게도 계속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수위권으로, 교황은 교회에서 최고의 완전한 권한을 지니며 이를 언제나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습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교황은 가톨릭 교회에서 입법과 사법과 행정의 최고 책임자입니다. 한 나라에서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은 잘못하면 탄핵을 받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기도 하지만 교황은 본인의 자유로운 사퇴 의사 표시가 없이는 어느 누구도 교황직에서 물러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황을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교황의 수위권은 지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인 교회에 봉사하기 위한 것입니다. 무류성 교회는 교황 무류성과 관련해 이렇게 가르칩니다. 교황이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최고 목자이며 스승으로서 신앙이나 도덕에 관하여 고수해야 할 교리를 확정적 행위로 선언하는 때 그의 임무에 의하여 교도권의 무류성을 지닌다"(교회법전 제749조 1항)는 것입니다. 이 대목은 좀 더 명확히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황의 가르침이 어떠한 경우에 오류가 없는지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황이 ① 교회의 최고 목자이자 스승 자격으로 ② 신앙이나 도덕에 관해 지켜야 할 교리를 ③ 확정적 행위로 선언할 때에 그 가르침은 오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교회법전 제749조 3항은 "어떤 교리도 무류적으로 확정된 것임이 명백히 확증되지 아니하는 한 그러한 것으로 이해되지 아니한다"고 밝힙니다. '이 가르침은 무류적이다' 또는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한 그 가르침을 무류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한국가톨릭대사전」은 '무류성' 관련 항목에서 "'교황에게는 무류성이 있다'는 표현보다는 '교황에 의한 교도권 행사는 일정한 조건 하에서 무류성을 지닌다'라고 함이 옳다"고 적시하고 있습니다. 교황 무류성에 관한 가르침은 1870년에 열린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결정적 교리로 선포됐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라 새롭게 편찬된 보편 교리서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나 보편 교회법인 「교회법전」에서 재확인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또 이 무류성이 주교단에게도 있다고 가르칩니다. 곧 주교단이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과 함께 세계 공의회에서 신앙과 도덕에 관해 확정적으로 고수해야 할 교리를 최상의 교도권으로 행사할 때도 무류성을 지닙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891항, 「교회법전」 제749조 2항 참조). 생각해 봅시다 교황의 무류성은 교황이 어떤 특별한 계시를 받아 새로운 진리를 선포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최고 목자로서 교회에 맡겨진 계시된 진리를 올바로 보존하고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교황 무류성을 이렇게 이해할 때 무류성과 관련된 오해들도 풀 수 있을 것입니다. [평화신문, 2007년 7월 8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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