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교리상식] (55) 성모님은 죽지 않고 승천하셨나요 성모님은 죽은 다음에 승천하셨나요, 아니면 죽지 않고 승천하셨나요? 광복절인 8월 15일은 가톨릭교회에도 큰 축제일입니다. 교회는 이 날을 성모승천대축일로 지내지요. 이 축일은 성모님께서 지상생애를 마친 후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늘로 올라가심을 기념하는 축일로, 모든 신자가 주일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미사에 참례해야 하는 의무 축일입니다. 그런데 이 축일과 관련해서 자주 제기되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성모님의 죽음에 관한 위 질문입니다. 함께 알아봅니다. 마리아 죽음과 승천은 역사적 사실인가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죽습니다. 예수님까지도 죽음을 겪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모님은 죽음을 겪으셨을까요. 이에 대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성경에서도 성모님 죽음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성모님 죽음과 관련해서 서방 교회(오늘날의 로마 가톨릭교회)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성모님께서 죽지 않고 승천하셨다는 믿음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동방 교회(오늘날 정교회)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성모님께서 죽으신 후 승천하셨다는 믿음이 더 많았습니다. 말하자면 성모님 승천에 대해서는 같은 생각이었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의견이 달랐다고 할 수 있지요. 이 문제를 더 깊이 생각하기에 앞서 몇 가지 측면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첫째로 성모님은 언제까지 사셨을까요. 의견이 참으로 다양합니다. 예수님 승천 후 3일 만에 죽으셨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승천 후 15년을 더 사셨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느 것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성모님이 죽으셨다면 어디에 묻히셨을까요. 예루살렘이라는 주장도 있고, 에페소라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확실한 한 가지는 어느 곳에서도 성모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는 역으로 성모님의 승천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는 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 죽음과 승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이제 성모님의 죽음과 관련해서 좀더 생각해 봅니다. 그리스도교 교리는 죽음이 죄의 결과라고 가르칩니다. 인류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께 불순명한 죄 곧 원죄를 범한 대가로 죽음이 세상에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죄의 결과인 죽음의 세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하심으로써 극복됐습니다. 새 아담인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죽음이 아닌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게 된 것은 마리아의 순명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래서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신 마리아를 교회는 또한 새로운 하와라고 부릅니다. 옛 하와는 불순종으로 세상에 죽음을 가져다주었지만 새 하와는 순명으로 생명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여기서 좀더 생각해 봅니다. 성모님은 죽음을 물리치고 생명을 주시는 분, 생명 자체이신 하느님 아들을 낳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원죄를 안고 태어나는 다른 모든 사람과 달리 성모님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다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성모님은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이유에서 초기부터 그리스도 신자들은 성모님께 '죽음'이라는 표현 대신 '잠듦'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더 나아가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권능으로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하여 승천하셨다면, 당신의 혈육을 취하게 하신 어머니 마리아에게도 똑같은 부활과 승천의 영예를 안겨주지 않으셨을까요. 다만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경우는 당신 자신의 신적 권능으로 부활하고 승천하셨지만 성모님 경우는 자신의 권능이 아니라 예수님 권능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예전에는 성모 '승천' 대신에 성모 '몽소 승천'(蒙召 昇天)이라고 썼지요. 이 믿음이 이어지고 깊어지면서 마침 내 교황 비오 12세는 1950년 11월 1일 교황령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Munificenstissimus Deus)을 통해 성모 승천을 믿을 교리로 선포한 것입니다. "원죄 없으신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께서는 '지상 생애의 여정이 끝난 다음' 그 영혼과 육신이 '천상의 영광 안에 받아들여지셨다.'" 이 교리에서 죽은 다음이 아니라 '지상 생애의 여정이 끝난 다음'이라고, 또 천상의 영광 안에 '드셨다'가 아니라 '받아들여지셨다'라고 표현한 이유를 이해하시겠지요. [평화신문, 2007년 8월 12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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