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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회교리: 사유재산제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09 조회수4,106 추천수0

[사회교리] 사유재산제도 (1)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돈과 재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신문은 몇 쪽을 할애하여 주식시세를 전하고 방송은 매일 주가 변동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그리고 재산을 관리하고 불리는 투자와 재테크에 관하여 수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모으고, 자신의 재산을 불릴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노동을 하는 이유가 재산의 획득에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돈과 재산의 축척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돈과 재산은 때로는 인간에게 파멸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가족을 돌보고 자신의 안락한 삶과 미래를 보장해주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돈과 재산을 잘 사용할 수 있을까?

 

 

1. 사유재산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권리를 지니고 있다. 이것을 사유재산권이라고 한다. 이 사유재산권은 자연법에 속한다는 것이 교회의 확고 부동한 가르침이다. 어떤 권리가 자연법에 속한다는 것은 그 권리는 모든 사람에게 인정되며, 국가 권력이나 제도를 통하여 그 권리의 핵심적인 요소를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유재산권이 자연권에 속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은 자연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권리가 있으며, 국가 권력과 사회 제도는 이 권리를 개인에게서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사유재산권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인정되어 온 권리이다. 고조선의 8조 법금에는 도둑질한 자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그 당시 이미 개인의 사유재산이 인정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대 로마에서 가장 먼저 발달한 법도 바로 사유재산과 관련한 것이다. 이와 같이 사유재산권은 인간 사회의 규범 중에 가장 오래된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사유재산이 사회에서 인정되고 있는가? 성 토마스는 사유재산권이 인정되어야 하는 근거를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1) 인간은 자신에게만 속하는 사물을 더 잘 돌보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어느 누구나 모든 사람에게 속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수고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결국 어느 누구도 모든 사람에 속한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는다. 2) 사물을 개인적으로 사용할 때 더욱 질서정연하게 사용하기에 중복이나 혼돈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 3) 개인적인 소유를 통해서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나 자신의 소유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데 비하여 공동의 소유는 사람들 사이에 자주 불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S. Th., Ⅱ-Ⅱ, q. 66, a. 2) 이상과 같은 성 토마스가 제시한 사유 재산권이 인정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사람들이 사회에서 조화로운 삶을 사는 것과 관련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2. 사유재산권의 폐지

 

사유재산에 관한 가르침은 앞에서 보았듯이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서 집대성되었다. 하지만 사유재산에 관한 문제가 두드러지게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 발생한 공산주의라고 불린 사회주의가 나타나면서부터이다.

 

자유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산업혁명은 새로운 생산 체제를 가져옴과 동시에 엄청난 사회적 혼란과 문제를 야기하였다. 즉 생산을 위하여 도시의 육체 노동자들은 기계에 종속되었으며,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도 공장과 광산에서 너무나 혹독한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국의 공장에서는 심지어 5세의 어린이가 장시간의 노동으로 혹사당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한다하더라도 임금은 턱없이 낮았다.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농촌이 피폐하게 되자, 농민들과 가내공업 종사자들은 도시의 노동자로 변모하였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참담한 상황에 빠지게 되어, 자본가는 더 많은 부를 소유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의 모순을 체험한 마르크스(Marx)와 엥겔(Engels)은 사유재산제도를 폐지하고 모든 생산 시설을 공유화 혹은 국유화하여, 국가에 의해 모든 재화를 분배할 것을 요구하였다.

 

Marx와 Engels이 주동이 되어 주로 영국에 거주하는 독일인 노동자로 구성된 공산주의동맹의 국제적 강령인 ‘공산당선언(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을 1848년 2월에 출판하였다. 당시 많은 지성인과 노동자들이 공산당선언에 동조하였고, 이로 인해 1864년 국제 노동자 협회(International Workingmen’s Asso-ciation, 흔히 제 1 인터내셔널이라고 불린다.)가 창설되었고, 1917년 10월 볼셰비키 혁명을 통하여 소련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사회주의 국가가 건설되었다.

 

그 후 소련은 사유재산을 폐지하고 농업을 집단화하고 모든 생산 시설을 공유화 혹은 국유화하여 국가에 의한 계획경제를 실시하였다. 이로 인해 모든 권력이 공산당에 집중되고 개인은 생산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KGB를 비롯한 비밀경찰 조직을 만들었고, 전세계의 공산주의 혁명을 위하여 모든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들의 체제를 반대하는 자를 숙청·추방하였으며, 약 1억의 인구가 공산주의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이는 인류가 어떤 전쟁을 치른 것보다 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3. 사유재산권 폐지의 결과

 

산업혁명 이후의 혼란한 상황을 바라보면서 교황 레오 13세는 목자적 관심과 자부적 사랑을 가지고 당시의 사회문제를 바라보았다. 특히 교황은 당시 사회문제에 대한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들의 해결책에 문제점이 있음을 간파하였다. 그래서 교황은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란 회칙을 통해 사유재산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사회주의자들의 이론에 허구성을 지적하였고 그 결과도 정확히 예측하였다. 레오 13세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요한 바울로 2세 교황은 ‘백주년(Centesimus Annus)’을 통하여 사유재산제도 폐지의 결과를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교황님의 가르침에 따라 사유재산제도 폐지의 결과를 살펴보자.

 

① 인간의 존엄성 침해 : “인간은 ‘자기의 것’이라고 불릴 수 없도록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자유로운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할 능력을 빼앗기면 사회적 메커니즘이나 이것을 통제하는 이들에게 종속된다. 따라서 사유재산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인간 존엄성의 인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며, 진정한 인간 공동체 건설로 이끌어주는 길에 방해가 된다.”(백주년 13)

 

② 노동권 침해 : 인간은 노동을 통하여 자신을 표현하고 실현할 뿐 아니라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을 획득하게 된다. 인간에게 노동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노동을 하는 것만을 의미할 뿐 아니라 노동을 통하여 어떤 결실을 누릴 권리가 있음을 포함하는 것이다. 사유재산은 노동 결실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사유재산을 폐지하는 것은 노동을 통하여 획득한 결실을 착취함으로써 노동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③ 창의성과 자발성 침해 : 사람들이 노동만 하고 그 결실을 자신이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노동의 자발성과 진취성이 사라질 뿐 아니라 경제적 활동에서 창의성이 사라지게 된다. 실제 구소련에서 사유재산을 폐지하고 모든 생필품에 대해 배급제를 실시했을 때, 노동자들의 생산성과 창의성 그리고 노동의 자발성은 사라지게 되었고, 경제적 발전을 기대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소련의 경제는 1960년대 이후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레오 13세에 의하여 예견되었고 요한 바울로 2세에 의하여 제시된 사유재산제도의 폐지 결과는 역사적으로 소련을 비롯한 동구 공산주의 정권들의 몰락에서 명확한 사실로 드러났다. 교회는 사유재산제도를 자연권으로 인정하면서 유물론에 바탕을 두고 사유재산제도를 폐지하는 공산주의를 비판하였다. 이러한 비판은 소련을 비롯한 동구 공산주의 정권들의 몰락과 중국의 변화 등은 복음의 가르침에 기초를 둔 교회의 가르침의 예언적 성격을 잘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1985년 공산권의 종주국이던 소련이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자유화) 정책을 채택함과 동시에 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였다. 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엇보다 사유재산제도를 인정하는 것이며, 이는 사유재산제도가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권을 보호하고 사회의 발전을 위한 개인과 기업의 창의성, 자율성과 진취성을 보장하는 기본권임을 밝히고 있다.

 

 

4. 글을 맺으며

 

우리 사회는 사유재산권이 인정되고 있다. 사유재산권이 인정되는 사회를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라 부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유재산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재산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인생의 목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삶의 도구로 주어진 것이다. 결국 사유재산은 앞에서 보았듯이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권 그리고 인간의 인격적 완성을 위하여 주어진 도구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 자신을 반성해 보자. 더 많은 재산을 가지기 위하여 우리는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피땀을 흘리며 벌어들인 재산은 어쩌면 우리 생명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래서 재산이 중요하며 심지어 우리 삶의 목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재산을 삶의 목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것인가, 아니면 재산을 삶의 도구로 여길 것인가? 이는 우리 자신이 경제적 동물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을 향하는 인격체가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월간빛, 2002년 6월호, 김명현 디모테오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사회교리] 사유재산제도 (2)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돈이란 말로 표현되는 재산이다. 개인의 재산 규모가 그 사람의 능력을 드러내는 척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재산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그 사람의 인격을 가늠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사유재산은 개인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렇다면 사유재산의 사용과 처분은 개인의 자의에 완전히 맡겨져 있는가? 아니면 어떤 기준이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사유재산권의 성격을 파악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사유재산권은 자연권적 특성과 인간의 존엄성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사회적 차원을 지니고 있다.

 

 

1. 사유재산권은 자연권

 

사회주의자들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유 재산권 폐지를 부르짖는데 대하여 교회는 사유재산권이 자연법이라는 논리로 맞섰다. 교회의 이러한 가르침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침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사유재산권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다. ① 사유재산권은 인간 생활의 유익함 때문에 자연법 중  1차적 자연법에서 유래한 실증적 자연법에 속한다. ② 재산 소유는 만민법(Jus gentium)에 속한다. 즉 사적 소유는 재산의 사용을 규제하는 자연적 이성의 산물이다. ③ 자연법에 따라 재산 소유의 구분은 없다. 사적 소유를 정하는 것은 인간에 의해 창안된 실정법에 속한다. ④ 재화를 사적으로 소유하고 분해하는 것은 자연법 혹은 하느님의 섭리를 위반하는 자연법이 아니다.

 

이상과 같은 성 토마스의 이론에 따르면 사유재산권은 실증적 자연법에 속하며, 구체적인 규정은 국가의 법에 의해 정해지지만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은 자연법 혹은 하느님의 섭리를 파괴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성 토마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여 레오 13세는 사유 재산권이 4가지 근거, 즉 인간 이성으로 재화를 활용하고, 미래를 위한 준비를 위해 노동의 결실을 소유할 권리 때문에, 자녀 양육을 위한 가장의 권한에서 자연권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사유재산권은 “자연에 의해서 또는 오히려 창조주에 의해 인간에게 주어진”(사십주년, 19) 것으로 개인보다 국가가 선행하기에 국가는 사유 재산권을 침해할 수 없는 자연법에 속한다.

 

 

2. 사유재산권과 인간의 존엄성

 

사유재산의 획득은 “원래 주인이 없는 물건의 점유나 산업 및 노동, 또는 이른바 분업에 의해”(사십주년, 23) 이루어진다. 사유재산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보장해 주는 수단이다. 따라서 사유재산권은 노동권 및 인간의 자유와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며, 개인과 기업이 창의성과 진취성을 발휘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권리이다.

 

사람들이 노동하는 목적 혹은 근본 동기는 사유재산을 획득하기 위해서이다. 사실 사람들은 노동을 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자기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이유는 자기 생활에 필요한 것을 획득하기 위함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노동을 통하여 획득한 결실을 절약하고 저축하고, 그 결실을 증식시키기 위하여 토지 매입이나 증권에 투자하였다면, 토지나 증권은 다른 형태로 변형된 임금이다. 사실 개인의 재산은 동산이든 부동산이든 이러한 방식으로 축적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사유재산권은 인간이 자신의 노동을 통하여 획득한 것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권리이며, 인간이 근면하게 노동을 하는 동기를 보호해준다. 그러므로 사유재산권은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유용하게 활용하고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권리와 희망을 보호해준다.

 

사유재산을 통하여 인간은 자신의 인격을 표현하고 자신의 임무를 적절히 수행할 수 있다. 특히 사유재산은 가장의 권리와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수단으로 자신과 가족 구성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유재산은 가장에게 있어서 가족들의 부양과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완수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다.(새로운 사태, 9항) 뿐만 아니라 사유재산권은 인간의 자율성을 위해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며, 동시에 책임과 의무를 수행하는 인격체인 인간의 발전을 위해 요청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사유재산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쉽게 다른 사람에게 예속되며, 자유와 존엄성을 잃게 된다. 따라서 사유재산은 가정과 개인의 생활을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며, 아울러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보호하는 수단이 된다.(참조. 어머니와 교사, 45)

 

 

3. 사유재산의 사회적 차원

 

교회는 사유재산권이 자연법에 속한다고 명확히 선언하면서 그 사회적 기능을 다양한 표현을 통하여 강조하고 있다. 사유재산의 사회적 성격이란 재산의 소유와 사용에 있어서 공동선이라는 기준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소극적으로 볼 때 곧 사람들이 모든 것을 자유롭게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소유라 하더라도 자의에 의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어떤 윤리적 기준이 있음을 뜻한다. 다른 한편 적극적인 의미에서 재산의 소유나 사용은 공동선에 합치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유재산의 사회적 차원을 지니는 것은 다음의 네 가지 사실에 근거를 둔다.

 

첫째, 사유재산의 사회적 차원은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느님은 온 인류에게 땅을 주시어 아무도 제외되거나 특권을 누리지 않고 그 모든 구성원들의 생계를 유지하게 하셨다. 여기에 지상재화의 보편적 목적의 근거가 있는 것이다.”(백주년, 32)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한 것은 어떤 특정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세상의 모든 재화는 궁극적으로 어떤 특정인에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에 속한 것이다. 여기서 온 인류란 오늘의 인류뿐 아니라 미래의 인류까지도 포함하여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세상의 재화를 인간이 소유하고 관리하는 권한인 사유 재산권은 재화의 근본적인 목적, 즉 전 인류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둘째, 재산을 소유하고 사용하는 것은 인간의 행동이며 그 행동의 주체는 인간이다. 인간의 행동은 자신의 인격을 표현하는 것인데, 재화의 소유와 사용 역시 하나의 인간 행동이기에 인간은 재화의 소유와 사용에 있어서 자신의 인격을 표현하고 실현하여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 본성 때문에 사회 안에서 태어나고 성숙하며, 사회를 통해서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인간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이는 곧 인간은 다른 사람과 사회적 그물망(web) 속에서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이 하는 어떤 개인적인 행동이라도 다른 사람과 전혀 관련이 없는 행동은 있을 수 없다. 특히 사회에서 한정된 재화를 소유하고 관리하는 사유재산권의 행사는 항상 다른 사람과 관련을 맺고 있다. 따라서 인간이 자신의 행동으로 재화를 소유하고 사용할 때 개체만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을 지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사유재산권을 “개인과 가정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소유하는 권리”(백주년, 6)이며, “인격의 자율과 발전을 위한 기본적인 권리”(백주년, 30)로 파악하고 있다.

 

셋째, 인간은 노동을 통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재화를 획득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사유 재산의 기원이 노동에 있다고 본다. 인간은 노동하는 중에 역사적 차원을 지닌 도구와 기술을 사용하고 습득함으로써 다른 사람들과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다른 이들과 더불어 노동하며 다른 이를 위하여 노동하기에 노동은 사회적 차원을 지니고 있다. 즉 현대사회에서 노동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더불어 일하며, 다른 사람을 위하여 노동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노동이 사회적 차원을 지니고 있다면 노동의 결실로 소유하게 되는 재산 역시 사회적 차원을 지녀야 한다. 왜냐하면 노동과 사유 재산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결과는 원인에 근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넷째, 사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적 차원이 필요하다. 성 토마스와 레오 13세 교황은 재산권이 자연권이며 인간의 본성과 평화로운 사회생활을 위해 필요하다고 보았다. 사유 재산의 소유와 가진 자들의 지나친 사치와 낭비는 사회적 불만과 분열을 초래할 수 있기에 사유재산의 소유와 사용에도 사회적 차원이 존중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19세기 말의 상황과 빈부 차이가 극심한 국가에서 일어나는 사회적·정치적 불안이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사실 “성실한 관찰자는 누구나 지나친 부를 소유한 소수와 궁핍하게 하는 다수의 큰 차이가 현대 사회에서 심각한 해악이 되고 있다는 것을”(사십주년, 27) 쉽게 깨달을 수 있다.

 

 

4. 글을 맺으며

 

사유재산권은 자연권으로써 국가도 함부로 침해할 수 없다. 그러나 사유재산권의 사회적 성격 때문에 재산의 소유와 사용에는 공동선과 합치하여야 한다. 결국 사유재산권은 자연법적 권리인데 이는 절대 불가침의 권리가 아니라 공동선과 사랑과 정의의 의무에 의하여 제한을 받는 권리라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다. 사유 재산권의 이러한 특성을 우리는 사회적 차원 혹은 사회적 성격이라 부르며, 이것이 사유 재산권의 행사에 윤리적 기준점을 제공한다.

 

사람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재산을 소유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자신에게 관리가 맡겨진 것으로 생각하고 소유하고 사용하여야 한다. 우리는 재산의 소유에 비례하여 사랑과 정의의 의무에 따라 인류의 공동선을 위하여 더 큰 봉사를 하도록 불리었다는 사실을 상기하여야 한다.

 

달리 말해서 하느님께 속하는 재화를 이 세상에서 임시로 자신의 것으로 사용하는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재화가 바로 남을 위한 사랑과 봉사의 수단으로 주어졌음을 상기하여야 한다. 내 주머니에 있는 나의 돈은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사랑과 봉사의 삶을 사는 수단으로 주어졌음을 잊어버리지 말자. 돈은 삶의 수단이며 영원한 구원을 얻는 수단이지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월간빛, 2002년 7월호, 김명현 디모테오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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