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가톨릭교회 교리서] 성령, 예수 그리스도의 영
숨을 쉰다는 것은 살아있음을 뜻합니다. 살아있음은 그 자체로 움직이거나 변화(성장)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숨’은 움직이지 않는 것을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도 ‘숨(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존재하심’에 의존해 있듯이,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것도 하느님의 ‘살아계심’에 의존해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에서 비롯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생명이란 그들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하고 그 신앙이 성장할 수 있게 하는 능력입니다. 신앙이 ‘살아있게’ 하는 힘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이 세상에 생명을 부여하시는 하느님의 영과 그리스도인에게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같은 성령이라고 고백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한 위격이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가톨릭교회 교리서」(이하 ‘교리서’)가 가르치는 것과 교리서가 인용하는 성경구절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령’에 대한 교리서의 가르침
‘성령’에 대해 교리서는 먼저, 그리스도를 만나려면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며 성령께서는 구원계획의 처음부터 끝까지 성부와 성자와 함께 일하신다고 가르칩니다(683-686항).
교회는 성령을 성경, 성전, 교도권, 성사, 기도, 은사, 삶의 표징들과 성인들의 증거 안에서 인식합니다(687-688항).
성자와 서로 구별되면서도 분리되지 않고 함께 성부에게서 파견되신(689-690항)성령께서는 ‘보호자(파라클리토)’라는 칭호를 가지고 계시며, 물, 기름부음, 불, 구름과 빛, 인호, 안수, 손가락, 비둘기 등의 상징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지신 분이십니다(691-701항).
하느님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말씀이신 성자와 함께 구원의 경륜 안에서 활동하셨습니다. 창조, 하느님 발현, 이스라엘을 선택하고 그들이 ‘기름부음받은이(그리스도)’와 그분의 영을 기다리게 하는 과정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과 영의 활동은 절정을 향합니다(702-716항).
그리고 때가 찼을 때 성령께서는 세례자 요한과 마리아를 통하여 세상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셨습니다(717-726항).
강생하신 말씀이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중에는 성령을 충분히 드러내지 않으시다가, 죽음이 다가오자 성령을 약속하시고 또 부활하신 다음에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십니다(727-730항).
제자들이 성령을 받음으로써 지극히 거룩한 삼위일체가 계시되고 교회의 시대가 시작됩니다(731-732항). 성령께서는 사랑이신 하느님의 선물이시며 교회 안에서 성사와 신자들의 삶과 기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의 공동 사명을 성취하십니다(733-747항).
‘성령’에 대한 교리의 근거가 되는 주요 말씀들
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에는 성령의 영감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 아래서 이를 읽을 때 우리는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성령’에 대해 교리서가 인용한 성경구절 중 일부를 정리해 봅니다(왼쪽 표 참조).
‘성령을 통해 쓰인 성경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계시헌장, 12항)는 원칙처럼, 교회 공동체는 성경을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해석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해석 안에서 성령에 대한 가르침을 정리한 것이 바로 위에 언급된 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신 예수님
‘성령,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주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시는 요한 복음 20장을 중심으로 성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1-22).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심으로써 제자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요한 20,22에 번역된 ‘숨을 불어넣다.’의 원어는 ?μφυσ?ω(엠퓌사오)입니다.
같은 단어가 칠십인역 창세 2,7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에서 ‘불어넣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태초에 이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숨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불어넣어 주시는 그 숨은 사람을 사람이 되게 하고,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생명’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같은 성령이십니다.
이 요한 20,21-22를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인용합니다.
“마침내 예수님의 때가 왔다(요한 13,1; 17,1 참조). 예수님께서는 당신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는 그 순간에 당신의 영을 성부의 손에 맡기신다(루카 23,46; 요한 19,30 참조).
이리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로마 6,4)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성령을 주신다(요한 20,22 참조).
이 ‘때’부터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명은 교회의 사명이 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730항).
성부께서는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성자와 성령을 파견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받음으로써 성자와 성령께서 받은 같은 사명을 수행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우리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되며,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듯이 우리도 그분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로마 8,15).
성령, 예수 그리스도의 영
성령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리는 그분을 우리에게 풍요로운 은사와 능력을 주시는 분으로 여깁니다. 실제로 성령께서는 교회 안에 생명과 활기를 일으키시고 신자들 각자의 삶 안에서 열매를 맺으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지금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에게 능력과 힘을 주시는 그 성령께서 바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던 하느님의 영(창세 1,2), 사람에게 주어진 생명의 숨(창세 2,7),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불어넣으셨던 숨(요한 2,22), 그리고 오순절에 제자들 각자에게 내려앉으신 성령(사도 2,4)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주어졌다는 것은 세상 창조부터 시작된 구원의 역사 안에 활동해 오신 바로 그 영을 내 안에 모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에 매여있는 내 자신이 시공을 넘어선 창조와 구원의 신비 속에 머물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자를 사람이 되게 하시고 성자께서 사명을 수행하도록 움직이시던 그 성령께서 이제 우리 안에서 같은 일을 하십니다. 우리 안에서 머무시는 영은 바로 2,000여 년 전에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 고성균 세례자 요한 - 도미니코수도회 수사. 단순하고 즐겁게 형제들과 어울려 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우리의 사명에 작은 도움이 되고자 노력한다. 현재 한국 도미니칸 평신도회 영적 보조자 소임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3년 4월호, 고성균 세례자 요한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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