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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사도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베드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8-06-30 조회수5,930 추천수2

[교회상식 교리상식] (98) 12사도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2) 베드로 (상)

 

 

이번 호부터는 12사도 가운데 으뜸인 베드로 사도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알아봅니다. 이번 호에는 먼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까지 베드로의 삶을 살펴봅니다.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그는 요나(또는 요한)의 아들이었고, 안드레아의 형이었습니다. 고향은 벳사이다였고, 직업은 어부였지요. 예수님을 만났을 당시에는 이미 결혼한 몸이었고 카파르나움에서 장모와 함께 살았던 것 같습니다(마르 1,29-31).

 

시몬은 무식하고 평범한 어부였습니다만, 예수님을 만남으로 삶이 완전히 뒤바뀝니다. 예수님은 시몬을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첫 제자로 삼으셨을 뿐 아니라 그를 케파, 곧 베드로라고 부르십니다. 케파란 '바위'라는 뜻의 아람어이고, 이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 베드로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을 베드로라고 부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를 마태오복음(16,13-20)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원에 대해 제자들에게 물으시자 시몬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하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고 하십니다. 그러고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조금 길지만 중요한 대목이어서 성경 본문을 그대로 적습니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16,18-19).

 

이 대목에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 시몬을 베드로, 곧 반석으로 삼으신 이유인데, 시몬의 신앙고백이 결정적인 것 같습니다. 사실, 시몬 베드로가 고백한 내용은 그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것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러기에 오히려 행복하다고 시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 친히 시몬을 베드로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시몬을 베드로라고 부르시고 이어서 계속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특별히 두 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시몬을 베드로 곧 초석으로 삼아 그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몬 베드로에게 맺고 푸는 권한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의 성경적 근거가 되는 말씀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를 사도들의 으뜸으로 삼으셨을 뿐 아니라 하늘 나라의 열쇠까지 주신 것입니다.

 

도대체 시몬은 어떤 성품을 지닌 인물이었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교회의 초석으로 삼으시고 하늘나라 열쇠까지 주신 걸까요? 성경에 나오는 내용을 중심으로 시몬 베드로의 성격을 조금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우선 베드로는 용기 있고 과단성 있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시자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따라나서는 모습(마르 1,16-20), 예수님께서 붙잡히셨을 때 지니고 있던 칼로 대사제의 종을 내리치는 모습(요한 18,1-11) 등은 이런 면을 잘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덤벙대는 모습도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물 위를 걷겠다고 나섰다가 바람이 불자 두려워져 물에 빠지게 되자 살려 달라고 외치는 모습이라든가(마태 14,22-33),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해 칭찬을 받았지만 곧 이어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시자 안 된다고 펄쩍 뛰는 모습(마태 16,13-23) 등이 그러합니다.

 

비겁하고 소심한 성격도 있는 듯합니다. 안티오키아에서 이방인 신도들과 어울리며 음식을 나누다가 할례받은 유다인 신도들이 내려오자 음식 규정을 어긴다는 지탄을 받을까봐 몸을 사리는 태도가(갈라 2,11-14) 그러하지요.

 

붙잡히신 예수님을 뒤따라 대사제 집으로 갔다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다가 예수님과 눈길이 마주치자 밖으로 나가 슬피 우는 모습은(루카 22,54-62) 심성이 착하지만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매우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충정이 대단한 제자였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시신이 없어졌다는 전갈에 무덤으로 달려가고(루카 24,1-12),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에 나타나셨을 때 "주님이십니다"라는 말을 듣고는 호수로 뛰어드는(요한 21,1-14) 모습이 이를 말해줍니다.

 

이런 시몬을 예수님께서는 제자로 부르시고 마침내 교회의 반석으로 사도들의 으뜸으로 삼으십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당신 교회의 양떼를 잘 보살피라고 간곡히 당부하십니다(요한 21,15-19). [평화신문, 2008년 6월 29일, 이창훈 기자]

 

 

[교회상식 교리상식] (99) 12사도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3) 베드로 (하)

 

 

교회의 반석이 되라는 뜻으로 케파, 곧 베드로라는 이름을 예수님께 받은 시몬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사도들의 맏이로서 교회를 이끌기 시작합니다. 이번 호에는 주님 승천 후부터 순교에 이르기까지 베드로 사도의 생애를 살펴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 "내 양들을 돌보아라"는 간곡한 당부를 받은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면서 먼저 배반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 대신 주님 부활의 증인이 될 사도를 뽑는 일을 주도합니다(사도 1,15-26). 그리고 마침내 오순절에 성령을 가득 받은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과 함께 굳세게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평범하고 무식한 어부 출신의 베드로가 성령을 받아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하자 사람들은 깜짝 놀랍니다. 놀라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회개합니다. 베드로의 첫 오순절 설교를 듣고 신자가 된 이들이 삼천 명이나 됐습니다(사도 2장).

 

나아가 베드로는 예수님 이름으로 불구자를 고치는 첫 기적을 행합니다. 그리고 이를 보고 달려온 백성들에게 복음을 선포합니다(사도 3장). 그로 인해 베드로와 요한은 감옥에 갇히기도 하지만 그들의 말을 듣고 믿음을 갖게 된 이가 장정만도 오천 명가량이나 됐다고 합니다(사도 4장).

 

사도행전 전반부는 베드로 사도가 예루살렘뿐 아니라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용감하게 복음을 선포하고 놀라운 기적들을 일으키며 또 감옥에 갇히고 매질을 당하는 등 박해 받는 모습을 곳곳에서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삶은 베드로 사도가 평생을 지고 가야 하는 삶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후 베드로 사도의 삶은 어떻게 펼쳐졌을까요? 베드로는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교회의 기둥"(갈라 2,9)이라고 불렸습니다. 교회 기둥으로서 베드로 사도가 수행한 대표적 역할은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사도회의는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빚어진 할례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원로들이 모여서 한 회의입니다. 할례 논쟁은 일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들도 모세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고 나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빚어진 논쟁입니다.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베드로는 하느님께서 유다인이나 이방인에게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시며, 이방인이나 유다인이나 할례를 통해서가 아니라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설파함으로써 할례 논쟁을 종식시키는 데에 주도적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루살렘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지중해 해안도시인 카이사리아와 야포 같은 인근 도시들은 물론 안티키아와 갈라티아 같은 소아시아 지역에서도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또 일부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가 그리스 도시인 코린토에서도 머물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들 소아시아 지역과 그리스 도시들에서 실제로 지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만, 만약 이들 도시들에 머물렀다면 아마도 이 도시들에서는 주로 유다인을 찾아 복음을 선포했을 것입니다. "할례받은 이들을 위하여 베드로에게 사도직을 수행하게 해주신 분께서 나에게도 다른 민족들을 위한 사도직을 수행하게 해주셨다"(갈라 2,8)는 바오로 사도의 말이 이를 뒷받침해줍니다. 이 말에서 할례받은 이들은 유다인을, 다른 민족들은 이방인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 사도는 안티오키아를 거쳐 말년에는 로마로 갔으며 그곳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로마에서 얼마나 살았는지 또 순교한 때는 정확히 언제인지는 전해지는 기록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기록은 로마에서 25년 동안 살았다고 하는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순교한 연도도 기록에 따라 빠르게는 55년부터 늦게는 65년 또는 67년 등으로 다양합니다. 그렇지만 네로 황제의 대박해 때에 로마의 바티칸 언덕에서 순교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순교한 바티칸 언덕에 오늘날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이 우뚝 서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무덤은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제대 아래 지하에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 사도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자신같이 부족한 사람이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똑바로 매달릴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서, 또 예수님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셨지만 자신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기 때문에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기를 자원했다고 하지요.

 

또 베드로는 평소에도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또 특히 자신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한 것을 가슴아파하며 눈병이 날 정도로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새벽에 첫 닭이 울때면 일어나서 기도를 하고 몹시 울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열쇠와 함께 새벽 닭도 베드로 사도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평화신문, 2008년 7월 6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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