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교리상식] (100) 12 사도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4) 토마스 예수님의 열두 사도 가운데 한 명인 토마스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은 의심 많은 사도로 알려져 있지요. 토마스 사도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 성경에서 본 토마스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열두 사도 이름을 나열하는 가운데 토마스를 언급할 뿐(마태10,3 ; 마르 3,18 ; 루카 6,15 ; 사도 1,13) 그 이상은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이에 비해 요한복음에서는 모두 네 차례에 걸쳐 토마스 사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우리는 토마스의 신상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우선 토마스는 '쌍둥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요(요한 11,16 ; 20,24 ; 21,2). 그렇지만 누구와 쌍둥이인지 아니면 왜 쌍둥이라는 별명을 가졌는지는 성경을 통해서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토마스 행전」이라는 위경(僞經)에서는 토마스를 예수님의 쌍둥이 형제라고 적고 있는데 신빙성은 없다고 보는 것이 좋겠네요. 요한복음에서 제시하는 토마스 사도의 면면을 잠시 분석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합니다. 첫째, 11장에서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러 베타니아로 가실 때에, 토마스는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11,16)하고 동료 제자들에게 말하지요. 여기에서 토마스는 스승이신 예수님과 함께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충성심이 강하고 의지가 굳은 제자로 나옵니다. 둘째, 14장에서 최후의 만찬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14,4)고 하시자 토마스가 이렇게 반문합니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14,5)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하는 기개 대신에 다소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모습의 토마스 사도를 그려볼 수 있습니다. 셋째, 20장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 난 후에 신앙을 고백하는 장면입니다(20,24-29).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15절)라는 토마스의 반론은 예수님께 대한 부정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우리도 함께 죽으러 갑시다"와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드레 후에 예수님을 보았을 때 토마스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28절) 하고 고백하지요. 이런 장면들을 통해서 우리는 토마스가 용감하면서도 의심이 많은 또 소신을 굽히지 않지만 일단 승복하고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라고 추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의 마지막 21장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티베리아 호숫가에 나타나셨을 때에 토마스가 시몬 베드로를 비롯해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과 함께 있었다고 전합니다. 이들 제자들의 출신지가 모두 갈릴래아 지방인 것으로 미뤄 토마스 역시 갈릴래아 출신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볼 수 있겠지요. 이런 정도가 성경에서 우리가 토마스 사도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 전승에서 본 토마스 전승에 따르면, 사도들이 복음을 선포하러 사방으로 흩어졌을 때 토마스는 인도를 배당받았다고 합니다. 토마스가 인도에 가기를 주저하자 예수님께서 기적적으로 개입하시어 인도의 군다포르 왕실의 궁전을 짓는 목수로 팔려가도록 하셨다고 합니다. 토마스 사도는 그곳에서 왕궁 건축 기금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다 써버렸고, 왕의 노여움을 사서 투옥됐습니다. 그러나 토마스는 기적적으로 탈출했고 왕도 회심했다고 전해지지요. 잠시 샛길로 빠집니다만, 토마스 사도가 건축가, 목수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는 것도 이런 전승에서 유래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는 12사도의 석상이 모셔져 있는데 토마스 사도는 목수들이 사용하는 ㄱ자를 들고 있는 형상입니다. 인도 서남부 케랄라 주에는 말라바르 전례를 사용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을 '토마스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면서 자기들 교회의 기원이 토마스 사도에게서부터 유래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토마스 사도는 군다포르 왕에게서 탈출한 후 말라바르 지방으로 내려와서 7개의 교회를 세웠으며, 기원 후 72년 7월 3일 마드라스 시 북쪽에 있는 밀라포레 근처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토마스 사도의 유해는 4세기에 메소포타미아 북부 에데사(오늘날 터키의 우르파)로 옮겨졌고, 나중에 이탈리아 중부 아브루치 지방 키에티 주의 오르토나로 옮겨졌다고 하지요. 교황 바오로 6세는 토마스 사도의 순교 1900주년인 1972년에 사도를 인도교회의 수호자로 선포하셨습니다. [평화신문, 2008년 7월 13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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