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교리상식] (108) 12사도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12) 유다 이스카리옷 이번 호에는 예수님을 팔아 넘긴 배반자 유다 이스카리옷에 대해 알아봅니다. 출신 성경에서는 유다 이스카리옷이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라는 것과,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것, 그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것 외에는 그에 관한 별다른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어디 출신인지, 어떻게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됐는지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다만 요한복음에서는 그를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6,71; 13,26)이라고 부르는데, 이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 몇 가지 견해가 있어 왔습니다. 우선, 이스카리옷은 히브리어로 '카리옷 사람'이란 뜻을 지니는데, 카리옷은 유다 지방에 있는 도시를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여호수아기 15장 25절에는 유다 지파의 성읍 가운데 하나라 크리욧 헤츠론이 나오는데 이 크리옷과 카리옷이 같은 곳이라는 견해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유다 이스카리옷은 다른 제자들과 달리 갈릴래아가 아닌 유다 지방 출신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카리옷이 '자객'을 뜻하는 그리스말 '시카리오스'(σικαριοs)와 관련된다고 보아, 유다가 자객 활동을 한 집단, 곧 당시에 로마 제국에 맞서 무력으로 독립을 쟁취하려 했던 젤롯당원의 일원이 아니었을까 하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 지방 카리옷 출신이라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는 것 같습니다. 배반 왜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했을까요?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은 배반과 관련해 유다 이스카리옷이 주도적 입장을 취하는 것처럼 보도합니다. 유다가 수석 사제들을 찾아가 예수님을 넘겨주는 대가에 대해 흥정을 하는 점이 그렇습니다(마태 26,14-16 ; 마르 14,10-11). 그런데 이 두 복음은 유다의 배신 기사 바로 앞에 어떤 여자가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렸다는 기사를 전하고 있습니다(마태 26,6-13; 마르 14,3-9).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붓는 것을 본 제자들(마르코복음에서는 '몇 사람')이 불평을 하지요. 그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주는 게 더 좋지 않느냐는 겁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내용을 전하는 요한복음(12,1-8)에서는 여인의 행위에 불평하는 사람이 여러 사람(제자들 또는 몇 사람)이 아니라 유다 이스카리옷 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게다가 요한복음의 저자는 유다가 불평한 것은 그가 도둑이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사도들의 돈주머니를 맡고 있는 경리로서 평소에도 틈틈이 돈을 빼돌리곤 했다는 것입니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을 비교해보면 공관복음에서는 왜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배반하게 됐는지 결정적 이유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면에 요한복음에서는 단정적으로 제시되는 것 같습니다. '돈에 눈이 먼 도둑'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배반한 것이 단지 돈 때문이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여러 견해를 종합하면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배반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예수님에게서 기대한 메시아 상과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보여주신 메시아 상이 크게 달랐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예수님께서 세우실 하느님 나라, 메시아 왕국이 현세적 왕국 이 지상의 왕국이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곧 메시아'라는 시몬 베드로의 고백을 인정하시면서도 오히려 당신이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고 죽임을 당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르 8,27-31). 이 말씀에 유다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유다만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겠지요. 다른 제자들은 이 충격을 극복할 수 있었지만 유다는 그렇게 극복할 만큼 믿음이 강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았을까요? 죽음 유다 이스카리옷의 죽음과 관련해 성경에서는 두 가지 다른 설명이 나옵니다. 마태오복음은 유다가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시는 것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다가 결국 예수님 몸값으로 받은 은돈을 성전 안에 내던지고는 목을 매달아 죽었다고 전합니다(마태 27,3-10). 이에 비해 사도행전은 유다가 예수님 몸값으로 받은 돈으로 밭을 산 후에 "거꾸로 떨어져서 배가 터지고 내장이 모조리 쏟아져서" 죽었다고 전하지요(사도 1,15-20). 학자들은 유다 이스카리옷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설명이 다른 것은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기보다는 신학적 의미를 제시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목을 매달아 자살한 것은 다윗의 친구였다가 배반자가 된 아히토펠이 목을 매달아 자살한 것(2사무 17,23)을 상기시킵니다. 아히토펠의 죽음 방식은 이후 배반자의 최후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본보기였다고 합니다. 반면에 사도행전에 나오는 것과 같이 거꾸러 떨어져 배가 터지고 내장이 쏟아져 맞는 죽음은 죄인의 최후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평화신문, 2008년 9월 14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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