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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22: 강생, 서른 세 해의 긴 여정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01 조회수1,938 추천수0
[신나고 힘나는 신앙 -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22) 강생, 서른 세 해의 긴 여정

비천한 인간과 눈높이 맞추는 키낮춤의 원형


■ 피바디 정신

미국 남부를 대표하는 명문 사립대학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벤더빌트대학의 피바디 교육대학은, 미전역에서 최고의 교육대학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그 명성이 자자하다. 그 피바디 교육대학을 일으킨 장본인 피바디 선생의 일대기 속에는 퍽 감명 깊은 이야기 하나가 있다.

피바디 선생은 젊은 시절,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가 2학년생을 담임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교육 계획에 따라, 반 아이들에게 박물관 유물 관람을 계획했다. 피바디 선생은 반 아이들에게 유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주기 위해 사전 답사를 갔다.

박물관을 지키고 있던 담당자는 하루 종일 앉은뱅이로 돌아다니며 메모를 하고 있는 피바디 선생을 보고는 그가 앉은뱅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갈 때 보니 그가 벌떡 일어서서 걸어 나가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담당자가 그에게 물었다.

“나는 선생님이 들어올 때는 앉은뱅이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성한 사람이었군요! 왜 그렇게 무릎으로 앉아서 돌아다니십니까? 아프지 않으세요? 그런 자세로 유물을 보는 분은 처음 봅니다.”

그러자 피바디 선생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내일 우리 반 아이들을 이곳에 데려 와 현장학습을 하려 하는데, 우리 반 아이들은 키가 다 작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바라보는 그 눈높이에서, 즉 아이들이 볼 수 있는 그 시각에서 유물을 봐 두었다가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피바디 정신은 오늘날에도 빛나는 교육철학으로 벤더필드대학의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 어린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이 감동적인 키낮춤의 원형을 나는 예수님의 강생에서 본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몸을 빌려 육화되셨으되, 가장 낮은 키의 인간에게 키높이를 맞추셨다. 이것이 마구간 말구유에서 아기 예수님을 탄생시킨 하느님의 심오한 의중이었다.


■ 예수님 탄생에 관한 역사적 진술

탄생의 경위는 어떠했는가.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칙령이 내려,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 〔…〕 그래서 모두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본향으로 갔다.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첫아들을 낳았다”(루카 2,1.3-4.6-7).

여기서 루카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의 탄생이 세계사적 사건임을 적시하기 위하여 당시의 역사적 사료를 반영하며 기술하고 있음을 주목할 일이다.

원래 이방인만 살던 갈릴래아는 하스몬 왕가 때(B.C 166~63)부터 유다인들이 이주하여 살았다. 요셉과 마리아의 조상들은 그때 갈릴래아에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당시에는 인구조사를 했다. 머릿수대로 세금을 거둬들이려던 목적에서다. 그래서 자기 고향에 가서 등록해야 했고, 다윗의 후손인 요셉도 본적 ‘베들레헴’으로 가야만 했다. 예수님께서 나신 이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방으로 6마일(약 11km) 떨어진 아주 작은 마을이다.

그런데 본적지에 가 보니, 하도 사람이 많이 몰려들어 빈 여관방이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 이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첫 번째로 전해들은 이들이 목동이었는데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도록 천사가 알려준 표징은 이랬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12).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탄생 비밀이기도 하다. 구유에, 포대기에, 아주 어린 나약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 하느님이시고 예수님이시다.


■ 끝나지 않은 강생

매년 12월 25일 성탄절이면 구유를 꾸며놓는다.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그런데 진짜 말구유에 가 봐도 낭만적일까? 여물 더미에, 말똥 냄새에…. 하여간 구유는 낮은 곳이다. 누추한 곳이다.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가 가장 비참한 탄생을 하였다. 마구간에서 태어난 사람, 그 하나만 해도 서러운 이야기다.

그런데 그게 탄생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당신 죽음까지 낮은 데만 찾아다니셨다. 사람을 만나도 높은 사람이 아닌 낮은 사람을 만나시고, 의인이 아닌 죄인을 만나시고,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자리가 있는데 나는 왜 집도 없냐”(마태 8,20 참조) 하시며 호텔이 아닌 길바닥에서 주무시고. 사실 그때 당시 이동 수단이 발달되어 있었겠는가. 변변한 텐트가 있었겠는가. 군중들에게 돈이 많았겠는가. 그 나라엔 물이 많기라도 한가. 우리나라 같으면 개천에서라도 세수하면 되지만, 예수님 일행은 세수나 제대로 했을까. 예수님 발에서는 발냄새 안 났겠는가. 완전 거지 떼가 돌아다니는 것과 무엇이 달랐겠는가. 그럼에도 자꾸 낮은 데로 가신 이유가 뭐냐 이 말이다.

이를 설명하는 개념이 바로 ‘강생’ 또는 ‘육화’다. ‘강생’은 “(하늘에서) 내려와 (땅 위에) 태어나다”는 뜻이다. ‘육화’란 “말씀이 살(사람)이 되셨다”(요한 1,14 참조)는 뜻이다. 지존하신 하느님이 비천한 인간과 하나 되기 위해서 아래로 내려오셨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6-7).

그러면 왜? 사도 바오로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2코린 8,9).

이렇듯 그분이 낮은 데로 오신 것은 우리를 높은 곳으로 데려가시기 위해서였으며, 가난하게 오신 것은 우리를 부유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놀라운 교환이다.

나는 예수님의 이 강생을 “저인망 그물을 가지고 내려오셨다”라고 표현하곤 한다. ‘저인망 그물’이 뭔가? 바다 밑까지 쌍끌이로 끌고 다니는 것이다. 저인망으로 오셔서 우리네 가장 밑바닥 인생들을 긁고 다니신 것이다. 더 밑이 없을 정도로 맨 밑에만 긁고 다니신 것이다. 왜? 맨 밑바닥으로 가지 않으면 다 구원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저인망 영성’은 감동적이다. 오늘도 진행 중이다.


■ 나자렛 사람

예수님의 강생은 십자가 죽음에까지 이어지는 일생의 과정이다. 이 강생의 첫 번째 정거장은 나자렛이었다.

천사의 알림을 받고 나서 피난살이를 마치고 새로운 출애굽을 한 예수님 가족은 갈릴래아의 나자렛이라는 동네에 정착한다.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2,23).

복음서는 훗날 이 이름이 그분을 따라다니게 될 것임을 이렇게 말했다. 나자렛은 갈릴래아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갈릴래아는 유다인의 눈에는 변방에 있는 천한 지역이었다. 구약성경이나 옛 유다인 전승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촌구석이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6)

이런 말이 나올 만도 한 동네였다. 나중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도 나자렛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것은 촌놈이라는 뜻이다. 예수님 일행은 촌놈들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역설적인 사실을 하나 확인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영광스러운 ‘탄생지’로 ‘보잘것없는’ 베들레헴을 선택하셨고, 맹자의 어머니도 자식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했다고 할 만큼 중요한 ‘유년기 교육’의 장소로는 ‘촌동네’ 나자렛을 선택하셨으며,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장소로는 ‘영광스러우며 세계적인’ 예루살렘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이다.

이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이 불명예 사건이 아니라 최고 영광의 사건이라는 역설을 말해 주고 있다. 이 역시, 우리의 묵상거리다.

*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 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3년 6월 2일,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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