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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살이: 본당의 봉사직, 사목평의회와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19 조회수3,312 추천수0

[세상과 교회 그리고 믿음살이] 본당의 봉사직, 사목평의회와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지난 호에서 필자는 사제의 태도가 ‘권위(주의)적’이라는 일부 불편한 시선을 다루었다. 사제의 참된 권위는 말씀의 교역자, 성사의 집전자, 백성의 교육자로서 그 직무를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묻어 나와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사목자가 예수님의 모범(마음씀씀이, 가르침, 몸짓의 온전한 일치)을 충실히 따름으로써 발생하는 참된 권위 대신에, ‘권위주의’(권력이나 위력으로 남을 억누르거나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려고 하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 의 태도를 지니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이 같은 필자의 주관적 성찰이 조금이나마 설득력이 있다면, 사목자의 권위주의의 태도는 이른바 ‘개인과 환경’의 관점에서 그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사목자 스스로 교회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기 위한 자기 정화와 쇄신에 매진해야 하겠지만, 그와 동시에 교회 공동체 건설에 교우들이 책임과 연대의 정신을 갖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사목환경을 마련하는 데에도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번 호에서는 교회 공동체 건설에 교우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고 책임과 연대의 정신을 실현하는 제도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는 일선 본당의 ‘사목협의회’를 성찰하고자 한다. 현실에서 제도는 가치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도구로서 그 기능을 한다.

 

제도는 마치 우리가 입는 옷과 같다. 계절에 따라, 신체조건에 따라 적절한 옷을 입어야 한다. 우리가 추운 겨울에 무겁고 두꺼운 옷을 입는 것은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면서 건강하게 생활하기 위해서다. 본당마다 구성되어 있는 사목협의회의 기능 역시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며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하여 그 성화소명을 다하도록 하는 데 있다.

 

 

벗어나고 싶은 궂은일(3D)과 차지하고 싶은 궂은일

 

일선 본당 사목자로서 본당의 반장직을 수행하겠다는 교우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울대교구의 경우 본당의 반장과 구역장을 위한 단계별 교육을 실시하는데, 관계 신부의 말을 들으면, 해마다 새로 반장직을 떠맡은(?) 교우들이 전체의 50% 이상이 된다고 한다. 이는 하루빨리 반장과 구역장의 봉사직에서 물러나고 싶어 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본당 돌아가는 형편을 알 정도면 신앙생활 기간이 짧지는 않다. 그러다보니 형편을 잘 모르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의 순진함(?)에 호소하여 반장직을 물려주고 자신은 그 짐을 더는 형편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경우도 처한 환경은 대동소이하다. 새 단원은 꾸준히 느는데 활동을 그만둔 단원이 그 못지않게 많다. 신앙생활 웬만큼 한 교우들치고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하지 않은 이들이 거의 없을 정도다. 새로 세례를 받은 순진한 이들을 단원으로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기존의 단원들은 슬그머니 사라진다. 어쩌면 기존의 단원들 가운데 탈단의 기회를 엿보다가 아직 신앙생활이 일천한 새 영세자들을 끼워 넣고 자신은 빠지는 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 일선 본당 사목자가 심혈을 기울여 물색하는 협조자가 있다. 곧 사목협의회의 회장직이 그것이다. 그 자리를 ‘본당 총회장’이라 부른다고 해서 요즘은 하나도 어색하게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 ‘총회장’ 자리를 맡아줄 교우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는 앞의 두 경우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지만 그 어려움의 이유가 전혀 다르다. 총회장을 하겠다는 교우, 총회장직에 추천된 교우가 없어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여럿 가운데 누구를 선택하고 임명해야 할지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총회장 정도(?) 되려면 몇 가지 현실적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데, 신앙생활에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기준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람을 부릴 줄 알아야 하고, 본당의 일을 하려면 돈도 좀 쓸 줄 알아야 하는데다가, 무엇보다도 주임신부를 편하게 모시는 능력까지 갖추어야 한다. 이 총회장 자리를 놓고 심심치 않게 잡음이 생기는 것을 보면 그만큼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열정을 갖고 반장직을 수행하며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하는 교우들과 본당 공동체의 선익을 위해 헌신하는 회장께는 불편하고 언짢게 들리겠지만(반장, 레지오 마리애, 사목협의회 회장을 소재로 삼은 것은 편의에 따른 것일 뿐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앞의 세 경우는 사목자를 곤혹스럽게 한다. 반장직 수행과 레지오 마리애 활동이 사회에서 이른바 3D 업종이라 부르는 것과 같은 일쯤으로 본당 안에서 자리 잡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소모품과 같은 존재쯤으로 취급받는 것은 아닐까, 그와는 반대로 총회장의 자리와 일은 내세울 만한 값어치가 있어 경쟁이 치열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실 반장과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순명하는 자세로 본당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서 수행한다. 평신도로서 회장직을 맡아 본당 공동체 전체의 선익을 위해 헌신한다는 것도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궂은일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어떤 경우는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고, 어떤 경우는 차지하고 싶어 한다면 분명 그 이유가 있을 터이다.

 

이 혼란스러움은 ‘교회 안에 차별과 불평등이 심화되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존중과 연대감의 결여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반영한 것은 아닐까?’ ‘상호 의존적인 관계보다는 상하의 위계질서에 따른 종속의 관계가 만연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스도의 성령께 봉사하여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자라게 하는 사목협의회

 

어느 제도든 그 구성 원리와 운영 방법에 그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다. 현실에서 특정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온전하게 담을 수 있는 완벽한 제도는 존재하기 어렵다. 요즘 우리가 경험하는 경제문제를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아무리 자유주의 시장 경제 모델이 탁월한 제도라 하더라도 사회주의 경제 모델이 지향하는 공공성의 가치를 소홀히 할 수 없으며 그것을 소홀히 여겼을 때 치러야 할 대가는 간단치 않음을 우리는 겪고 있다. 어떤 제도든 끊임없는 보완과 개선이 필요하다.

 

교회도 그렇다. 한국 교회의 지침으로는 본당 공동체의 사목을 촉진하기 위한 ‘사목평의회’와 본당 내 직능 단체들의 협의체라 할 수 있는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를 구별하여 그 성격과 운용을 달리할 것을 명시하고 있지만, 대부분 일선 사목현장에서는 ‘사목협의회’라는 하나의 사회적 조직을 구성하여 운용하고 있다. 앞에서 말한 벗어나고 싶은 궂은일과 차지하고 싶은 궂은일이 발생하는 현상을 단순히 서로 다른 목적과 운용양식을 가진 이 두 구조를 하나의 구조 안에 섞어놓은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으나, 가시적 교회의 사회적 구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실의 부족함을 개선하려는 노력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다음의 교회헌장의 선언을 보자.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믿음과 바람과 사랑의 공동체인 당신의 거룩한 교회를 이 땅 위에 가시적인 구조로 세우시고 끊임없이 지탱하여 주시며, 교회를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진리의 은총을 널리 베푸신다. 교계조직으로 이루어진 단체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신비체, 가시적 집단인 동시에 영적인 공동체, 지상의 교회인 동시에 천상의 보화로 가득 찬 이 교회는 두 개가 아니라 인간적 요소와 신적 요소로 합성된 하나의 복합체를 이룬다고 보아야 한다. … 교회의 사회적 조직도 교회에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성령께 봉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한다(에페 4,16 참조). … 자기 품에 죄인들을 안고 있어 거룩하면서도 언제나 정화되어야 하는 교회는 끊임없이 참회와 쇄신을 추구한다”(교회헌장, 8항).

 

본당에서 사목협의회라는 사회적 조직을 구성하여 운영하는 목적은 “교회에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성령께 봉사하여 그 몸[그리스도의 신비체]을 자라게” 하는 데 있다. 본당의 사목협의회라는 제도가 그 설치 목적에 부합하지 않을 가능성, 곧 그리스도의 성령께 봉사하고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자라게 하기보다는 지배체제로 작동하거나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위험이 상존하기에 제도와 그 운영에 대해 끊임없이 참회와 쇄신을 추구해야 한다.

 

 

교회의 가르침 - 사회(공동체) 생활 법칙

 

사회적 제도로서 본당의 사목협의회를 성찰할 때 삼아야 할 구체적 기준, 곧 “사회[인간 공동체] 생활 법칙”을 우리는 공의회의 사목헌장의 가르침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이는 사귐과 섬김과 나눔이라는 그리스도 교회 공동체의 생활을 전제하고 있다. 공의회의 사목헌장이 ‘사회생활법칙’을 제시하며 이를 “중요한 진리”라고 밝힌 것은(사목헌장, 23항 참조) 이 법칙들이 보편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기에 교회 밖의 인간 공동체뿐만 아니라 교회 내의 사회적 제도인 본당의 사목협의회에도 유효하기에 이 자리에서 소개한다(사목헌장, 24-31항 참조).

 

1.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모든 인간은 똑같은 하나의 목적, 바로 하느님께 부름 받고 있다(인간 존엄성과 인간 소명의 공동체적 특성).

 

2. 개인의 진보와 그 사회의 발전이 서로 의존하고 있다(개인과 사회의 상호의존성, 인간화와 사회화).

 

3. 공동선(집단이든 구성원 개인이든 자기완성을 더욱 충만하고 더욱 용이하게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생활의 조건의 총화)을 증진시켜야 하며 보조성의 원리를 지켜야 한다.

 

4. 모든 사람은 저마다 이웃을 어떠한 예외도 없이 또 하나의 자신으로 여기고 보살펴야 한다(인간 존중).

 

5. 달리 생각하고 달리 행동하는 사람들까지도 존경하고 사랑하여야 한다(반대자에 대한 존경과 사랑).

 

6. 모든 사람의 근본적 평등을 인정하고 사회정의(인간들 사이에 정당한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평등한 인간 존엄성에 바탕을 둔 더욱 인간답고 공평한 생활조건에 이르는 것)를 실현한다.

 

7. 개인주의 윤리를 극복하고 사회적 연대 책임을 주요 의무로 여기고 존중한다.

 

8. 각 개인이 자기 자신과 그 소속 집단에 대한 양심의 의무를 엄밀히 이행하는 책임과 모든 사람이 공동 활동에서 자기 역할을 받아들여야 한다(책임과 참여).

 

 

본당의 사목협의회에 대한 성찰

 

사목협의회의 역할을 정리한다면 하느님 백성 공동체의 전례를 통한 하느님 흠숭과 교우 공동체의 나눔과 섬김과 사귐을 촉진하고자 앞에서 열거한 생활원칙을 실현하는 본당의 사회적 조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본당의 사목협의회는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성의 실현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백성 전체의 선익을 위해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혹시 일부 구성원의 욕구를 전체 공동체의 선익과 동일시하는 것은 곤란하다. 효율적 조직운영을 앞세워 다양한 욕구를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해서는 곤란하다. 교회 구성원이 사목협의회를 통해 자신의 신앙생활의 도움을 받으면서 공동체 건설에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교우들이 신앙생활을 개인의 심리적 차원에만 가두어 두려는 경향이 강한 우리의 경우 개인의 신앙생활과 공동체 건설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의존적 관계라는 의식의 변화를 촉진해야 한다.

 

교회는 특정 집단의 이익과 공동선을 혼동하는 세태를 바로 잡는 데 앞장서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도 특정 직능 단체의 이익과 공동선을 혼동해서는 곤란하다. 때로는 그 둘이 충돌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공동선은 특정 집단의 이익에 우선한다. 본당의 구역이나 반을 하위 또는 말단 행정단위쯤으로 여기는 경향도 바로잡아야 한다. 구역이나 반은 교우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가꾸어야 할 규모만 작을 뿐이지 그 자체로 하느님 백성 공동체이다.

 

보조성의 원리를 응용하면 바로 이 구역과 반의 자발성과 자율성 그리고 공동체 건설의 책임을 보호하고 도와주며 증진하는 것은 더 큰 조직 곧 본당의(사목협의회의) 의무이다. 앞에서 반장과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그 봉사의 직무를 빨리 벗어 버리고 싶어 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한 채 위에서 계획하고 결정한 일을 명령에 따라 집행해야 하는 교우 정도로 여기고 대한다면, 반장으로서 하는 그 봉사는 자율성과자발성에 기초한 책임과 의무는 실종되고 마지못해 하는 고역으로 전락하기 쉽다.

 

마지막으로 본당의 사목협의회가 중앙집권적 의사결정 기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라면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중앙집권적 의사결정과 집행 조직은 평등과 책임과 참여와 연대의 의식을 실현하기보다는 정책 집행의 효율성과 경제성에 장점을 보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라 통합의 기능을 수행하는 사회적 조직이다. 경제 영역에서는 최고경영자가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교회는 “현세의 영광을 추구하도록 세워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범으로도 비움과 버림을 널리 전하도록 세워진 것이다. … 교회도 …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자기 창립자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습을 알아보고 …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한다”(교회헌장, 8항). 교회는 힘없는 이들이 대접을 받아야 한다.

 

너도 나도 평생 반장으로서 이웃과 함께 교회의 성화소명에 앞장서겠다는 교우들이 줄을 섰으면 좋겠다.

 

[경향잡지, 2009년 5월호, 박동호 안드레아(서울대교구 신수동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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