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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의 늑방 상처는 어느 쪽인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30 조회수5,947 추천수0

[사서함 16호] 예수님의 늑방 상처는 어느 쪽인가

 

 

……(중략) 저는 1956년에 세례를 받은 신자입니다. 그때 교리 시간에 배운 기억으로는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군인의 창으로 늑방을 찔리신 곳이 왼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후 접하게 된 상본은 오른쪽으로 늑방의 상처가 나 있습니다. 이 오른쪽으로 그려진 상본의 그럼처럼 예수님의 상처가 오른쪽인지요?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누구나 쉽게 상본을 구할 수 있으며 또 접합니다. 예수님, 성모 마리아, 성인들을 그린 것이 대부분인 이 성화상은 우리 가톨릭의 한 특정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한 교회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는 이 성화상을 장려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교회법 제1186~1190조에 의하면 이러한 상본들의 발행에 있어 사전 검열을 받도록 하고 있으나 우리가 흔하게 대하는 상본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합니다(대부분 복제판이며 또 졸작도 있음). 따라서 같은 내용을 그런 상본이라 하더라도 다르게 표현될 수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들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상본이라도 작가에 따라 십자가나 장소 묘사, 못박히신 예수님의 모습이 다양하게 그려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작가의 예술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성화상에 대한 양식 부족이나 작가의 수준 낮은 표현을 의미할 수도 있는 것이기에 사전 검열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상본에 그려지는 성화에서 과학적으로 인간의 심장이 왼쪽이냐 오른쪽이냐를 가리지 않습니다. 성화상의 메시지는 과학이 아닌 인간의 영적 세계를 그리는 것이기 때문이며, 우리 신앙인 역시 이러한 성화상을 통해 신앙의 신비를 감각적으로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본에 그려진 예수님의 늑방의 상처가 어느 쪽이냐고 물어 온 이 기회를 통해 늑방의 상처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늑방 상처가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상처에서 피와 물이 흘렀다는 것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우선 그 사실을 묘사하고 있는 요한 복음의 표현을 전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병사들이 와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의 다리를 차례로 꺾고 예수에게 가서는 이미 숨을 거두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는 대신 군인 하나가 창으로 그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거기에서 피와 물이 흘러 나왔다. 이것은 자기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의 증언이다. 그러므로 이 증언은 참되며, 이 증언을 하는 사람은 자기 말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여러분도 믿게 하려고 이렇게 증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의 뼈는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성서의 말씀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성서의 다른 곳에는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는 기록도 있다”(요한 19,32-37).

 

 

하느님의 어린양

 

요한 복음에서는 공관 복음(마태오, 마르코, 루가)과는 달리 예수님의 십자가 상의 죽음 시간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최후 만찬을 과월절 음식으로 표현하면서 과월절과 예수님의 죽음 시간을 일치시킵니다. 이에 비해 요한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과월절 의식의 희생양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요한 복음 사가는 과월절 준비일에 성전에서 어린 양을 잡아 죽이는 바로 그 시간에 예수께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이야말로 참된 하느님의 어린양이요 새로운 계약으로서의 파스카 어린양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과 함께 처형된 사람들의 다리를 꺾은 것과는 달리, 예수께서 이미 돌아가셨음을 보고는 다리를 꺾는 관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이 의미도 역시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으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다교 전례에 따르면 파스카의 어린 양은 뼈 하나 부러뜨림 없이 온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출애 12,46 참조). “그들은 자기들아 찌른 이를 바라보리라.”는 즈가리야 12장 10절의 인용은 창으로 찔린 세상의 왕을 바라본다는 의미로 예수님의 수난을 한마디로 요약해 주는 인용구입니다. 십자가상의 예수님은 사막에서 높이 들어올려진 구리 뱀을 연상시킵니다. 따라서 구리 뱀을 쳐다보던 하느님 백성의 눈길은 이제 창으로 찔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종말론적인 구원의 여정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똑같은 인용구가 요한 묵시록 1장 7절에 다시 나옵니다. “그분은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이며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입니다. 땅 위에서는 모든 민족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입니다.” 묵시록에서 죽음을 당한 어린양은 일곱 봉인을 떼실 유일한 분(5장)이시며, 어린양의 혼인 잔치의 주인공이시며(19장) 어린양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21장)의 주인이십니다.

 

 

성령의 샘

 

예수님의 다리를 꺾는 대신 그들은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고, 거기서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 피는 본래 생명이 깃든 자리를 뜻합니다(레위 17,11.14 참조). 옆구리에서 흘러내린 피는 예수님의 지상 생명을 의미하며, “이제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며 숨[영]을 내쉰(19,30 : 희랍어 원문대로 하면 ‘영을 내어 주셨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상징해 줍니다. 곧 교회의 시대, 교회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시대입니다.

 

예수께서는 피뿐 아니라 물도 흘리셨는데, 성서에서 물은 은총과 생명수를 의미합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목마르다.”(19,28)고 하셨습니다. 요한 복음에 보면 예수께서 자주 생명의 물에 대해 말씀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4,14).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서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 나올 것이다”(7,37-38).

 

예수께서는 목마른 사람의 갈증을 채워 주시기 위해 대신 목마름을 겪으셨고, 당신의 죽음으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물을, 영원한 생명수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당신 성령을 통해 생명을 주셨으니,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은 바로 이 성령의 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총의 강물

 

에제키엘 47장에 보면 성전 동쪽 문턱에서 솟아나오는 물에 대해서 나옵니다. 이 물은 바로 은총의 상징입니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2,19)고 하셨는데, “예수께서 성전이라 하신 것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2,20)고 요한 사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은 그러니까 참된 성전인 예수님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강물 같은 당신의 은총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늑방의 상처가 오른쪽으로 그려진 상본은 아마도 성전 동쪽에서 솟아나오는 물 또는 의인으로 선택받다(마태 25,31-48)는 뜻으로 쓰이는 오른쪽이라는 말마디에 중점을 두고 그런 그림일 수 있기에 신빙성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늑방이 어느 쪽이냐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탄생

 

창세기에 보면 하느님께서 아담을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옆구리에서 갈빗대를 취하여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2,21-22 참조). 그리고 골고타 산에서 예수께서 수난하시는 순간에 또다시 새로운 아담을 죽음에 이르는 깊은 잠에 빠뜨리신 다음 그 옆구리에서 새로운 하와, 즉 교회를 탄생케 하셨습니다. 아담이 “이는 내 뼈에서 난 뼈요, 내 살에서 난 살이로구나.”(창세 2,23) 하고 외치며 여자와 어울려 한 몸을 이루었듯이(창세 2,24 참조), 교회는 그리스도의 옆구리, 그 심장의 피로 이루어져 한 몸을 이룹니다. 따라서 옆구리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은 바로 교회의 탄생을 상징하며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성사

 

교부들은 물이 세례성사를 말해 주며, 피는 그리스도의 성혈, 즉 성체성사를 의미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해 주는 성서적 근거는 요한 1서 5장 6-8절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오셔서 물로 세례를 받으시고 수난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물로 세례를 받으신 것뿐만 아니라 세례도 받으시고 수난의 피도 흘리셨습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입니다. 증언자가 셋 있습니다. 곧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서로 일치합니다.”

 

요한 1서에서 말하는 물은 말할 것도 없이 세례요 그리스도의 피는 성찬을 의미합니다. 이는 교회론적 차원에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언급하는 것입니다.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오늘날에도 가시적으로 재현시켜 주는 은총의 표지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시고 옆구리에서 쏟아 내신 피와 물은 그리스도의 신비를 나타내는 성체성사와 세례성사로 그리스도의 신비 안으로 우리를 초대하며 일치시켜 줍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극적으로 보여 주는 늑방의 상처, 예수 성심은 오늘도 피와 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화에 나타난 옆구리 상처, 거기서 흘러나오는 피와 물의 메시지이며 우리 모두가 되새겨야 할 의미입니다.

 

[경향잡지, 1992년 12월호, 이창욱 펠릭스(성 바오로 수도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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