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함 16호] 처녀가 낳은 한 아들 언젠가 외교인이, 예수는 요즈음 말로 ‘미혼모가 낳은 사생아’라는 말을 했습니다. 무척 불쾌하고 그게 아니라는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그때는 세례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수님이나 성모님에 대해 아는 게 없어 그 자리를 피했는데 십년이 훨씬 지난 요사이도 가끔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여전히 불쾌하고 부끄럽습니다. 어머니의 달을 맞아 성모님의 동정성에 대한 이해를 확실히 하고 싶습니다. 성모님의 생애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특징지어집니다. 이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 아드님이 세우신 교회와의 관련을 의미하며 또한 성모께 대한 이해나 신심의 두 가지 측면을 이룹니다. 이와 같은 성모께 대한 신심이나 신학은 교회를 통하여 그리고 교회 안에서 발견되고 발전하여 역사적인 측면(성서와 교부학)과 신학적인 측면(신앙과 이성)으로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 중에는 성모님을 공경하고 신학적인 체계를 가진 교파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심상으로나 신학상 교파간에 서로 과민한 대립을 이루는 교회는 천주교회와 프로테스탄트입니다. 특히 한국의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는 가톨릭의 성모 신심이나 신학 그리고 교황권과 성사(聖事), 성화상(聖畵像) 신심 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이단 교회 또는 우상을 숭배하는 교회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프로테스탄트에서 가톨릭의 성모 신심과 신학을 공격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 성서에 대한 해석의 차이, 둘째 성전(聖傳)의 거부, 셋째 교계 질서와 교도권에 대한 부인, 넷째 가톨릭의 호교론적 신학에 대한 반발, 다섯째 가톨릭 신자들의 무분별한 성모 신심, 여섯째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의 가톨릭에 대한 비이성적 반감 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모께 대한 신심이나 신학은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역사에 그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예수께 대한 믿음이나 역사적 이해가 바르지 않거나 편협할 때 성모께 대한 신심의 이해가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신심과 신학의 오류나 왜곡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이나 역사적 신학적 이해가 잘못된 데서 비롯됩니다. 다음으로 성모 신심과 신학은 교회가 보존하고 발전을 촉진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설립하셨고,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모든 계시와 신앙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는 성령의 힘으로 어느 시대나 장소를 망라하여 보편적인 진리와 신앙을 보존하고 발전을 촉진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시대적 진실이나 과정적 이론 체계를 보편적 진리로 주장하고 지성만을 교묘히 설득하려는 세력으로부터 참 진리를 보호할 사명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았습니다. 즉 교회를 떠난 성모 신심과 신학은 참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계 질서 안에 머물러 있다 하더라도 성령의 빛을 받지 못한 이의 주장이나 권한 행사를 교회의 가르침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교계 질서 밖에서 들려 오는 참된 성령의 음성과 가르침에도 기꺼이 경청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이해의 시각으로 성모님을 이해하고 예수께서 세우신 교회를 믿어 고백하고 이해하는 시각으로 성모님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성모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공경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무관한 성모님이나 교회와 관계없는 성모님은 환상이거나 우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서, 교부, 공의회의 가르침 하느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구원의 역사는 성부, 성자, 성신께서 이루시는 것이며 인간 신앙의 역사입니다. 이 역사 안에서 인간 역사 안에 직접적으로 들어오신 분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따라서 성모님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 역사에 들어오시는 과정에서 한 피조물로서 그리고 한 여인으로서 독보적인 역할을 하신 분이십니다. 성모께 대한 교회의 공적인 가르침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성서의 가르침 -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성모님의 역할은 신구약 성서와 성전을 통하여 점차 명백하게 드러납니다(교회 헌장, 55항). 구약 성서 중 창세기 3장 l5절은 ‘뱀에 대한 여인의 승리’를 예언하고 있으며 성서와 성전의 계시의 빛 속에서 볼 때 그 ‘여인’은 성모님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 여인은 아들을 낳을 ‘동정녀’이며 그 아들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불릴 것이라고 성서는 예언합니다(이사 7,14; 미가 5,23; 마태 1,22-23). “때가 찼을 때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게 하셨습니다.”(갈라 4,4)는 바오로 사도의 이 편지는 신약 성서 중 최초로 ‘여인’에 대하여 언급했지만, 성모님의 동정성에 대한 관심에서가 아니라 단지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의 역사 안에 오셔서 우리와 같은 처지에 계시게 되었다는 데 주된 관심을 보인 것입니다. 즉 육화 사건 안에서 하느님의 특별한 개입과 ‘여인’의 인간적 역할이 있었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성모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신 사건이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임을 전하는 성서는 마태오와 루가 복음입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을 하고 같이 살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한 것이 드러났다…….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마태 1,18-25)라고 한 이 구원의 역사는 성모님의 역할과 동정녀 잉태를 핵심적으로 진술합니다. 또한 루가 복음은 ‘성모 영보’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1,26-38 참조). 한마디로 루가 복음 사가는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사건이 처음부터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한 은총의 사건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되는 것이 없음을 강조합니다. 2) 교부들의 가르침 - 초대 교회가 유다 세계나 이교 세계와 논쟁을 벌인 것은 대부분 그리스도가 누구냐 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설명하노라면 마리아에 대하여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는 항상 논쟁의 중심부에 자리하였습니다. 따라서 초대 교회 교부들은 사도들이 전하는 신앙 유산을 보호하고 또 정확히 표현하여 가톨릭 교회의 교의를 확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35~110년) 주교는 에페소 공의회에 보낸 편지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와 하느님으로부터 나셨다. 그리고 마리아의 동정성과 그녀의 출산 그리고 주의 죽으심과 같이 하느님의 고요 속에서 성취되기는 하였지만 세상을 움직인 이 세 가지 신비는 세상의 왕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태오와 루가 복음이 전하는 성모 영보 기사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교부들은 성서와 성전을 연구하여 성모님의 면모를 발견하고 신학화하였습니다. 유스띠노는 창세기 3장 15절과 로마서 5장 12절에 근거하여 원조 하와와 마리아를 대조시켰습니다. “순결한 동정녀 하와는 뱀의 말을 받아들여 죄와 죽음을 잉태하여 출산하였다. 그러나 동정녀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의 말을 듣고 신앙과 기쁨으로 충만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유스띠노 교부가 성모님의 동정 잉태를 조금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리용의 주교였던 이레네오 역시 유스띠노의 이 마리아 신학의 입장을 취하면서, 첫째 하와는 불순종의 여인으로, 둘째 하와인 마리아는 신앙과 순종의 여인으로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하와의 불순명으로 엉킨 것을 동정녀 마리아는 신앙과 순명을 통해 풀었습니다. 두 여인 모두 결혼하여 남자가 있었지만 끝까지 동정녀로 머문 것은 마리아뿐이라고 하여 성모님의 동정성에 대해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초대 교회 때부터 성모님이 동정녀라는 신앙을 고백해 온 교회는 교부들의 노력과 이단의 자극을 받아 3세기부터 마리아의 평생 동정 교리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3) 공의회의 가르침 - 공의회의 가르침들은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교리가 혼미에 빠지자 예수 그리스도는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로부터 잉태되어 나오신 분으로서 완전한 하느님인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심을 믿어 고백해야 한다고 엄숙히 선언하였습니다.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와 381년의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동정녀 잉태에서 발전한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공식적으로 교회가 선언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431년의 에페소 공의회 역시 이 니케아 공의회의 선언을 재확인하면서 마리아께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드렸습니다. 한편 451년 칼체돈 공의회에서는 니케아의 신앙 고백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는 신성뿐만 아니라 인성도 온전히 존재한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 마리아에 의하여 태어나셨고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에게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1962년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헌장 제8장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서의 천주의 모친 복되신 동정 마리아’라는 제목으로 현대인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 대한 전통적 신앙과 현대적인 이해를 기초로 교회에 대하여 그리고 마리아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가르침들은 모두 그리스도론을 기초로 한 교회론과 관련을 갖기 때문에 마리아론 역시 그리스도론을 중심으로 교회론의 시각에서 조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세사에서 마리아의 위치와 역할은 오직 하느님의 호의에 의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리아의 동정녀 잉태나 평생 동정성도 하느님의 호의인 성령의 역사(役事)와 마리아의 신앙으로 인한 것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마리아의 동정성은 하느님의 신비적 역사에 대한 마리아의 신앙적 응답으로 이루어졌음을 교시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이다 동정녀 잉태와 출산에 대하여 과학적인 설명을 시도하려 들 때 우리는 실패하고 맙니다. 그리스도의 강생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관련된 교리 중에서 성체, 부활, 삼위 일체 등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 자체가 모두 초과학적 초지성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 핵심 진리들이 모두 하느님의 ‘계시’와 인간의 ‘신앙’에서 출발하고 마침내 그리로 되돌아감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동정녀 잉태 신앙은 사도 전승입니다. 교부들은 그러한 사도들의 가르침을 시대와 장소와 언어에 맞게 설명하고 신학화하였습니다. 만일 우리가 교부들의 가르침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사도들과 성서가 전하는 수많은 신앙 유산을 거부하게 되는 것이며, 우리의 존재 근거에 대하여 그리고 마침내는 자기 자신의 참 존재에 대한 회의론내지는 무의론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경향잡지, 1993년 5월호, 윤인규 라우렌시오(충남 청양본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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