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함 16호] 성서 번역본은 여럿일수록 좋습니다 하나이면서 여럿으로 번역된 ‘이본’의 성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요? 여러 번역으로 하느님의 말씀이 왜곡되지는 않을는지요? 특히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우리의 말처럼 원본에 따라 다르게 번역된 구절들을 우리 신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전반적인 성서 번역의 역사와 그 의미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물론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동으로 번역했다는 데 의미가 있는 공동 번역 성서에 관한 내용도 알고 싶습니다. 성서 번역의 시작 신약 성서에서 볼 수 있듯이 회당에서는 안식일의 ‘말씀의 전례’ 중에 구약 성서를 봉독하였습니다. 그런데 구약 성서는 히브리말로 쓰여졌고 당시 일반 대중은 아람말을 쓰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서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서 구절을 봉독하고 아람말로 번역하면서 동시에 설명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에 벌써 본토에 사는 유다인보다 외국 특히 그리스어권에 사는 동포들이 더 많았는데, 이들 중 대부분은 그리스말밖에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미 기원전 3세기부터 부분적으로 그리스 번역본이 나오기 시작하여 기원전 150년경에는 구약 성서 번역을 거의 마쳤습니다. 그 후 신약 성서가 그리스말로 기록되면서 그리스말 구 · 신약 성서가 그리스 문화를 전적으로 받아들인 로마 제국에 확산된 그리스도교의 공식 성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화가 덜 된 로마 제국의 변방에서는 그리스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북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이미 기원후 2세기부터 라틴말 번역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4세기에 예로니모 성인이 이스라엘에서 히브리말을 배우고 와서 개역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불가타’라는 이름으로 전해집니다. 그 후 7~8세기에 와서 불가타가 기존의 다른 라틴말 번역본을 완전히 밀어내고, 16세기 트리덴티노 공의회에서는 가톨릭 교회의 정통 성서로 선포됩니다. 성서는 이 밖에도 시리아말, 콩트말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성서가 완성되기 이전에 이미 성서의 번역이 시작되었고 특히 그리스도교가 수많은 민족들에게 퍼지면서 복음 전과는 곧 성서 번역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성서 번역의 당위성 이렇게 우리 믿음의 근본이 되는 성서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항상 새롭게 번역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서를 언어권에 따라, 그리고 말의 변천에 따라 그 시대와 장소에 적합한 언어로 늘 새로이 옮겨야 하는 것입니다. 성서 번역의 이러한 외적인 당위성 외에도 내적인 필연성이 있습니다. 옛부터 “번역은 반역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본문을 잘못 옮김으로써 본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뜻을 전달하게 되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더군다나 성서 히브리말과 그리스말은 오래 전부터 쓰이지 않는 말이기 때문에, 성서를 번역하는 데는 일반적인 어려움 외에도 특수한 난제들이 많습니다. 번역하는 데 문제가 없는 낱말이나 문장보다는 문제가 있는 것들이 더 많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고고학의 발굴과 성서학의 연구 등의 결과로써 성서 언어들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과 성서 본문의 새로운 이해가 계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성서 번역은 이것들을 참조해야 합니다. 완전한 번역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근본인 성서는 가능한 한 본문이 뜻하는 바대로 옮겨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한 번역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더욱 나은 번역을 늘 새롭게 시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실정 한국 가톨릭 교회는 불가타 성서를 부분적으로 번역해서 전례에 사용해 오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일치 운동의 열기에 힘입어 개신교와 성서를 공동으로 번역하기로 합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70년대에 탄생한 “공동 번역 성서”는 우리 나라 성서 번역의 역사는 물론 그리스도교 일치 운동의 측면에서도 획기적인 업적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부분의 개선교 교단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가톨릭 교회에서만 사용함으로써 공동 번역의 뜻을 살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공동 번역은 미국에서 제창된 새로운 번역 원칙언 “내용의 동등성을 취하여 독자들이 원문을 읽는 사람과 같은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고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번역본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것이 “공동 번역”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점은 동시에 단점도 될 수 있습니다. 내용의 쉬운 이해를 위해서 우리말에 치중하다 보니 본문에는 충실하지 못한 결과를 낳은 경우가 많아진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말을 살리기 위해서 성서 본문을 희생시키는 때가 적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는 성서학이나 산학은 물론이고 우리의 구체적인 믿음과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새로운 번역의 요청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와 같은 “공동 번역”의 근본적인 문제점 외에도 기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만 사용하는데도 판권은 계속 개신교 쪽의 ‘대한 성서 공회’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재정적인 면을 차치하고라도 가톨릭 교회 쪽의 방식과 필요성에 따라 출판하기가 여의치 않습니다. 그래서 1970년대에 몇몇 가톨릭 성서학자들은 성서 원문을 가능한 한 직역하고 해제와 주해를 붙여 출판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작업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데, 분도출판사에서는 일반 신도들에게도 더욱 정확히 번역된 성서를 보급하기 위해서 이 학자들이 옮긴 본문의 우리말을 다듬어 간단한 각주와 함께 “한국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 신약 성서” 보급판을 1991년에 내놓았습니다. 새로운 번역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절감한 주교회의 성서위원회에서도 1989년부터 성서 번역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능한 한 성서의 본문에 충설하면서도 교회 공용으로도 쓸 수 있는 번역본을 마련한다는 원칙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서 새 번역”이라는 이름 아래 일차 낱권으로 출판하여 선을 뵘과 아울러 비판을 수렴하고 자체적인 수정 작업을 거쳐 2000년까지는 구약 성서 전체를 발간할 예정입니다. 그때 가서 주교회의에서는 “가톨릭 교회 표준 성서”와 관련해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리라 봅니다. 아울러서 그때까지는 “공동 번역”에 비록 모자란 점이 없지는 않지만, 그 장점을 살려 계속 전례용으로 사용해 나가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교회의 “표준 성서” 번역본은 하나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밖의 번역들은 여럿일수록 좋습니다. 그것은 성서를 더욱 정확하게 우리말로 옮기고자 하는 많은 노력과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관심 때문입니다. 아직은 인력이 모자란 형편입니다만,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성서학자들은 본격적인 주석이 달린 번역본이나 주해서 등을 공동으로 또 개별적으로 많이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경향잡지, 1994년 1월호, 임승필 요셉(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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