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35)
39. 성령을 믿으며 (II)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싶고, 그와 함께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기에 사랑이신 하느님의 가장 큰 소망은 우리들과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싶으신 하느님의 마음은 구원의 역사를 통해서 단계적으로 계시되었고, 성령의 강림으로 말미암아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성부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하나되기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된 인간은 사춘기 청소년들처럼 하느님께 반항하고 하느님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하느님은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해 그런 인간들을 당신께로 불러 모으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께 돌아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성자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인간들이 하느님께로 오지 않으니까, 하느님께서 내려 오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어떠한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사랑하시고, 인간과 함께 하시고 싶어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이 확실하게 계시되었습니다.
마지막 단계로 성령 하느님께서 내려오셨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인간은 완전히 하나로 결합됩니다. 하느님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순간이고, 우리들의 갈망이 성취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성령은 믿는 이들 누구에게나 내려오십니다. 성령 강림은 창조의 신비와 강생의 신비의 완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때가 차자 성령께서는 마리아 안에,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 오시기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추신다. 마리아 안에서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성부께서는 세상에 임마누엘을 주신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태 1,23)는 뜻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744항).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갈라 4,6).
40. 성령은 어디에 계시는가?
성령 강림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다고 했는데,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는 “하느님의 함께 하심”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 중에 있고, 여러 가지 어려움 중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욕심으로 부글거리고, 부끄러움과 자책감을 느낍니다. 기도를 해도 평화를 얻기 힘듭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함께 하심”, 즉 성령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다만 “하느님의 함께 하심”은 우리의 주관적인 느낌과는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함께 생활하는 부부를 생각해 봅시다. 상대방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상대방의 마음도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은 확증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요? 상대방의 따뜻한 말 한 마디, 배려하는 행동 등을 통해서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을 바라보지 않고, “내 마음이 허전하다”는 느낌에만 갇혀 있다면 상대방이 어떤 행동과 말을 해 줘도 믿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함께 하심”을 느끼는 것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교회는 교회가 전하는 사도들의 신앙 안에 살아 있는 친교로서, 성령을 인식하는 장소이다. 곧,
- 성령께서 영감을 주신 성경 안에서,
- 교부들의 증언이 언제나 살아 있는 전통 안에서,
- 성령께서 도우시는 교회의 교도권 안에서,
-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게 하시는 성사의 전례 안에서 말씀과 상징을 통하여,
- 우리를 위하여 성령께서 전구해 주시는 기도 안에서,
- 교회를 이루는 은사와 직무 안에서,
- 사도적 삶과 선교적 삶의 표징들 안에서,
- 성령께서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고 구원 사업을 계속하시는 성인들의 증거 안에서(가톨릭교회교리서 688항).
옛날 신자들은 “하느님께서 하늘에 계신다”고 말했습니다. 요즘 신자들은 “내 마음 안에 계신다”고 말합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성령께서는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다시 말해 성령은 교회 안에 계십니다. 성령 강림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교회는 어떤 세속적 목적이나 인간적 친분에 의한 모임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끄시는 전혀 새로운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하는 것과 교회 생활에 참여하는 것은 같은 말입니다. 사도신경에서 성령께 대한 언급과 교회에 관한 언급이 연이어서 나오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교회 역사상 성령 체험을 했다고 주장하던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들은 행실도 바르고, 신앙적 열성도 대단했지만 다른 신자들과 함께 하지 못했기에 교회를 떠났고, 그 결과 그들의 성령 체험이 진실된 것이 아님이 드러났습니다. 개인의 감정, 개인의 열정은 한계가 있습니다. 열광 상태가 모두 다 성령 체험의 증거는 아닙니다. 축구 경기를 보면서도 자기를 완전히 잃어버릴 정도로 열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성령 체험은 교회 생활 안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교도권의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교황님을 중심으로 하는 가톨릭 교회에 속해 있을 때, 우리는 성령 안에서 살고 있다고 믿어도 됩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 머물러 있으면 성령을 체험한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흡족한 대답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세례를 받았고, 교회 안에서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으로 교육을 받고 있으며, 기도 생활과 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함께 하심”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만큼 우리를 위협하는 세상 어둠의 힘이 강력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들려도, 굳건히 우리 곁을 지켜 주시는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26).
[2013년 6월 30일 연중 제13주일(교황주일) 의정부주보 5-7면, 강신모 신부(선교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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