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돋보기- 예비신자 교리교육] 오늘날 한국 교회 예비신자 교리교육의 문제점 한국 교회 안에서 ‘교리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영역이 아니다. 1990년대 초부터 예비신자 교리교육의 문제점들의 심각성을 자각하기 시작한 한국 교회는 여러 가지 요인을 끊임없이 분석하면서 이에 해당하는 해결책들을 지속적으로 제시하여 왔다. 그래서 교리교육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이들에게 이 논의는 이미 익숙해져 버렸거나 또는 진부한 문제로까지 취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예비신자 교리교육의 문제가 이미 해묵은 문제로 인식되어져 더 이상 새로운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는 이 사실은 지금까지 지적된 많은 문제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채 정체되고 고착되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교리서의 문제’, ‘교리교사의 문제’, ‘예비신자 교육기간의 문제’, ‘어려운 용어의 문제’, ‘현실과의 괴리문제’, ‘교육방법론의 문제’ 등은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왔지만 여전히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문제점으로 남아있는 것들이다. 불행히도 이 문제들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교리교육의 문제점을 다시 부각시키려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여전히 풀리지 않은 문제들에로의 새로운 접근으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더 광범위하고 복합적인 문제다 오늘날 교리교육의 문제들을 다루는 여러 시도들을 접하면서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이 시도들이 주로 교리교육의 테두리 안에서만 국한되어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자면, 교리교육의 현안 문제들을 다룰 때 교리교육 내부의 방법론적인 문제들에만 관심을 너무 집중하고 있는 것이 일차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교리교육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일차적으로 인지되고 진단되고 분석되어지고 해결되어지는 곳은 분명 교리교육이 이루어지는 일선 현장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오늘날 교리교육의 문제점들을 생각하면서 사람들의 우선적인 관심은 교리교육 내부의 여건들이나 구성요소들에로 자연스럽게 쏠리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은 현재의 교리교육이 내부적으로 무슨 큰 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을 가지게 만들고, 결국 일선의 교리교육 담당자들에게 그 개선의 책임이 일방적으로 전가되어 버리는 경향으로 자주 흘러간다. 실제적인 문제는 교리교육이 안고 있기 때문에 교리교육 담당자들이 구체적인 방안들과 방법들을 속 시원하게 하루빨리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이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져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오늘날 교리교육의 현안 문제들이 정말로 교리교육 내부의 문제이고 또 그 담당자들이 그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라면, 지금까지 한국 교회가 교리교육을 쇄신하고자 기울인 그 수많은 노력들에 의해서 그 문제점들의 상당 부분이 이미 해결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교리교육의 문제들은 표면적인 현상들보다 더 광범위하고 복합적인 배경을 지니고 있다. 사회 전반의 제반환경이 변했다 오늘날 교리교육의 문제들이 답보상태에 빠져있는 것도 사실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 이면에 더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교회가 겪고 있는 교리교육의 난제들은 교리교육 자체가 안고 있는 방법론적인 문제점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긴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교리교육이 마주하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교육적, 경제적, 정치적 환경들에서 발생하는 것들이다. 엄격하게 말해서, 예비신자들과 새 영세자들의 수가 줄어들고 냉담률이 높아지는 현상은 잘못된 교리교육 방법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전반의 제반환경의 변화에 의해 더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 경제적 성장이 만들어내는 인간의 생활과 의식의 변화, 새로운 환경과 인간중심적 논리 안에서 새롭게 형성되어지는 가치관, 발전과 변혁의 흐름 안에서 새로이 부각되는 비전과 사회적 문제, 과학과 기술과 사회적 제도들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생겨나는 새로운 이상과 희망 등은 현대인들의 삶의 모든 것을 재편성하고 바꾸어놓고 있다. 이 변화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사람들의 정신세계와 종교관과 종교심까지도 크게 바꾸어놓고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교리교육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결정적인 문제이다. 오늘날 교리교육에서 드러나는 세부적인 문제점들은 이러한 사회적인 제반환경과 연결시켜 이해되어져야만 한다. 과거의 주입식 교육이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려운 이유도, 기존의 교리서들이 문제시되는 것도, 교리교사들의 양성 문제나 교리용어의 난해도 문제도, 현실과 신앙의 연결문제도 모두 오늘날 교리교육이 상대하는 사람들의 급격하게 변화되는 생활환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져 발생하는 것들이다. 현대인에게 적합한 새 신앙전달 체계가 필요하다 오늘날의 교리교육의 문제를 이렇게 광범위한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우리의 교리교육 문제는 방법론적인 부분에서만 접근되어야 할 것만이 아니다. 만일 오늘날의 교리교육의 문제를 방법론적인 영역에서만 해결하려고 시도하게 되면 그 문제가 예상했던 만큼의 개선효과를 얻지 못할 뿐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동시에 도입된 다른 방법론적 요소들과 충돌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명의로 1999년도에 발간한 “한국 천주교 예비신자 교리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교리서의 서두에 실려있는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위원장의 ‘교리서 편찬을 마치고’라는 논고를 보면, 오늘날 교리교육이 개선해야 할 가장 핵심적이고 심각한 현안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이 교리서에서 시도하는 새로운 방법들이 다음과 같이 제시되어 있다. 첫째, 일방적인 개념 전달의 주입식 교수방법을 벗어난 대화식 교육방법, 둘째,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이 이루어지는 교리교육, 셋째, 초월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용어를 피하고 누구나 자신의 상황에서 쉽게 복음의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교리서, 넷째, 신앙과 생활이 긴밀히 연결되어지는 교리교육, 다섯째, 예비신자의 상황을 고려하여 점진적인 단계로 펼쳐지는 교리교육. 이 다섯 가지 방법론적인 면들은 아주 중요한 사안들이긴 하지만 이들이 통합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분리된 구성요소들 안에서 독립적으로 적용되어 있기 때문에, 이 교리서에서 새로 도입된 이 방법들이 그리 큰 개선의 효과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교리교육을 위해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핵심 문제들은 교리교육의 방법론이란 제한되고 세부적인 영역에서 산발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과 현대세상을 함께 바라보는 총체적인 관점에서 이들이 모두 함께 체계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곧 새로운 형태의 교리교육의 모델들이 창의적으로 모색되어져야 함을 뜻한다. 이 새로운 교리교육 모델의 모색은 변화된 세상과 그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대상으로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접목시키는 것에 우선적인 초점이 맞춰져야만 한다. 과거 세대와 그 사람들에게 비교적 잘 통용되던 교육방법이 오늘날에 와서 문제시된 것은 세대와 그 사람들이 바뀌어져 있기 때문에 오늘날 세대와 현대인들을 위해서는 이에 적합한 새로운 형태의 신앙전달 체계가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교리교육 모델에 대한 모색은 낡은 기계의 부품을 부분적으로 교체하는 수준이 아니라, 기존의 교리교육이 지니고 있던 구도와 구성과 논리를 벗어나는 총체적인 혁신이어야 한다. 하느님과 사람들을 더 깊이 경청하면서 만나야 한다 이러한 전폭적인 쇄신을 위해서 교회는 우선적으로 두 가지 면을 주의 깊게 주목하고 이해하여 새롭게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오늘날 교회가 만나는 예비신자들이고 또 하나는 교회가 오랜 역사를 통해 간직하고 있는 신앙의 유산이다. 교리교육은 교회의 일방적이고 무계획적이고 임기응변식의 외침이 아니라 특정문화와 특정지역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살아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교회의 생생한 신앙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전달하는 교회의 직무이다. 교회가 간직하고 있는 신앙이 늘 구체적인 역사 안에서 형성되고 전달되었다고 해서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도 그 신앙이 자동적으로 호소력 있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 교회의 신앙이 나름대로의 역사적 특수성과 개별성을 지니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받아들여지려면, 교회의 신앙이 품고 있는 구체적 역사성과 현대인들이 지니고 있는 정신적 또는 물질적 성향이 대단히 깊이 있게 통찰되어져야 하고 또 이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접합되어져야 한다.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교의 구체적인 신앙세계와 그 전달체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전제되어야 하며 또 동시에 그 신앙의 눈으로 현대인들의 사회 환경에 대한 심도 있는 관찰과 접근이 이루어져야 이것이 가능한 것이다. 이 그리스도교 신앙과 현대세계와의 관계맺음은 단순한 몇몇 가지의 방법론적인 접근을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교회는 그리스도교의 신앙의 본질적인 측면에로 더 깊이 나아가야 하며 동시에 현대인들의 세계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오늘날 교리교육의 문제들을 풀어내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해 내려면 하느님과 사람들을 더 깊이 경청하면서 만나야만 한다. 이런 면에서 오늘날 교리교육의 문제는 교회의 존재론적 관계 문제로 부각되어진다. 간단히 말하자면, 하느님을 온 존재로 마주 대하는 교회는 현대인들을 신앙인으로 변화시키고자 그들과도 전 존재적으로 마주 대하고 있어야만 이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신앙과 현대인들의 세계를 서로 통교하게 해야 한다 오늘날 교리교육의 문제는 단순히 방법론적인 몇몇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교회가 현대세계와 현대인들 안에서 펼쳐내야 하는 구원의 현재화의 문제이다. 이 때문에 우리의 교리교육 문제는 바로 교회의 존재와 직결되는 신앙의 문제이다. 구원역사 안에서 맺어지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형성에 대한 통찰력을 통해 교리교육은 오늘날 사람들도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그 구원의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지평을 열어주어야 하며, 오늘날 사람들에게 접근하시고 있는 하느님과 그분을 느끼고 희망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교리교육 안에서 구원역사의 연장으로 재조명되고 재해석되어져야 한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모든 교리교육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교육학적 문제이기 이전에 그리스도교 신앙 그 자체의 문제이다. 과거의 주입식 교리교육의 문제를 벗어나는 길도, 쉽고 생활과 밀접한 교리교육을 할 수 있는 비결도, 성경을 더 활용하면서도 예비신자들의 상황에 적합한 점진적인 교리교육을 전개할 수 있는 방법들은 사실 신앙의 세계와 현대인들의 세계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접근을 통해서만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신앙의 세계도 현실의 세계이며, 현대인들의 세계도 현실의 세계이다. 이 두 세계에 대한 문을 교회가 열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이 두 세계를 서로 통교하게 만드는 길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라는 것이 교리교육의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또 가장 본질적인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구세사 안에서 인간에게 접근하시고 그들과 대화하시며 그들과 관계를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시는 하느님의 태도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경향잡지, 2010년 4월호, 한영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대구대교구 소화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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