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해설 (7) 십자가에 못 박혀 수난하고 묻히셨으며
세상에는 많은 고통과 불행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죄를 지어서 서로 고통을 주고받는 것이지만, 어떤 이들은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정말 계신다면 어째서 불행을 멈추지 않으시는 것인지, 어째서 죄 많은 사람이 편하게 잘 살고 착한 사람이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를 따져 묻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죄를 없애시는 방법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네가 너무 불쌍해서 간장이 녹는구나. (호세 11,8)
정의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선행을 행복으로 갚으시고 죄악을 벌하십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거역한 죄는 무엇으로 값을 치러야 합니까? 자기에게 목숨을 주신 분을 배반한 죗값은 죽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자식으로 여기시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지은 죄 탓에 죽어가는 모습을 차마 보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인간 부모도 자식이 아파서 울면 애가 타고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하고 바라는데, 죄인들의 죽음을 보시는 하느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나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는다. (에제 33,11)
우리 사람들은 악인을 미워하고,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에게는 원한을 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에 아주 몹쓸 짓을 저지른 사람이 등장하면 죽어 마땅하다고까지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는 그 극악한 죄인도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착하시기 때문에 죄를 싫어하시고, 죄 때문에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것을 슬퍼하십니다. 하느님께서 택하신 방법은 당신이 우리가 자초한 벌을 대신 받으시는 것이었습니다.
내 아들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2사무 19,1)
죄인은 남을 위해 희생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가 벌을 받는다면 자기 죄 탓입니다. 하지만 착한 사람은 죄인을 위해 희생할 수 있고, 그 희생은 큰 가치를 지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사람이 되게 하시어 인류가 치러야 할 죗값을 대신 치르게 하셨습니다. 사도께서는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2코린 5,21)하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착하신 분이 죄인들을 위해 스스로 희생되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라고, 하느님께서는 자격 없는 우리의 죄도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 덕에 무죄하게 되었으니, 죄인들을 위해 대신 희생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입니다.
[2013년 7월 21일 연중 제16주일(농민주일) 대구주보 4면, 문화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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