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사제가 될 수 없는가? 언젠가 교회 신문을 보니, 교황님께서 남성만이 사제가 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므로 여성은 사제직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성보다 여성 신자의 비율이 더 높은 우리 교회 현실로 보나 남녀평등을 부르짖는 사회 분위기를 보나 가톨릭 교회만이 남성 우월주의적 냄새를 풍기는 "남성만이 사제가 될 수 있다"는 원칙을 계속 지켜나가야 되는 건지요. 문제 제기 교회 역사, 특히 서방 교회의 역사를 살펴볼 때 여성이 사제직에 참여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보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 견해입니다. 일부 학자는 부제직의 경우 여성이 참여한 적이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문헌을 통해 증명하지는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로마 가톨릭 교회는 남성만이 성직(부제, 사제, 주교)을 맡을 수 있다는 전통을 고수해 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남성 중심의 사제직 전통을 옹호하는 학자들 가운데 일부는, 예수님이 사도들을 뽑으실 때 남성만을 고르셨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남성 사제직은 하느님이 정하신 법이라는 논리를 펼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역사·문화적 배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편협한 의견이라고 봅니다.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 여성은 아기를 낳아 종족을 보존하는 임무를 지닌, 남성의 부속물 정도로만 인식되던 사회, 여성의 인권이나 사회적 활동은 거의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사회·문화적 배경을 고려할 때, 예수님께서 여성을 사도로 뽑는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 파스카의 신비(수난과 죽음, 부활)를 통해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분은 여성 해방이라는 주제에 매달려 당시 지배층과 논쟁을 벌이다 자칫 인류의 구원이라는 당신 본래의 임무를 소홀히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죄 외에는 우리 처지와 똑같아지신 그분께서 당시 사회에 바탕을 두고 하신 언행을 근거로 하여 여성은 사제직에 불림받지 않았다는 주장은 그다지 설득력을 지녔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교회의 전통이란 이름으로 여성의 사제직을 금하고 있는 것 역시 오늘날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만일 여성사제직이 하느님의 법에 의해 금지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전통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라면 상황이 달라진 지금 낡은 법을 계속 고집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신학적으로도, 하느님은 남자와 여자를 평등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 둘 사이에 인격적 차별은 있어서 안된다는 것을 주장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여성을 사제직에서 떼어놓는 것은 하느님의 뜻과도 어긋난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도 많습니다. 여성운동과 여성사제직 여성이 사제직에 참여할 수 없다는 교도권의 방침은 사실상 신학적 이유, 즉 하느님이 그렇게 명하셨다는 것에 기초를 두지 않고 여성이 한 번도 사제직에 참여한 적이 없다는 전통과 역사적 이유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시대가 달라진 지금 여성사제직 문제는 긍정적으로 제기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일부 여성운동가들이 말하는 "여권 신장"이라는 측면에서 여성사제직을 다룬다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현실이 어떠하든 사제직은 "권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사제직이 봉사직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권위"로 변형되어 왔음이 사실입니다. 이때문에 사제직의 본래 모습, 즉 사람을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신을 죽임으로써 사람과 인간 사이의 다리 역할을 수행하는 직무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지금, 사제직에의 참여를 권위와 힘에의 참여로 이해한다면 그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남성과의 동등한 권위의 분배를 주장하는 "여권 신장"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여성도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할 임무가 있다는 신학에 바탕을 두고 여성사제직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동방 교회들과의 일치 문제 같은 서방 교회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개신교의 형제들과의 일치도 중요하지만, 많은 부분에 있어 초기 교회의 공통 자산에 기초하여 공통 신학과 전례 자산을 공유하고 있는 동방 교회들과의 일치 문제는 가톨릭 교회에 있어 아주 긴급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여성사제직과 관련지어 볼 때 문제는 동방 교회들이 여성사제직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터에 가톨릭 교회가 일방적으로 여성사제직을 허용할 경우 동방 교회들과의 일치 문제는 더욱 어렵게 될 수 있음이 사실입니다. 성공회와의 일치를 위한 대화가 성공회 측의 일방적 여성 사제 임명으로 인해 큰 어려움에 처해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는 실로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동방 교회들과의 신학적 대화를 통해 상호 이해를 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습니다. 여성의 사제직에의 참여라는 한 가지 "선"(善)을 위해 동방 교회들과의 일치라는 또 다른 "선"이 파괴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준비된 개혁만이 성공한다 여성사제직을 둘러싸고 있는 문제가 이렇듯 간단하지가 않기 때문에 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동등하게 참여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무시하고 남성 위주의 성직자로 이루어진 교회 현실에 안주할 수는 더욱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신자들이 무엇보다도 열린 마음, 즉 여성은 사제가 될 수 없다는 고정 관념에서 깨어나 여성의 품위와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현실이 비록 잘못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사제직은 또 다른 힘이나 권위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봉사직의 연장(延長)이라는 사실을 똑바로 보고, 여성도 바로 이러한 봉사직에 남성과 동등하게 불리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외 여성사제직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 동방 교회들과의 충분한 신학적 대화를 가짐으로써 여성사제직 문제가 교회일치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미리 막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분명 여성의 인격과 품위를 존중하셨지만, 형제들간의 일치 또한 간절히 원하셨기 때문에 이 두 가지 모두 소홀히 다뤄서는 안될 것입니다. 미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이루어지는 개혁은 실패하기 쉽습니다. 잘 준비된 개혁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여, 먼저 우리부터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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