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내라고요? 몇 달 동안 예비자 교리에 참석하여 교리를 배운 후 올 성모 승천 대축일에 영세를 받은 사람의 대부를 선 사람입니다. 영세를 받기 전 제 대자가 제게 와서, 교리를 담당하셨던 수녀님이 예비자들에게 신부님께 영세 미사 때 감사예물을 바치라고 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조금 야릇하더라는 겁니다. 성당에서 세례라는 선물을 주었으니, 너희도 그에 마땅한 돈을 내야 되지 않느냐 하는 식의 상업적 느낌이 들어 꺼림칙하다는 제 대자의 말이었습니다. 이에 감사예물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그를 납득시키려고 하기는 하였지만 왠지 저 자신도 마음이 개운하지는 않았습니다. 세례를 받기 전 꼭 감사예물을 내야 하는 것인지요. 주객이 바뀌다 언젠가 강릉 경포대 해수욕장으로 놀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해수욕장 일대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습니다. 강릉에서 경포대 해수욕장으로 가는 시내 버스를 탔습니다. 도립공원 입구의 매표소에 도착하니 버스가 서고 이어 도립공원 관리인인 듯한 사람 하나가 버스에 올라타서는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주민이 아닌 사람은 다 내리세요!" 너무나 당당한 그의 목소리에 기가 죽어 저를 비롯한 경포대 주민이 아닌 사람은 모두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내리자마자 버스는 도립공원 안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버스 종점은 매표소에서 약 200미터 안쪽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입장표를 사면서 저는 너무나 화가 나 그곳 관리인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버스 요금을 냈기 때문에 종점까지 갈 권리가 있으므로 당신들이 버스 안에서 표를 팔든지 아니면 우리가 표를 산 다음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도록 해야 될 것이 아닙니까?" 그러자 조금 전 버스에서 내리라고 한 관리인이 변명 비슷하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종점이 여기에서 별로 안 먼데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에 화가 더 난 저는 "요금 징수를 당신들 편의대로 하자고 우리 관광객들은 불편을 감수해도 된다는 겁니까?" 하고 한번 더 목소리를 높여 불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들 잘못을 아는지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관광 도시임을 내세우는 강릉에서 이런 행위가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강릉에 대한 인상이 아주 나쁘게 바뀌는 것은 비단 저뿐만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관광객에게 가능한 한 친절과 편의를 도모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자기들 편의를 위해 관광객에게 불편을 강요하는 곳이 과연 진정한 의미의 관광 도시라 할 수 있을까요. 감사예물은 의무인가? 수도권에 속하는 한 본당에 사는 신자 한 분이 분개한 목소리로 제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남편만 신자이고 아내는 개신교 신자로서 오랜 세월 혼인성사를 받지 못한 채 살아온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개신교 신자인 그 아내가 천주교에 다니겠다고 하면서 아이들까지 전부 성당 교리반에 들여보내는 것은 물론 자기 자신도 영세반에 들어갔습니다. 오랜 천주교 전통을 가진 집안에서 자라났음에도 불구하고 혼인성사를 받지 않아 신앙 생활을 하지 못했던 남편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겠지요. 착실한 준비 끝에 드디어 아이들도 아내도 영세를 받았습니다. 이어 혼인성사까지 받았는데, 성당에서 일하는 사람이 이들 부부에게 신부님께 감사예물을 바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면서 상당히 많은 돈을 제시하자 이 부부는 무척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세와 혼인 성사 준비로 바쁜 나머지 주머니에 넣어둔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해서 나중에 드리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적지 않은 돈을 마련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지라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다 보니, 본당 사무장이 집에 전화를 걸어 감사예물을 빨리 가져오라고 독촉했답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독촉 전화를 한 것은 물론이요 어른들이 없어서 아이들이 받으면 아이들에게까지도 성당에 돈을 빨리 가져오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리라고 시켰답니다. 이 말을 전하던 그 신자는 다음과 같이 제게 항변하였습니다. "신부님, 감사예물은 말 그대로 은총을 받은 이가 하느님과 사제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내는 것이 아닙니까? 따라서 액수는 물론이요 그것을 내든 안 내든 역시 본인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성사에 따라 내야 될 액수를 정해 놓고 그것을 성사받는 이 모두가 내야 하는 것으로 정한다면, 이게 무슨 감사예물입니까? 세금이나 마찬가지지요." 돈이 많이 들어 성당에 다니기 힘들다? 교회를 경제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각 신자들이 능력껏 돈을 내는 것은 굳이 성서 말씀을 인용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신자가 납득하고 있다고 봅니다. 또 교회 안에서 신자들을 위해 일하는 사제를 신자들이 경제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문을 품지 않을 것입니다. 이때문에 교회가 각 신자들에게 구약의 십일조에 해당되는 교무금을 배당하고, 미사 때 헌금을 거두며, 사제에게 성사나 준성사를 집전하여 주기를 청할 때 감사예물을 바치는 관행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사제에게 미사를 청하거나 성사 또는 준성사를 청할 때 신자들이 사제에게 감사예물을 드리는 것은 교회의 오랜 전통이 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의미에서 자원해서 바치는 감사예물을 강제적으로 거두는 것은, 마치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봉사해야 할 공원 관리인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관광객의 불편을 강요하는 것과 같은, 주객이 전도된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또 감사예물을 강제적으로 거두는 것은 마치 교회가 성사의 은혜를 돈 받고 파는 것과 같은 인상을 주어서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한편 교회가 강제적 성격의 감사예물을 남발할 때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성당에 다니지 못하는 일도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세금과 같은 느낌을 주는 강제적인 감사예물의 부과는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감사예물은 말 그대로 신자 각자가 알아서 낼 때 그 본래 의미가 더 잘 살아나지 않을까요. 신자들의 입장에서는 강제적 성격의 감사예물을 거부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지만,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거부할 권리가 있으며, 돈 때문에 성사 집행을 거부할 사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에, 돈이 없어서 또는 감사예물을 내지 않았다고 해서 성사 또는 준성사를 받지 못할까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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