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70) 전체 민주주의 제도에 위험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하)
절대권력화에 미디어 너마저...
교회는 민주주의를 높게 평가한다. 민주주의가 "시민들에게 정치적 결정에 참여할 중요한 권한을 부여하며, 피지배자들에게는 지배자들을 선택하고 통제하고 필요할 경우에는 평화적으로 대치할 가능성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정한 민주주의는 법치 국가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올바른 인간관의 기초 위에 성립한다고 교회는 가르친다(요한 바오로 2세, 회칙 「백주년」 46항 참조).
법치란 "개인들의 독단적 의사가 아니라 법이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올바른 인간관이란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며, 그 자체로 목적이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가라는 정치 공동체도 민주주의 제도도 인간의 존엄함과 인권, 그리고 인간의 삶의 조건인 '공동선' 실현을 위한 도구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들
"진정한 민주주의는(…) 모든 인간의 존엄, 인권존중, 정치생활의 목적이며 통치 기준인 공동선에 대한 투신과 같은(…) 가치들을 확신 있게 수용한 열매이다." 국가권력(공권력)의 존재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류 역사는 '개인들의 독단적 의사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법치로 극복했고, 국가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권력분립'(입법, 사법, 행정의 공권력)으로 균형과 견제를 발전시켜 왔다(「간추린 사회교리」 407ㆍ408항 참조). 우리는 이를 '민주공화'(民主共和)라고 이름한다.
그러나 교회는 현실에서 어떤 정치체제도 완전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바로 '죄의 구조들'의 존재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과 이웃의 선익에 반하는 태도와 행동들, 그리고 그것들로 구축된 죄의 구조들, 그 안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든 이익을 집어삼키려는 욕망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쟁취하려는 권력에의 욕망이 강렬하게 꿈틀거리고 있다(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사회적 관심」 37항 참조).
게다가 역사는 "사적 이익이나 이념적 목적을 위하여 국가의 권력을 점령하고 폐쇄된 지배집단을 형성하는"(「백주년」 46항) 일이 얼마나 빈번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치 공동체가 이른바 경제독재와 정치독재의 무대로 이용된 경우다.
사실 우리의 현대사는 이 죄의 구조들을 극복하고 진정한 민주공화를 실현하려는 힘겨운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존엄을 확인하고, 인권을 발전시키며, 공동선을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분들이 희생됐는지 오늘의 우리는 그분들의 희생에 빚을 졌다. 이는 우리가 미래 세대에 책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왜곡, 시민 인권과 존엄 위협
그러나 우리는 쉽게 망각한다. "사적 이익이나 이념적 목적을 위해 국가권력을 독점한 폐쇄적 지배집단"이 민주공화를 얼마나 심각하게, 얼마나 끈질기게 왜곡했으며, 깊은 상흔을 남겼는지를 말이다. 일제강점부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폐쇄적 지배집단은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은밀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민주공화를 부정한다.
부끄럽게도 우리는 폐쇄적 지배집단의 강압에 의해 침묵하거나, 때로는 무감각과 무관심으로, 때로는 적극적으로 죄의 구조들의 확장을 돕는다.
정보도 한몫을 한다. 교회는 '정보'가 민주적 참여를 위한 주요한 도구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그러면서 "정보의 객관성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 가운데 특별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소수의 사람이나 집단들이 조종하고 있는 뉴스 미디어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에, 정치 활동, 금융기관, 정보기관들의 유착까지 더해지면, 이는 전체 민주주의 제도에 위험한 결과를 미친다"(「간추린 사회교리」 414항)고 경계한다.
이른바 국가정보원과 관련된 일련의 '새로운 사태'는 폐쇄적 지배집단이 죄의 구조들을 이용해서 민주공화를 노골적으로 부정하고, 이에 우리의 무감각과 정보의 비윤리성(「간추린 사회교리」 416항)이 가세한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게다가 시민을 위한 봉사의 목적에서 일탈한 행정부를 바로잡아야 할 입법부의 무능함과 사법부의 수수방관은 법치를 적극적으로 포기한 것은 아닐까. 그렇게 '삼권'이 협력하고 대중매체가 협력함으로써 폐쇄적 지배집단이 절대 권력화된다면, 그 대가는 모든 인간, 곧 시민의 존엄과 인권과 공동선의 실종일 수밖에 없다.
[평화신문, 2013년 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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