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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42: 교회에 맡겨진 구원전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05 조회수1,833 추천수0

[신나고 힘나는 신앙 -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42) 교회에 맡겨진 구원전권
 
오늘도 ‘밥’이 되시어 ‘구원’으로 이끄시는 예수님 …



■ 찝찝해서 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구원사업을 계승하도록 교회를 세우셨다. 그리고 교회에 구원 전권을 맡기시고 구체적인 방편으로 7성사를 제정하셨다. 7성사는 삶의 여러 단계에 부합하는 영적 은총을 제공한다. 성사의 연쇄 고리 가운데 반복되는 것은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다. 그러다 보니 이 두 성사는 간혹 권태나 회의를 수반하기도 하고 웃지 못 할 해프닝도 많이 일어난다. 한 번은 어떤 신자가 고해성사를 보러 왔다.

“지난번에 딴 데서 고해를 봤는데요, 찝찝해서 또 합니다.”

이건 열심도 믿음도 아니다.

“한 번 사죄경이 내려지면 완전히 용서 받은 겁니다. 믿으세요! 찝찝하다고 다시 하지 마세요! 그건 믿음이 없다는 걸 표내는 것이니까요.”

차제에 교회에 맡겨진 성사의 효력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성사의 효력을 사효적(事效的) 효력과 인효적(人效的) 효력으로 구분한다. 사효적 은총은 성사 집행 자체에 보장된 은총, 인효적 은총은 개인의 심적, 영적 준비 상태에 따른 은총을 말한다.

칠성사는 ‘사효적’(ex opere operato: 성사 거행 그 자체로) 효력을 가진다. 그리스도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이름으로 예식이 거행되면 거룩한 상징과 집전자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신다.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이요 행동이다. 그러므로 성사 집전을 통해서 구원과 은총이 주어진다. 예식 자체의 힘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이를 성사의 사효적 효력이라 한다.

그런데 그 자체로 효력을 낳는 성사도 회개와 믿음을 통한 인간의 응답 없이는 효과가 없다. 이것을 ‘인효적’(ex opere operantis: 성사 거행자의 정성으로) 효력이라 한다. 성사의 결실은 그것을 받는 사람의 마음가짐에도 달려 있다.


■ 교회의 매고 푸는 권한

7성사는 교회에 위임된 구원 전권의 구체적 구현 방편이며, 이는 ‘매고 푸는 권한’으로 압축된다. 마태복음 16,18-19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수장으로 한 교회에 그 엄청난 권한을 맡기셨다.

예수님이 어느 날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 하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하자 크게 칭찬하시고,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선언, 열두 사도의 수장으로 삼으시고 하늘 나라의 열쇠를 넘겨주셨다.

“너는 베드로(그: petros=게파)이다. 내가 이 반석(그: petra=게파)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8-19).

‘베드로’를 뜻하는 그리스어 ‘페트로스’는 ‘바위’를 뜻하는 ‘게파’, 한국 이름으로 치자면 ‘돌쇠’다. 이처럼 예수님은 시몬 바르요나를 바위라는 뜻의 ‘게파’(아라메아어) 곧 ‘베드로’(그리스어)라 부르고, 그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선언하셨다. 이어 ‘하늘 나라의 열쇠’와 ‘매고 푸는 권한’을 주셨다.

먼저, ‘반석’의 의미는 무엇인가? 에페소서는 예수님이 교회의 ‘모퉁잇돌’이 되시며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기초’가 된다고 선언한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에페 2,20). 맨 밑바닥의 ‘모퉁잇돌’이 예수님이시고 그 위에 얹혀 있는 ‘기초 돌’이 베드로 및 사도들이라는 것이다.

‘내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예수님이 ‘내 교회’라고 말씀하신 것은 소유를 뜻하는 게 아니라, 구약의 교회와 다른 신약의 교회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교회는 새 계명을 가진 교회이다. 여기서 ‘새 계명’은 무엇인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이는 엄밀히 ‘새 계명’은 아니다. 구약의 십계명에도 비슷한 조항이 있다. 그러면 뭐가 새로운가? 구약에서는 예수님도, 성령도 없었다. 율법과 의무만 있었고, 할 수 있는 능력, 본보기, 멘토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이 보태졌다. 이것이 새로운 교회의 조건이다. “얘들아, 봤지? 내가 어떻게 사랑했니? 무조건 사랑했지, 내가 차별했냐? 내가 잘난 사람들하고만 회식했냐? 내가 똑똑한 사람들이랑만 토론했냐? 아니잖아. 내가 조건을 붙였냐? 안 붙였잖아. 그러니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그 사랑을 받았으니, 서로 사랑하라. 더욱이 파라클리토가 함께 한다. 성령께서 너희와 함께 하면 안 되는 것도 된다.”

이처럼 구약에는 의무밖에 없는데 신약에는 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다. 이것이 새 계명이다. 사랑할 수 있는 본도, 사랑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고, 이미 먼저 사랑받은 체험도 있기에 새 계명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새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내 교회를 세운다는 말씀이다. 이쯤 되면, 신약의 교회가 얼마나 신나고 사랑이 차고 넘치는 교회인지 절로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베드로에게 주어진 ‘하늘 나라의 열쇠’는 무엇인가. 복음의 힘으로 천국문의 문턱을 낮추고 죄인들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구원활동을 펼칠 수 있는 권한과 사명을 뜻한다. 이 대목에서 결정적인 것은 교회의 반석인 베드로에게 천국문의 열쇠와 함께 ‘매고 푸는’ 전권이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매고 푸는’ 권한은 책임을 묻고 해제하는 권한, 용서의 권한, 나아가 생사를 관장하는 권한을 뜻한다. 이 엄청난 전권이 베드로와 교회에게 주어졌다.


■ 나를 기념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성사 가운데 중심이 성체성사다. 작별의 때가 오자 예수님은 당신 사랑을 빵으로 가시화해 나누어 주셨다. 당신 몸을, 곧 그 만큼의 사랑을 생명의 빵으로 내어놓으셨다.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마태 26,26). 이어 예수님은 당신 피를, 죄의 용서를 위한 계약의 증표로 내어 주셨다.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태 26,28).

실제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이 말씀을 이루셨다. 이로써 양의 피흘림을 통한 구약의 파스카(희생) 제사가 예수님의 피흘림을 통하여 추월 불가능하게 완성됐다. 하느님의 구원섭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제사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완수되었다. 예수님은 당신의 이 기묘한 사랑의 업적이 모든 세대에 대물림하며 생생하게 재현되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명하셨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그 덕에 우리는 오늘도 ‘밥’이 되시는 예수님을 먹으며 살고 있다. 성체성사뿐이 아니다. 다른 성사들에도 이러한 자기희생적인 사랑이 녹아들어 있다. 모든 성사 안에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만나는 것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몰아적인 사랑이다.

성체성사와 관련하여 성 토마스 데 아퀴노는 엄청난 사실을 말한다.

“우리가 드리는 매일의 미사는 예수님의 십자가 제사와 등가다!”

이로써 그는 ‘기념’이 지니는 효력을 언급하고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얘긴가. 기념이라는 행위가 과거의 한 사건을 단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가치로 재현시킨다는 사실! 이것이 우리를 매일 미사에로 초대하는 은총이다.

*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 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3년 11월 3일,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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