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78) 핵무기와 핵발전은 교회의 길이 아니다 (3)
핵 관련 다양한 의견 소통, 수렴 필요
사람은 누구나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를 고민하고 그 답을 찾으려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재물의 소유와 소비(물질적 풍요로움)에서 삶의 답을 찾았다. 경제를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정치도 문화도, 가정도 교육도 하다못해 종교까지도 '경제 살리기'라는 구호에 따라 움직였다. 경제를 사람과 사회의 주인으로 섬긴 셈이다. 그런데 경제발전을 그렇게 노래하는데 삶과 사회는 날로 황폐해지고 있다. '사회생활의 근본 가치'의 실종으로 겪는 불행이다.
그릇된 진실이 민주주의 위협
교회는 '진리, 자유, 정의, 사랑'이 인간의 진정한 발전을 도모하는 사회생활의 근본 가치라고 믿는다. 사회교리는 "이 가치들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자기완성을 이루고 더욱 인간다운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확실하고 긴요한 방법이다. 이 가치들은 경제, 정치, 문화, 기술의 본질적 개혁과 필요한 제도 개혁을 이루도록 부름 받은 공권력의 필수적인 준거가 된다.… 교회는… 사람들이 내린 여러 가지 결정들 안에 이러한 가치들이 어떻게 수용되고 배척되는지 보여주고자 현세 질서에 개입한다"고 밝히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197항).
교회는 특별히 대중매체 분야와 경제 분야에 관련된 문제에서 진리를 해치려는 시도나 진리의 요구를 상대화하려는 위험을 경고한다(198항). 사실 우리는 경제성장과 안보를 내세운 정치권력이 언론과 경제를 지배도구로 악용한 아픈 역사를 체험했다. 형식적으로 정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언론의 독립과 경제민주화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고 개탄하는 전문가가 많다. 물론 이 같은 비판에 대해 경제성장에 발목을 잡고, 안보를 해친다고 비난하는 일에 언론이 앞장서기까지 하고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대중매체가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는 시민들이 정보의 객관성에 대한 권리를 온전히 행사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교회가 우려하는 것은 "소수의 사람이나 집단들이 조종하는 뉴스미디어 현상"과 이런 현상과 정치 활동과 금융기관ㆍ정보기관들의 유착이 미치는 "전체 민주주의 제도에 위험한 결과"다(414항 참조).
진리에 따른 사회문제 해결
핵산업과 핵무기와 관련해서 다양한 의견과 합리적 의심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 주도의 핵산업 정책에 대한 일방적인 홍보만 있을 뿐이다. 대중매체는 핵산업 분야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고 전하기만 할 뿐, 핵기술이 갖는 위험성과 핵사고의 실체를 외면하거나 축소한다.
사실 핵발전 산업과 관련해서 정보의 차단 및 사고의 축소 보도는 거의 공통적 현상이다. 일본 후쿠시마 핵사고 때 2, 3호기의 핵반응로 노심 융해는 사고 후 100시간 안에 일어났는데, 일본 정부는 두 달이 지난 뒤에야 그 사실을 공개했다. 전형적인 정보차단(disinformation)이라 할 수 있다.
핵분열이 갖는 위험 정보 역시 공식 입장에 따라 차단됨으로써 철저히 축소되고 왜곡된다. 정보의 독점과 왜곡, 축소와 의도적 외면은 국제 원자력 관련 공식 기구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핵발전의 안전과 국제기준을 제시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핵산업에 의존적이고 핵산업 분야의 발전을 지원하는 기구로서 독립적일 수도, 중립적일 수도 없는 기구의 기준은 신뢰성을 갖기가 어렵다.
정보의 객관성과 신뢰성은 국제 혹은 국가 원자력 기구에서, 혹은 전문가의 전문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어떤 배경의 전문가(집단, 기구)가 어떤 목적으로 정보를 생산하는지, 그 정보의 생산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는지가 정보의 신뢰성과 객관성 곧 윤리성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역할은 핵발전소 폐쇄 주장을 비롯한 다양한 의견들이 표출되고, 소통되고, 수렴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사람들과 사회집단들이 진리에 따라 사회문제(핵무기와 핵발전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할수록 그들은 악습에서 더욱 멀어지고 객관적 도덕 요구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간추린 사회교리」 198항).
[평화신문, 2013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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