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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43: 준성사를 아시나요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10 조회수2,029 추천수0

[신나고 힘나는 신앙 -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43) 준성사를 아시나요
 
교회로부터 받은 성사 은총은 영원히 유효!



■ 그리하면 내가 복을 내리리라

1월 1일. 새해 벽두!

이날 미사 봉헌 때 나의 강론 주제는 해마다 붙박이로 똑같다. 그 까닭은 내가 사제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축복 기도에 대한 주님의 ‘명령’이 이날의 제1독서 말씀으로 봉독되기 때문이다. 그 말씀은 모세를 통해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렇게 전달된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민수 6,23-27).

말씀의 수신인은 아론과 그의 후예들이다. 여기서 백성에게 축복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로 주어졌다. 그들은 바로 사제다. 하느님은 “축복하라” 하고 명령하시며, 다음과 같은 약속도 함께 주셨다. “너희가 이렇게 말하면서 복을 빌면 내가 위에서 내려주겠다.”

바로 이 대목이 내가 민수기 6장을 가장 좋아하는 성구 중 하나로 꼽는 이유이며, 신자들에게 거듭 들려주고 싶은 강론 요지다. 사제가 사람들에게 주님의 복을 빌어주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이 명령에 기초한 것이다.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제가 축복을 빌어주면 주님께서 복을 내려주신다는 말씀이다. 이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약속이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이 약속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1년을 살아간다면, 반드시 그 열매를 소출로 거두어 누리기 마련인 것!

이번 기회에 그 축복의 내용을 짚어보고 기억해 봄은 어떨까. 축복의 내용은 세 가지다.

첫째, 액운을 막아주심으로 축복을 주신다(민수 6,24 참조). 이 말씀은 우리가 일이 잘 안 풀리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주님께서 막아주신다는 뜻이다. 주님은 웬만하면 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대로 흐르게 하시지만, 아주 결정적이고 중요한 순간에는 막아주신다. 더러는 미리미리 막아주시기도 한다.

둘째,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은혜를 베푸심으로 축복을 주신다(민수 6,25 참조). 이 말씀의 내용이 바로 “하는 일마다 잘되게 해 주신다”는 것이다. 즉 만사형통이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이 세상을 살면서 누구든지 원하는 말씀이다. 따라서 사업이 잘되고, 계획한 일이 잘 이루어지는 것도 결국 하느님의 축복이니 할 수만 있으면 사제들을 통하여 그 축복을 받으라는 의미다.

셋째, 평화를 주심으로 축복을 주신다(민수 6,26 참조). 이 말씀은 진정한 평화의 원천이 하느님이심을 깨우쳐준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것이다. 오늘 이 시대는 특히 평화를 갈급한다. 우리가 가장 받고 싶은 것 중 하나가 바로 평화요, 평안이다. 그러므로 평화를 원하거든 주님을 찾을 일이다.


■ 세 가지 준성사

방금 예로 든 ‘축복’은 준성사 가운데 하나다. 준성사는 무엇인가? 칠성사는 예수님이 몸소 제정하였지만, 준성사는 칠성사의 연장선상에서 교회가 필요에 따라 제정한 것이다. 준성사는 칠성사에는 속하지 않지만 성사의 특성을 지니는 거룩한 상징 및 행위를 말한다. 준성사로 말미암아 신자는 성사들 그 본래의 효력을 받도록 준비되고, 생활이 성화된다. 성사는 본질적으로 변할 수 없는 것이지만, 준성사는 가변적이고 고칠 수 있다. 대표적인 준성사에는 축복, 축성, 구마가 있다.

먼저, 축복은 하느님께 기도를 드려 행복과 은총을 간청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라틴어 ‘베네딕씨오’(benedictio)에서 온 말이다. 축복에는 사람의 축복, 건물이나 운송 수단의 축복, 개인 성물의 축복 등이 있다. 이렇게 축복을 받은 것들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전해 주고, 하느님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다음으로, 축성은 물건을 하느님께 봉헌하여 성스럽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라틴어 ‘콘세크라씨오’(consecratio)에서 온 말이다. 축성에는 제구의 축성, 장소의 축성, 사람의 축성 등이 있다.

끝으로, 구마는 교회가 어떤 사람이나 물건을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하고 마귀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이를 행하셨으며 교회는 마귀를 쫓아내는 권능과 의무를 예수님께 받았다.

이들 준성사는 인효적 은총을 갖는다. 준성사가 인효적 효력을 지닌다는 것은 준성사를 집행하는 사제의 자격이나 그 준성사를 받는 사람의 마음 자세에 따라 받는 은혜가 다르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성당에서 기도를 한다든지 사제로부터 강복을 받는다든지 할 때 그 기도와 강복의 은혜는 그 의식 자체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주체자들의 정성과 마음의 자세에 따라, 다시 말해서 그 열심도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이다.


■ 한번 축복은 영원한 축복

여기 ‘찡한’ 이야기가 있다. 「키르헤 호이테」지 2001년 10월 호에 실린 “한번 사제는 영원한 사제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뉴욕 대교구의 어느 사제가 로마의 한 성당에 기도하러 들어가다가 입구에서 한 거지를 만났다. 거지를 얼핏 바라보던 그 사제는, 거지가 자신과 같은 날 사제가 된 신학교 동료임을 알게 되었다. 사제는 놀라며 거지에게 자신이 누구라고 인사를 하였다. 거지는 사제에게 자신이 믿음과 성소를 잃어버렸다는 말을 했다. 사제는 몹시 충격을 받았다.

다음날 사제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개인 미사에 참석할 기회를 가졌다. 미사 말미에 그는 언제나처럼 교황에게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자기 차례가 되어 교황 앞에 무릎을 꿇은 그는 자신의 옛 신학교 동료를 위해 기도를 청하고 싶은 내적 충동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교황에게 그 기이한 만남의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또 하루가 지나 그 사제는 바티칸으로부터 교황과의 저녁식사에 그 거지를 데리고 참석해 달라는 초대를 받았다. 사제는 옛 친구인 거지에게 찾아가 교황의 초대를 전했다. 그리고 그를 설득하여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 후 교황 앞에 데려갔다.

저녁 식사 후에 교황은 사제에게 거지와 둘만 있게 해 달라고 말하였다. 그런 다음 교황은 그 거지에게 자신의 고해성사를 부탁했다. 그러자 거지는 놀라며 자신은 지금 사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교황의 대답은 이러했다.

‘한번 사제이면 영원한 사제입니다.’

거지는 고집했다.

‘저는 이제 사제의 권한이 없습니다.’

교황이 다시 말했다.

‘나는 로마의 주교입니다. 이제 내가 그 사제의 권한을 수여합니다.’

거지는 몹시 흐느껴 울었다.

마지막으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에게 어느 교구에서 구걸을 하는지 묻고는, 그를 그 교구의 보좌 신부로 임명하고 거지들을 돌보는 일을 맡겼다.”

주님을 떠나 세속의 사람이 되어버린 걸인이 고집스럽게 반복했던 “나는 이제 사제의 권한이 없습니다”라는 말은 자기 단죄의 선언이었다. 이 말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복음의 진수에 해당하는 역선언을 하셨다.

“한번 사제이면 영원한 사제입니다. 나는 로마의 주교입니다. 이제 내가 그 사제의 권한을 수여합니다.”

그리고 이 말이 빈말이 아님을 드러내기 위하여 교황은 그 걸인에게 몸소 고해성사를 청하였던 것이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아름다운 실화는 우리에게도 놓칠 수 없는 응원이 된다. 결국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우리에게 이렇게 선언하고 있는 셈이다.

“한번 축복은 영원한 축복입니다. 교회로부터 받은 성사의 은총, 그리고 사제의 축복은 영원히 유효합니다. 스스로 단죄하지 말고 다시 시작해 보세요. 그럴 권리가 당신에게 있습니다!”

*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 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3년 11월 10일,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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