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52)
57. 병자성사
1) 질병의 의미
질병은 우리 삶에 시련을 가져다 줍니다. 사람들은 병으로 인해 자신의 무능력과 한계, 그리고 인간의 유한성을 체험합니다. 모든 병은 희미하게나마 죽음을 느끼게 합니다. 또한 병자들은 자신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이런 질병이 생긴 것으로 느껴서 죄책감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리고 건강하게 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과 격리되어 외로움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질병은 사람을 더욱 성숙시킬 수도 있습니다. 욕심과 교만에 사로잡혀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뉘우침으로써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께 돌아오도록 이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동안 소홀히 했던 가족과 이웃들을 새롭게 사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질병은 우리를 번뇌로 이끌기도 하고, 자신 안에 도피하는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며, 때로는 하느님께 대한 실망과 반항으로까지 이끌 수도 있다. 반면에 질병은 사람을 더욱 성숙하게 할 수도 있고, 그의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을 분별하여 본질적인 것을 향해 나아가도록 도와 줄 수도 있다. 많은 경우에, 질병은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께 돌아오게 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1501항).
2) 의사이신 그리스도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질병이 인간의 죄와 관련되어 있으며, 반대로 하느님께 충실하면 생명을 돌려 받는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자신의 병에 대해 하소연을 늘어놓고,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하느님께 치유를 애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언자들은 하느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병을 고쳐 주실 때가 오리라고 예고했습니다.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분은 병자들을 동정하시고, 여러 가지 병을 고쳐 주시는 행적을 많이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고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명백한 표징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고통당하는 모든 사람에 대한 연민으로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기까지 하셨습니다. “내가 병들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돌보아 주었다”(마태 25,36).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십자가 죽음으로 인간이 겪는 고통에 전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고통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닮고, 구속을 위한 그분의 수난에 결합될 수 있습니다.
3) 병자성사의 제정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신의 모범을 따라 병들고 고통을 당하는 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도록 사명을 주셨습니다. “열두 제자는 나가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가르치며, 마귀들을 많이 쫓아 내고, 수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발라 병을 고쳐 주었다”(마르 6,12-13).
주님께 이러한 사명을 받은 교회는 병자들을 보살피고 아울러 그들을 위해 전구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예수님께서 참으로 “구원하시는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힘차게 증거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앓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청하십시오. 원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믿고 구하는 기도는 앓는 사람을 낫게 할 것이며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지은 죄가 있으면 그 죄도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야고 5,14-15).
4) 병자성사의 형식
사제는 병자의 이마와 양 손바닥에 병자성유(병자들을 위해서 특별히 축성된 기름)를 발라주며,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바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로우신 사랑과 기름 바르는 이 거룩한 예식으로 성령의 은총을 베푸시어 이 교우를 도와주소서. 또한 이 교우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구원해 주시며 자비로이 그 병고도 가볍게 해 주소서. 아멘.”
사제는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병자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고, 그가 받아야 할 모든 벌을 사해 주는 “전대사”를 베풀고, 성체를 영해 줄 수 있습니다.
5) 그리스도인의 마지막 성사인 노자(路資) 성체
병자성사의 핵심은 병자성유를 바르는 것이지만, 병자에게 성체를 영해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병자성사 때 주어지는 성체를 노자성체라고 부릅니다. 임종 때에 모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특별한 의미와 중요성을 지닙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54).
따라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성체성사가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라는 단일성을 가지듯이 고해성사와 병자성사, 그리고 노자로 모시는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종말에 이르렀을 때 ‘천상 고향에 갈 준비를 갖추는 성사’ 또는 나그넷길을 마무리하기 위한 성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525항).
6) 병자성사는 누가 받는가?
과거에 병자성사는 “종부성사”(인생에 종지부를 찍는 성사)라는 말로 불리웠고 죽기 바로 직전에 단 한번만 받는 성사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병자성사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래 병자성사는 어느 정도 심각한 질병이라고 생각되면 누구나 받을 수 있습니다. 병자가 이 성사를 받은 후 건강을 회복하였다가 다시 병들었을 경우라든가, 동일한 병세가 계속되다가 중태에 빠지게 되는 경우에는 여러 차례 반복해서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노환으로 말미암아 기력이 많이 쇠약해진 노인들은 병세의 위험성이 눈앞에 나타나지 않더라도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7) 공동체 안에서의 병자성사
옛날에는 병자가 생기면 집안 식구들 전체가, 더 나아가 마을 사람들 전체가 관심을 갖고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병원이 생기면서 병자들은 가정과 마을에서 격리되었습니다. 병자성사 역시 사제 혼자서 병원에 가서 개인적으로 주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성사들과 마찬가지로 병자성사도 공동체의 성사입니다. 병자성사가 교회의 공식적인 성사이고 사제들만이 베풀 수 있는 것이지만, 예수님께 중풍병자를 데려온 친구들처럼(마르 2,1-12) 신자들도 적극적으로 주변의 환자들을 방문하고 위로해야 합니다.
[2013년 11월 10일 연중 제32주일 의정부주보 5-7면, 강신모 프란치스코 신부(선교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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