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현 신부의 사회교리] 문화변용 유형과 외국인 근로자
지난 호에서 우리는 이주민들이 한국에 입국하여 생소한 문화를 접하면서 문화충격을 받고,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들의 삶을 꾸리기 위해 삶의 모습을 바꾸는 문화변용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사실 외국인 근로자를 비롯하여 이주민들은 출신국과 나이를 비롯한 각 개인의 상황과 이입국의 정책,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 등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하여 문화변용의 유형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본고에서는 캐나다의 퀸즈대학(Queen’s University)의 심리학 교수 John W. Berry가 제시한 이주민의 문화변용 유형을 살펴보고 그 유형에 따르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삶의 특징을 알아보자.
1. 문화변용 유형과 외국인 근로자
Berry는 한 사회에 문화적으로 다른 두 집단이 존재할 때 문화변용이 일어나는데 문화변용의 태도는 두 가지 차원, 즉 이주민들이 1)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과 특성을 유지할 것인가 여부와 2) 주류사회와의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았다. 이를 도표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이 네 가지 모델이 도출된다.
네 가지 문화변용 모델에 따른 이주자들의 삶의 모습을 유형별로 살펴보자.
1) 통합(Integration) : 자신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태도로, 모국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이입국의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자신들의 고유한 식생활 등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한국인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며 현지의 삶에 잘 적응하는 현지적응형이다. 중국 동포들 가운데 고연령층이나 가족이 모두 한국으로 이주해 와서 중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한국사회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또 한국인과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잘 유지하며 생활하는데 이들의 삶의 방식은 현지적응형이다. 동남아시아 출신의 경우 젊고 교육 수준이 높고 모국으로 귀환한 후에 한국에서의 경험을 이용해 사업을 시도하려는 사람들도 현지적응형의 태도를 보인다. 이들은 한국생활을 통해 습득한 한국문화와 한국인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자신들의 사회적·경제적 자산으로 생각하며 이를 이용하여 모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취업하거나 개인적인 사업을 펼치기도 한다.
2) 동화(Assimilation) : 한 집단이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다른 집단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로, 이주민들이 모국의 문화를 유지하지 않고 새로운 문화만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이 부류에 속하는 이들은 어떻게든 한국에 정착하기를 바라는 사람들로 한국에 귀화하기를 원하고 삶의 방향도 귀화를 지향한다. 고국에 가족이 없거나 이혼한 경우 또는 고국에서의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지기가 어려운 경우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포기하고 한국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모국출신의 사람들보다 한국인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하며 한국으로 귀화를 원한다.
3) 분리(Segregation) : 자신의 문화를 유지하는 것에 집착하여 다른 집단의 문화를 배척하는 태도로, 이주민들이 출신국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하여 한국을 택하여 노동을 하러 온 대부분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돈을 벌면 자신의 출신국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귀소지향형이다. 가족을 중국에 남겨 놓고 단독으로 한국으로 온 중국동포의 경우와 한국사회에서 심한 차별을 경험한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에는 어떻게 하든 돈을 빨리 벌어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럴 경우 외국인 근로자들은 한국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없고 한국인과 생활하면서도 최소한의 관계만 유지하며 가족과 같은 출신국의 사람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중시한다.
4) 주변화(Marginalization) : 자신의 문화 유지에도 관심이 없고 새로운 문화에도 관심이 없는 태도로, 이주민들이 모국의 문화를 유지하지도 못하면서 새로운 문화와 접촉하지도 않는다.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출신국 문화를 유지하게 하는 모국인들과의 네트워크를 유지하지도 못하고 또 한국문화에 대한 접촉과 한국인과의 네트워크를 중시하지 않기에 스스로 한국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나 주변부에서 생활한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 적극적으로 이입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주변부에서 생활하면서 이입국의 상황과 자신들의 상황에 따라 한국사회에 정착할 것인지 아니면 귀국할 것인지를 결정하려는 상황선택형의 태도를 취한다.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한국정부의 정책 상황과 개인적 상황을 고려하여 자신의 거취, 즉 귀국하든지 한국사회에 정착하든지를 결정한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입국한 젊은 층의 중국출신 동포들이 한국과 중국을 비교하여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곳을 선택한다. 또 한국에 이입된 기간이 짧아 한국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한국사회에서 네트워크를 구축할 방법이 적은 젊은 여성층이 이 유형을 보이기도 한다.
2. 외국인 근로자의 삶의 모습
외국인 근로자들은 한국에 입국하면서 문화충격을 받고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문화변용이 일어난다. 위에서 보았듯이 외국인 근로자들은 한국의 생소한 문화를 접하면서 문화변용의 네 가지 태도(통합, 동화, 분리, 주변화)를 보이는데 한 사람이 어떤 특정 태도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중적 태도를 지닐 수 있으나 그 중 어느 한 가지 태도가 더 강력하게 나타난다. 또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태도의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돈을 목적으로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들은 초기에는 분리의 태도를 취하나 미등록 상태가 되었을 때 주변화의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한국인과 결혼하는 경우 동화 또는 통합의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곧 인간 삶의 동적 특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한국계 외국인 근로자인 재중동포를 비롯한 해외동포들과 비한국계 외국인 근로자의 문화변용에서 다른 특성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획일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이들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계인 재중동포들은 중국의 강력한 사회주의 체제하에 강요된 국가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을 선택하였지만 민족적 정체성은 일부분 상실되었다. 한국을 선택한 재중동포 근로자의 경우 소수만이 한국에 정착하기를 원하고 대부분은 돈을 벌어 중국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중국에서 태어난 이주 2세대들은 한국 국적 취득을 바라지 않는다. 이들은 몇십 년 안에 중국의 경제력이 한국을 추월할 것이라 믿고 있기에 한국국적을 취득하기보다 자유왕래를 통한 상거래와 노동활동을 원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들은 한국과 중국 사이에 연결된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것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데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중국에 남아있는 가족과 친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국에서의 경제적 이익 추구가 어려워지면 귀국하게 된다. 비록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적극적인 네트워크 형성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한국정부의 재중동포에 대한 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반면 비한국계 노동자들의 출신국은 매우 다양하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필리핀, 네팔, 방글라데시 등 민족적 정체성을 매개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가 약한 국가 출신의 노동자의 경우 출신국으로의 귀환을 필연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20-30대의 젊은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출신국보다 한국에서의 삶이 미래를 보장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한국에서의 정착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귀환하더라도 출신국의 경제 상황이 어려워 일자리를 찾기 힘든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들은 출신국으로의 귀국을 회피하고 미등록 신분일지라도 한국에서 생활하기를 원해 한국사회와의 적극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려고 노력한다. 또 젊은 시절 한국에 와서 장기간 생활한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모국의 인적·사회적 네트워크가 소멸되어 모국에서의 삶보다 이미 적응한 한국사회에서 살기를 원한다.
[월간빛, 2013년 11월호, 김명현 디모테오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다문화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