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118) 가난한 이들의 눈물
‘국책사업’ 누구를 위한 것인가
주님의 자녀로 살면서 가장 많이 들어온 말 가운데 하나가 시대의 징표를 잘 읽어야 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시대의 징표는 우리가 일상에서 관심을 기울이거나 즐겨 듣는 뉴스 가운데 하나인 일기예보에 비견할 수 있습니다. 날씨에 따라서 우리의 일상생활이 다양한 변화를 겪듯이 시대의 징표에 따라 무수한 신앙적 결단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 팔레스티나 땅의 동남쪽에는 거대한 사막이 자리하고 있었고, 서쪽에는 지중해가 있었습니다. 지중해에서 발달된 비구름이 몰려오면 팔레스티나 땅에는 비가 내리고, 사막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팔레스티나 땅은 이내 달아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이 보여주는 자연의 징표가 사람에게 중요한 것처럼 사람들을 통해 세상에서 드러나는 흐름, 즉 시대의 징표도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이에 따라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어떤 사랑을 행해야 할지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시대의 징표는 지상의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는 하느님 백성들이 자신이 속한 세상을 직시하고 하느님 말씀에 근거하여 시대적 상황을 해석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신앙의 눈으로 각 시대에 일어나는 사건과 상황 등을 통찰하여 그 내면에 담겨진 하느님의 현존과 뜻을 파악하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시대의 징표는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거두기 위해 세상에 다가서려는 그리스도인의 인식과 태도를 결정하는 신앙 행위의 기본적인 바탕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혼란을 겪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그로 인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는 현상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국가 단위 경제활동에 대한 판단입니다. 지난 세월 국책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이뤄진 다양한 거시경제 활동들에 대해 그리스도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행동하지 못함으로 인해 그 시대를 살아간 무수한 사람과 생명들에게 아픔을 안겨준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단적인 사례가 지난 정권 시절 진행된 4대강사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에도 핵발전소 건설을 비롯해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 크고 작은 일들이 버젓이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불의가 행해지고 있음에도 그리스도인들조차도 복음적 시각을 갖지 못하고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면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은 현실과는 너무 멀리 있는듯합니다.
엄청난 예산과 자원이 투입되는 국책사업일수록 특별히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존엄성을 침해해 고통을 안겨주기 쉽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겪는 아픔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자유’의 제한입니다. 4대강사업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로 선택의 여지도 없이 반강제적으로 삶터에서 쫓겨나는 이들이나,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조상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떠나야 할 처지에 있는 밀양 초고압송전탑 건설지의 70~80대 어르신들이 바로 그런 이들입니다. 교회는 자유를 ‘모든 인간이 지닌 최상의 존엄성의 표징’(「간추린 사회교리」 199항)이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과 무관하다고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를 하찮게 여기거나 의식적으로 그들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귀를 막아버린 적은 없었는지 먼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통해 우리를 부르고 계심을 깨닫고 자신이 처한 처지에서가 아니라,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 노력할 때 하느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로 성큼 다가설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13년 11월 24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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