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서 DOCTRINE

교리 자료실

제목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45: 전구는 있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23 조회수1,829 추천수0

[신나고 힘나는 신앙 -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45) 전구는 있다

지상 교회 신자들 통공방법은 ‘기도’와 ‘선행’



■ “연미사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그게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7월 초, 내가 김포 소재 고촌성당 초대 주임신부로 발령받은 직후의 일이다.

부임하고 신자들과의 첫 만남 자리에서 내가 가장 많이 소개 받은 이름이 ‘송해붕’이었다. 고 송해붕 세례자 요한 선생! 그는 60여 년 전 고촌의 토박이들에게 신앙의 씨앗을 뿌렸던 청년이었다. 가정방문을 할 때 토박이 신자들은 하나같이 그에 대한 말을 하였다. 모두가 그에게서 교리를 배우고 그를 통해 신앙을 얻게 된 사실을 자랑스럽게 회상하고 있었다. 그는 1950년 어느 날, 동네사람들에게 가톨릭 신앙을 전파한 이유로, 고작 스물넷의 나이에 고촌 천등고개에서 순교했다.

정확하게 10월 11일이 그의 기일이었다. 그날이 가까워지자, 성당 임원들은 그를 위해 합동으로 미사를 봉헌할 것을 건의했다. 연미사를 봉헌하고 나서 연도를 함께 바치자는 것이었다. 그때 순간적으로 한 영감이 내 머리를 강하게 스쳤다. 나는 그대로 말해 줬다.

“연미사는 안 됩니다. 연도도 바칠 필요가 없습니다. 송해붕 세례자 요한은 순교자예요. 순교했으면 아직 인정 못 받은 성인인 겁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에게 전구를 청하는 것이 맞습니다. 마침 새 성전부지가 마련되지 않았으니, 그것을 위해 전구를 청하는 미사를 봉헌합시다!”

이후 여러 증인들의 협조로 수집된 증거자료들을 따르건대, 그는 확실히 시성되지 않은 무명의 성인이었다. 실제로 그의 전구는 강했다. 우선 온갖 골칫거리에도 불구하고 단 몇 달 내에 성당 신축 부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 믿기지 않는 손길

얘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나는 고촌에서의 사목활동에서마다 그의 전구가 가져다준 은총을 강하게 느꼈다. 그것도 잠시, 나는 다시 명을 받고 ‘사목연구소’ 설립 책임을 맡게 되어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여러 장소를 물색하던 끝에 양곡본당 소속 누산리 공소를 개조하여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바로 한 달 후, 그곳이 송해붕 선생이 고촌 공소에 기거하면서 자주 교리를 가르치러 왔던 곳이며, 6·25 때 공산당을 피해 잠시 피신해 있던 곳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송해붕 세례자 요한의 ‘총각귀신’(?)이 나타난 기분이었다. 이렇게 해서 두 번째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와의 세 번째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산리 공소에 자리를 잡은 지 어언 4년, 연구소 자리를 옮겨야 할 상황에 몰리고 있었다. 우선 건물이 노화되어 보수공사가 빈번했고, 하나둘 불어나는 직원들을 수용하기에는 공간이 비좁았다. 게다가 연구소로서 갖추어야 할 교육장소가 없어 불편하기 짝이 없었고, 위치 자체가 너무 외곽으로 떨어져 있어 직원들 출퇴근이 큰 문제였다.

이런 이유들로 주교님께 보고를 드려 연구소를 새로 짓기로 재가를 얻었다. 교우 중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이를 통해 이곳저곳 땅을 물색하였다. 그동안 ‘전구’의 힘을 여러 차례 느껴왔던 터였기에 가급적이면 고촌 부근에서 멀리 떠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송해붕 선생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렸다.

“송해붕 세례자 요한 님, 제가 이곳을 떠나는 것이 옳지 않다면 ‘땅’을 마련해 주시고, 만일 떠나도 상관없다면 앞으로도 계속 전구해 주세요.”

불안했지만 믿어지는 구석도 있었다. 그런데 기도를 드린 바로 다음 날이었다.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적당한 땅이 나왔으니 만나자는 것이었다. 안내해 준 이가 “이 땅입니다” 하고 가리킨 땅은 바로 고촌 천등고개에 있었다. 순간, 나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읊조렸다.

“천등고개? 그러면 이곳은 송해붕 선생이 순교하신 곳이 아닌가!”

바로, 총살형이 행해진 현장에서 100m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곳이었다. 나는 즉석에서 답변하였다.

“맘에 듭니다. 사겠습니다.”

그곳 주변에는 이미 정수장이 들어섰고, 달랑 그곳만 공지로 남아 있었다. ‘고촌을 떠나지 않는다면 어디 한쪽 구석의 땅이라도 고마울 판에 이렇게 좋은 땅이 기다리고 있었다니…. 이는 분명 하느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땅이로구나.’ 나는 송해붕 선생의 전구에 힘입은 것임을 직감했다.

다행히도 현재 송해붕 세례자 요한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산하 시복시성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여 올해 교황청이 시복 통합추진을 승인한 ‘근ㆍ현대 신앙의 증인’ 81위 명단에 포함된 상태다. 할렐루야!


■ 통공 기도의 여러 방법들

다시 우리들의 주제인 ‘통공’의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연도를 바칠 것인가 전구를 청할 것인가? 이를 올바로 구별하기 위해서는 통공 기도에 대한 기초 교리를 알아야 한다. ‘통공’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천국 교회’ 성인들의 전구를 통한 통공이 있다. 우리는 천상에 있는 성인들을 공경하며 그들의 전구를 청하고 그들은 우리를 위하여 은총을 빌어줌으로써 지상 교회와 천국 교회 사이에 통공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예수님이 계신데 그분께만 기도하면 됐지, 왜 굳이 복잡하게 전구까지 청하고 그래요?”

한번 생각해 보자. 하늘에 계신 성인들은 언제 마음이 편할까? 지상에서는 지옥을 살고 있는 이들이 태반인데, 천국에서는 좋다고 잔치만 벌이고 있겠는가?

성인의 마음은 천국에서도 하느님 마음이고, 예수님 마음이다. 그런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에게도 일거리 좀 주세요” 하고 청하지 않았을까? 이 청원에 예수님은 이렇게 배려하셨을 터다. “그래, 너희에게 일거리를 주마. 땅에서 올라오는 기도들을 접수되는 대로 너희에게 배치를 할 테니까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거라.”

둘째, ‘지상 교회’ 성도들이 ‘연옥 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와 ‘희생’, ‘선행’으로 드리는 통공이 있다. 세상에서 보속을 다 못하고 떠난 영혼은 연옥에 들어가 보속이 끝날 때까지 단련을 받게 된다. 그들은 우리의 부모, 형제, 친척, 친구들이며 우리와 함께 지상 교회의 성도였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들을 동정하게 되고 그들의 죗값이 경감되거나 단축되게 하기 위해 기도한다. 그래서 교회는 연미사를 드리고, 신자들은 그 영혼을 위하여 연도를 드린다. 연옥 영혼을 도울 수 있는 방법에는 그들을 위해 자주 미사를 드리고, 대사(大赦)를 자주 얻어 그들에게 공을 넘겨주며, 기도와 고행, 자선을 행하는 것 등이 있다.

셋째, ‘지상 교회’의 성도들이 서로를 위해 공을 나눌 수 있다. 지상 교회에서 신자들끼리 서로 통공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먼저, 기도다. 서로를 위해 바쳐 주는 기도가 효력이 있다는 것을 사도 바오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말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사랑으로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나를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나와 함께 싸워 주십시오”(로마 15,30).

이런 기도로 은혜가 함께 하고 좋은 일이 일어난다.

다음으로, 선행이다. 선행은 마음으로나 입으로 하는 기도보다 더 큰 효력을 갖는다. “금을 쌓아 두는 것보다 자선을 베푸는 것이 낫다. 자선은 사람을 죽음에서 구해 주고 모든 죄를 깨끗이 없애 준다. 자선을 베푸는 이들은 충만한 삶을 누린다”(토빗 12,8-9). 선행은 본인뿐 아니라 그 지향자에게도 효력을 발휘한다.

통공기도의 은혜 역시 다른 모든 교리와 마찬가지로 누리는 자의 몫이다. 단지 알기만 하는 것은 구경만 하는 꼴이다. 하지만 일단 실행하면, 이제는 더 이상 ‘풍문’이나 ‘구경’이 아니라, 자신도 놀라 자빠질 체험인 것이다.
 
*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3년 11월 24일,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