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43) 하느님 법
본성과 마음에 새겨진 구원의 초대장
영원한 행복에 초대받았지만 죄 때문에 상처를 입은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구원을 필요로 합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인도하는 법을 통해 그리고 인간을 지탱해 주는 은총을 통해"(1949항)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이번 호에는 하느님의 법에 대해 알아봅니다(1949~1986항).
도덕률과 법
도덕률은 하느님 지혜의 작품입니다. 성경의 관점에서 도덕률은 하느님의 자애로운 가르침, 하느님의 교육 방법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도덕률은 약속된 행복으로 인도하는 길과 행동 규범을 인간에게 제시해 주며,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랑에서 벗어나게 하는 악의 길을 피하라고 가르친다"(1950항).
법은 "자격이 있는 권위가 공동선을 위해 공포한 행동 규칙"(1951항)입니다. 모든 법의 기본적이고 궁극적인 진리는 하느님 안에 있는 '영원한 법'에서 비롯합니다. 따라서 법이란 만민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시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섭리에 참여해서 이성적으로 내리는 규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1951항).
도덕률은 △ 모든 법의 근원이신 하느님 안에 있는 영원한 법 △ 자연법 △ 옛 율법과 새 율법을 포함한 계시된 법 △ 국법 △ 교회법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됩니다. 하지만 이 다양한 표현들은 모두 서로 연관돼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도덕률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해지고 하나로 통합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께서는 바로 완덕에 이르는 길이십니다. 그분은 법의 마침이요 법의 완성입니다.
자연법(1954~1960항)
자연법은 쉽게 말해서 자연에 내재해 있는 법, 또는 인간이 자연적으로 깨닫게 되는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선과 악이 무엇이며 진리와 거짓이 무엇인지를 이성으로써 식별할 수 있는 타고난 도덕 의식이 있습니다. 이것이 자연법입니다.
자연법은 하느님의 법 곧 신법(神法)의 하나로, 인간이 선을 행하고 자신의 목적에 다다르기 위해 따라야 할 길을 제시합니다. 자연법은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선의 근원이며 심판자이신 하느님께 대한 열망과 복종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과 대등하게 여기는 의식입니다. 이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자연법의 중요한 규정들은 십계명에 제시돼 있습니다. 이 법을 자연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법 규정들이 인간 본성에 고유한 이성(理性)에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연법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보편적인 법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나타내고 인간의 기본 권리와 의무들의 기초가 됩니다. 보편적인 성격을 지닌 자연법은 시대와 장소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되며, 도덕 규범의 체계를 세울 수 있는 튼튼한 기초가 됩니다. 자연법은 또한 인간 공동체들을 건설하는 데에 필요 불가결한 도덕적 기초가 됩니다. 그래서 국가의 법도 자연법을 토대로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연법 규범을 분명하게 또 즉각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죄로 흐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오류의 혼동 없이 확실하게 자연법의 진리들을 인식하려면 은총과 계시가 필요합니다.
옛법(1961~1964항)
옛법이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를 통해 내려주신 구약의 계명들을 말합니다. 옛법은 "계시된 법의 첫 단계"로서, 옛법의 윤리적 명령들은 십계명에 요약돼 있습니다. 십계명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어긋나는 것을 금하고, 그 사랑을 위한 기본적인 행실을 명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은 "인간에게 하느님의 부르심과 하느님의 길을 나타내 보이고, 인간을 악에서 보호하기 위해 모든 사람의 양심에 하느님께서 주신 빛"입니다(1962항).
하지만 율법은 아직 완전한 법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은 후견인과 같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해 주시만, 그것을 행하기 위한 성령의 능력과 은총을 스스로 주지는 못했다"(1963항). 율법은 죄를 고발하고 드러내는 구실을 하지만 죄를 없애지 못하기에 결국은 '예속의 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율법은 여전히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의 첫 단계입니다. 옛법은 복음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새 법, 곧 복음의 법(1964~1974항)
새 법, 곧 복음의 법은 자연법 혹은 계시된 법을 이 세상에서 완성한 것입니다. 복음의 법은 그리스도의 업적으로서 특별히 산상설교(마태 5-7장)에 표현돼 있습니다. 새 법은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통해 신자들이 받게 되는 성령의 은총"(1966항)입니다. 사랑을 통해 작용하는 새 법, 곧 복음의 법은 옛법을 완성하고 정화하고 능가하며 완전하게 합니다. 이 법은 하느님의 약속을 성취합니다.
복음의 법은 율법의 계명들을 완성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산상설교는 옛법의 윤리적 규정들을 폐지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습니다. 산상설교는 새로운 외적 규정을 보태지 않지만 행동의 근원인 마음을 고쳐먹도록 인간을 이끕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복음은 율법을 완성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완전하심과 너그러우심을 본받게 합니다.
새 법은 또한 자선과 기도와 단식 등의 종교적 행위를 실천하게 하지만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를 향하는 마음으로 하게 합니다. 그래서 새 법의 기도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새 법은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는 황금률 안에 요약돼 있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사랑의 새 계명에 들어 있습니다.
새 법은 두려움 때문에 행동하기보다는 오히려 성령께서 불어넣어 주시는 사랑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사랑의 법'이라고 부릅니다. 또 신앙과 성사들로써 행동하도록 은총의 힘을 주기 때문에 '은총의 법'이라고도 합니다. 새 법은 또한 '자유의 법'이라고 부르는데, 의식적이고 법률지상주의적인 율법 준수가 아니라 옛법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마음으로 기꺼이 행동하도록 우리를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새 법에는 복음적 권고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청빈과 정결과 순명이라는 복음적 권고는 생생하고 충만한 사랑을 드러냅니다. "복음적 권고는 사랑의 열정을 증언하고, 우리에게 영적으로 민첩한 자세를 갖추게 한다"(1974항).
[평화신문, 2014년 3월 9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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