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66)
71. 셋째 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생업에 종사하고 이렛날은 너의 주 하느님 앞에서 쉬어라. 그 날 너는 어떤 생업에도 종사하지 못한다(탈출 20,8-10).
1) 안식일
셋째 계명의 핵심은 안식일이라는 말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쉬어라”에 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 “기도를 열심히 하라” 등의 권고에 익숙해 있는 우리로서는 “쉬어라”는 계명이 참으로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것이 셋째 계명의 독특함이고, 깊은 영성입니다.
십계명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종살이로부터 기적적으로 탈출한 출애급 사건을 배경으로 해야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셋째 계명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너는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를 하였고, 주 너의 하느님이 강한 손과 뻗은 팔로 너를 그곳에서 이끌어 내었음을 기억하여라. 그 때문에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는 것이다”(신명 5,15).
이집트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파라오를 섬겨야 했습니다. 이제 해방된 이스라엘은 더 이상 파라오를 섬기지 않고, 하느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파라오를 섬길 때는 강제 노역에 시달렸지만,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쉬게 해 주십니다. 따라서 안식일 계명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섬기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증표인 것입니다.
“쉬는 것이 뭐가 힘들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이집트에서 “강제 노동”을 할 때는 “자유로운 휴식”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자유인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스스로의 욕심에 의해서 새로운 종살이를 하기 쉽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회칙 [노동하는 인간]에서 노동의 이중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노동은 참으로 고귀한 것이고,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발전한다고 노동의 긍정적 측면을 칭송하셨지만, 동시에 인간은 노동에 얽매여(“더 일해서 더 많이 가져야 한다”) 자기 자신을 잃어 버릴 위험성도 있음을 경고하셨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는 경제 개발이 최고의 목적이 되어 버렸고, 더 열심히 일해야만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가족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하느님과의 관계는 뒷전으로 밀려 나고, 오로지 일만 하고 소유하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모습들이 그것의 결과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어두움을 극복하기를 꿈꾼다면 “주 하느님 앞에서 쉬어라”라고 외치는 셋째 계명에 귀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행동은 인간 행동의 모범이다. 하느님께서 이렛날 “쉬시며 숨을 돌리셨으니”(탈출 31,17) 인간도 역시 ‘쉬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도 “숨을 돌리게” 해주어야 한다. 안식일은 사람들이 일상의 일을 멈추고 쉬는 날이다. 이 날은 일의 속박과 돈에 대한 숭배에 대항하는 날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2172항).
2) 주님의 날
이스라엘이 지키던 안식일은 오늘날의 토요일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 신자들은 안식일 대신 주님이 부활하신 안식일 다음날(일요일)을 주님의 날(묵시 1,10)로 삼고 거룩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셋째 계명의 준수를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화시킨 정도가 아닙니다. 셋째 계명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안식일 계명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안식일 계명과 관련된 세부 지침이 점점 더 늘어났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안식일의 금지 조항이 678가지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안식일은 당초의 의도와는 달리 인간들에게 부담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안식일의 원정신을 되살리시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안식일은 근본적으로 부담이 아니라 선물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는 날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느님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날입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마르 3,4)
또한 구약의 안식일은 이집트에서의 해방을 기념했지만, 신약의 주일(主日)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자들은 주일에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서 성찬례를 거행합니다.
주님의 날을 경축하고 주님의 성찬을 거행하는 것은 교회 생활의 중심이다. “사도 전승에 따라 수난과 부활의 신비를 경축하는 주일은 보편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의무 축일로 지켜야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2177항).
[2014년 3월 16일 사순 제2주일 의정부주보 6-7면, 강신모 프란치스코 신부(선교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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