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134) 가난의 풍경, 무관심
‘금전’으로 상처입고 내몰리는 현실
지상의 나그네와 순례자로서 세상 속에서 살아가며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또 그것을 삶 안에서 실천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한 마디로 인간은 관계적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창세기 1장에서 하느님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자연과 생태계와의 관계 등 무수한 관계들이 바로 당신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 태초부터 하느님께서 부여해 주신 인간의 소명과 본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관계’의 중요성을 제자들에게 무수히 강조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이 관계 안에서 신앙이 자라나고 발전할 수 있다는 진리를 들려주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5, 5)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관계성에 대한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참 포도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아가 성경은 주님의 가르침, 즉 기쁜 소식이 선포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곳은 수많은 관계가 형성되는 현장임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본성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이 관계성을 통해 당신을 계시해 오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민족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강생(육화)이라는 아주 직접적이고 파격적인 방식으로 당신과 인간 사이에 새로운 사랑의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창조주 하느님과 그를 따르는 백성이라는 구약의 주종(主從)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훨씬 더 밀접하고 친밀한 관계, 삶 안에서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친구 관계(요한 15,15 참조)가 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낮춤, 그 분이 세상으로 들어오시어 우리와 함께 사심으로써 이루어지는 그 분과의 ‘인격적 관계’를 통해 인류의 행복과 평화는 시작됩니다. 그리고 서로 기꺼이 삶을 나누고 봉사하는 교회의 공동체적 관계를 통해 주님의 나라와 거룩한 뜻은 지상에서 지속되고 확장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뜻과 사랑을 펼쳐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관계의 지평을 넓혀 ‘포도밭의 일꾼’(마태 20,1-16)들처럼 충실히 하느님 나라를 일궈가야 할 소명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앞서도 보았듯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의식은 원래부터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던 본성이 아닙니다. 이러한 면에서 타인을 비롯한 세상에 대한 무관심은 그리스도인들의 몫이 아니며, 주님을 거스르는 폐쇄적이고 고립적인 태도와 사고일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관계들이 무참히 훼손되고 그 흔적마저 지워 없애려는 움직임이 난무하는 게 오늘날 현실입니다. 잠시만 우리 주위를 찬찬히 돌아보면 무관심 속에 버려진 것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인간다운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관계 속에서 오히려 인간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고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현실이 비일비재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잘못된 경제적 관계 속에 아픔을 겪는 형제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가톨릭신문, 2014년 3월 23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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