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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45: 십계명 - 첫째 계명 (상)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08 조회수2,643 추천수0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45) 십계명 : 첫째 계명 (상)
 
하느님 섬김, 복음 전파와 공동선 구현으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지켜야 할 많은 법규가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대표적인 것이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에게서 직접 받은 계명이라는 점에서 구약의 다른 계명들과 차이가 납니다. 십계명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사랑의 새 계명, 곧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에 비춰 해석할 때 그 의미가 제대로 드러납니다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중요하고 윤리생활에 기본 지침이 되는 계명입니다. 이번 호부터는 십계명에 대해 하나씩 알아봅니다. 먼저 첫째 계명입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라(2084~2094항)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으로 삼으신 이스라엘에 요구하신 첫 번째 계명은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흠숭하라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주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섬기며…너희 주위에 있는 민족들의 신 가운데 그 어떤 신도 따라가서는 안 된다"(신명 6,13-14).
 
이 계명은 주님이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덕을 포함합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덕을 향주덕(向主德) 혹은 대신덕(對神德)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윤리 생활의 원천은 "우리에게 당신 사랑을 계시하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 안에"(2087항) 있습니다. 그래서 첫째 계명은 "현명하고 조심스럽게 우리의 믿음을 기르고 지키며 믿음과 대립되는 모든 것을 물리칠 것을 요구"(2088항)합니다. 하느님께서 계시하고 교회가 믿으라고 제시하는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기를 소홀히 하거나 거부하는 '고의적 의심', 계시 진리를 무시하거나 그 진리에 동의하기를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불신', 그리고 믿기를 주저하거나 반론이 제기될 때 믿음에 대한 확신을 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본의 아닌 의심'은 모두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이단과 이교, 배교도 믿음을 거스르는 죄입니다. 이단이란 세례를 받은 후에 가톨릭 신앙으로 믿어야 할 것을 완강히 부정하거나 의심하는 것이고, 배교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버리는 것이며, 이교(離敎)는 교황에게 순종하기를 거부하거나 교황에게 속하는 교회 구성원들과 친교 맺기를 거부하는 것을 말합니다.
 
희망을 거스르는 잘못으로는 절망뿐 아니라 자만도 해당됩니다. 자만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자만해 하늘의 도움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형태가 그 하나이고, 하느님의 전능과 자비를 과신해 회개하지 않고서도 하느님의 용서를 얻고 공로를 쌓지 않고서도 천국의 영광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는 자만이 또 다른 하나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하느님이 사랑이심을 믿으며 사랑이신 하느님을 위해서 그리고 하느님 때문에 모든 사람과 모든 피조물보다 하느님을 더 사랑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따라서 하느님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을 무시하거나 거부하고 하느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무관심은 첫째 계명을 거스르는 잘못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고 하느님 사랑에 보답하려 하지 않는 것은 배은의 죄이고,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기를 소홀히 하거나 하느님 사랑에 자신을 내어 맡겨 드리기를 거부하는 것은 냉담의 죄에 해당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증오, 하느님에게서 오는 기쁨을 거부하는 영적 게으름 또한 첫째 계명을 거스릅니다.


오직 하느님만을 섬겨라(2095~2109항)

하느님만을 섬기는 행위, 다른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높이 받드는 것을 흠숭이라고 합니다. "흠숭은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창조주요 구세주로, 주님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의 주인으로 사랑과 자비가 무한하신 분으로 인정하는 것"(2096항)입니다. 이렇게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가두어버리는 데에서, 죄의 속박에서, 세상의 우상숭배에서 해방됩니다.
 
하느님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행위는 기도 안에서 이뤄집니다. 감사와 찬미, 전구와 청원의 기도는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 흠숭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하야 합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 또한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흠숭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 제사와 일치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삶을 하느님께 제물로 봉헌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 상황에서 하느님께 약속합니다.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혼인성사와 성품성사에는 언제나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또 순례나 기도 등 개인적 신심 행위를 통해서도 하느님께 약속을 드립니다. 하느님께 드린 약속에 충실한 것은 하느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표현입니다. 서원은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거나 어떤 선한 일을 하느님께 약속하는 신심 행위입니다. 특별히 수도자들이 복음적 권고를 지키겠다고 하는 서원은 특별한 모범적 가치를 지닙니다.
 
하느님만을 섬기라는 계명은 하느님과 하느님의 교회에 관한 진리를 탐구하며 깨달은 그 진리를 받아들이고 지킬 것을 요구합니다. 또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복음을 전하는 일과 각 사람 안에 있는 참된 것과 선한 것을 존중하고 일깨우려고 노력하는 일 또한 하느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의무에 해당합니다.
 
교회는 이 첫째 계명과 관련, 각 사람에게 양심의 자유, 신앙과 종교의 자유가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인간은 종교 문제에서 자기 양심을 거슬러 행동하도록 강요받지 말아야 합니다. 종교 자유의 권리란 "종교 문제에서 '정당한 한계를 지킬 때 정치권력으로부터 외적인 구속을 당하지 않을 권리"(2108항)를 말합니다. 여기서 '정당한 한계를 지켜야 한다'는 것은 종교 자유가 그 자체로 무제한적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단순히 공공질서 유지라는 명목만으로 종교 자유를 제한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당한 한계는 "사회 상황에 맞게 정치적으로 신중하게, 공동선의 요청에 따라"(2109항) 정해져야 합니다.

[평화신문, 2014년 4월 6일, 정
리=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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