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12) 인권과 사회교리
인권, 하느님이 주신 빼앗을 수 없는 권리
인권이란 무엇인가? 인권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생명권, 자유권, 평등권 등 인간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 권리를 뜻한다.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살 권리라고 말할 수 있는 이 권리는 모든 인간에게 꼭 보장돼야 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권리이다.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아직도 인권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일이 자주 있다. 21세기 선진국가를 향해 나아가는 한국사회 안에서도 인권이 유린당하고 무시당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존재한다.
얼마 전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안군 염전 노예 사건 역시 이러한 인간의 기본권이 무시된 대표적 사례다. 장애인, 노숙자, 신용불량자 등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계층의 사람들이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지역으로 떠밀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대우도 받지 못하고 노동력을 착취당한 이 사건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직도 부족한 인권 의식을 지적해준다.
사제인 나 역시 인권이 유린되는 경험을 했다. 현역으로 군에 복무했던 나는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군 생활을 통해 충분히 경험했다. 내가 군에 입대한 1980년대 말에는 군대 내에 여전히 구타와 욕설이 존재했다. 훈련소 신병 교육기간 중, 나는 같은 내무반을 사용했던 훈련병들 가운데 대표 훈련병과 같은 역할을 했다.
남들보다 큰 키에 어느 정도 체격이 있고 안경도 쓰지 않았기에 생활 교육을 담당했던 기간병은 훈련병 군기를 잡을 목적으로 나를 본보기로 삼았다. 훈련 기간에 발생했던 작은 지적 사항이나 교정 사항에 대해 그 기간병은 잘못한 훈련병을 야단치는 것이 아니라 대표 훈련병인 나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점호시간만 되면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아 모든 내무반원이 보는 앞에서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댔다. 거의 매일 같이 두들겨 맞으면서 왜 맞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6주간의 적지 않은 훈련 기간이 끝나고 자대 배치를 받게 됐을 때, 모든 구타와 욕설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 기대했지만, 막상 도착한 자대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남들보다 우월한 신체조건으로 의장대 요원으로 선발된 나는 8주간 의장 훈련을 받았다. 훈련 첫날, 태어나서 그 이전까지 맞았던 것보다 더 많이 맞았다. 뛰고, 구르고, 두들겨 맞았던 의장 훈련의 첫날은 지금도 잊고 싶은 기억 중 하나다. 의장 훈련이 끝나고 소대 배치를 받고나서도 구타와 욕설은 계속 이어졌다. 매일 밤 점호시간에 선임병들의 구타와 욕설은 계속됐다.
이러한 군 생활에서 나는 한 사람의 인간이기보다는 명령에 복종하는 기계적 존재가 돼야 했다. 어찌 보면 당시 군대에는 인권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지속해서 선임병으로부터 폭행을 당할 수밖에 없던 군 생활에서 스스로에게 결심했던 것은 내가 고참병이 됐을 때, 이 지긋지긋한 폭력의 사슬을 끊겠다는 각오였다. 후일 고참병이 돼 점호시간에 이유 없이 반복됐던 욕설과 구타를 금지했고, 편안한 점호시간이 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생각해 보면 군 생활 초기는 한 사람의 인격자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포기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흔히 주권 국가에서 말하는 '인권'은 정부의 일방적 권력 남용과 억압에 대항해 인간이 요구할 수 있고 보호,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보편적 권리를 지칭한다. 이는 사람이 사람답게 존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 개인의 자유와 평등, 독립성의 보장, 또 인류의 이익에 정부의 권한 행사가 부합할 책무 등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보편적 권리들은 생명권, 적절한 삶의 수준을 보장받을 권리, 고문을 비롯한 부당한 처우에 대한 보호권, 사상과 언론 및 표현의 자유권, 이동의 자유권, 자기 결정권, 교육권, 정치, 문화에 참여하고 향유할 권리, 그리고 종교 자유의 권리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소중한 인권은 그 근거를 어디에서 찾는가?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는 인권의 궁극적 원천이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다시 말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기 위해서 보장되는 이러한 기본권은 인간의 의지나 국가, 혹은 공권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 그 자체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권리들은 인간과 인간 존엄에 내재돼 있기에 그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소중한 권리다(「간추린 사회교리」 153항 참조).
가톨릭교회는 인권을 존중하고 평화에 이바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왜냐하면 교회가 인권을 수호하고 증진하는 것이 종교적 사명에 포함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간추린 사회교리」 159항 참조).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소외되고 버림받는 약자들을 대변해 인권 사각지대에서 고통받고 있는 그들을 구해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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