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74)
79. 구약 성경에 나타난 기도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가톨릭교회교리서]의 제3편 “계명”을 공부했습니다. 오늘부터는 제4편 “기도”를 공부하겠습니다. 제4편 “기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부는 “기도란 무엇인가”, 즉 기도에 대한 개론적인 설명이고, 2부는 기도 중의 기도인 “주님의 기도”를 해설하는 부분입니다.
“신앙의 신비는 위대하다.” 교회는 사도신경에서 신앙의 신비를 고백하며(제1편), 성사 전례 중에 이를 거행하여(제2편), 신자들의 삶이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일치하도록 한다(제3편). 그러므로 신자들은 이 신비를 믿고 거행하며, 또한 살아 계시는 참하느님과 맺는 생생하고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이 신비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 관계가 바로 기도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2558항).
“기도란 무엇인가?” 이 질문의 올바른 답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구약 시절의 수많은 성인들이, 그리고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께서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1) 아브라함의 기도 : “믿음의 싸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자, 그는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창세 12,4) 바로 길을 떠난다. 그의 마음은 전적으로 “말씀을 따랐으며”, 그는 순종했다(가톨릭교회교리서 2570항).
아브라함은 일생을 통해서 “기도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의 응답”임을 증언했습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말씀이란 “땅과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 이야기를 조금 깊이 읽어 보면, 하느님의 약속에 “예!”라고 응답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당면한 현실은 땅과 자손을 얻기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예!”라고 응답한 것은 깊은 “믿음의 싸움”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대화인 기도는 연애 중인 커플이 달콤한 이야기만을 속삭이는 대화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어찌 보면 결혼 생활을 해 나가면서 숱한 어려움을 겪는 중에,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방과 대결하는 자세로 대화를 해 나가는 것과도 같습니다. 때때로 원망과 큰소리가 오고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를 잃지 않을 때, 그들의 대화는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기도는 신앙의 싸움”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2) 모세의 기도 : “전구하는 기도”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시어 이스라엘 백성을 에집트에서 구원하도록 그를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느님의 말씀에 선뜻 “예!”라고 응답하지 못합니다. 모세는 회피하거나,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며, 특히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타인을 위한 파견은 두렵고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는 계속 모세를 설득하셨고, 모세는 오랜 줄다리기 끝에 하느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모세는 기도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곧,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을 위해서 “전구하는 기도”를 배우게 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당신 몫으로 삼으신 백성을 위하여 기도한다. 아말렉족과 싸우는 동안(탈출 17,8-13) 또는 미르얌의 병이 낫도록(민수 12,13-14) 모세는 이미 전구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백성이 변절한 뒤에 모세는 그들을 구하기 위하여 하느님 “앞을 막아서서” 그분 앞에 나아갔다(탈출 32,1-34,9).
3) 다윗의 기도 : 공동체의 기도
다윗은 누구보다도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훌륭한 임금이었으며, 자기 백성을 위하여, 또한 그 백성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목자였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그의 순명과 찬미와 참회는 백성에게 기도의 모범이 된다(가톨릭교회교리서 2579항).
다윗은 스스로도 기도하는 사람이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백성들이 함께 기도할 수 있도록 인도했다는 점입니다. 다윗은 시편 기도를 짓고, 성전을 건축하여 백성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4) 예언자들 : 마음의 회개의 기도
성전은 하느님의 백성에게 기도를 가르치는 장소가 되어야 했다. 곧, 순례, 축제, 희생 제사, 저녁 제사, 향, ‘제사 음식’과 같이, 지극히 높으시고 아주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의 거룩함과 영광을 나타내는 이 모든 표징들은, 기도하라는 호소이자 기도로 이끄는 길이었다. 그러나 흔히 형식주의는 백성을 지나치게 외적인 예배로 이끌어 가곤 했다. 그리하여 신앙 교육과 마음의 회개가 필요하였다. 이것이 귀양살이 이전과 이후의 예언자들이 맡은 사명이었다(가톨릭교회교리서 2581항).
[2014년 5월 25일 부활 제6주일(청소년 주일) 의정부주보 6-7면, 강신모 프란치스코 신부(선교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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