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77)
82. 기도의 형태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루카 11,1).
우리가 기도하기 힘들어 하는 것은 우리가 게으르고 세상 욕심에 너무 빠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 기도하는 방법을 몰라서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 옛날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청합시다. 우리 가톨릭 교회에는 전통적으로 세 가지의 기도 형태가 있습니다. 소리 기도, 묵상 기도, 관상 기도가 그것입니다.
1) 소리 기도
소리 기도는 그리스도인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스승이 침묵 중에 하시는 기도에 마음이 끌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소리 내어 하는 기도인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의 전례 기도만 드리신 것이 아니다. 복음서들은, 환희에 차서 성부를 찬양하신 것을 비롯해서, 겟세마니에서 비탄에 젖으시기까지, 개인 기도를 소리 높여 드리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가톨릭교회교리서 2701항).
소리 기도는 정해진 기도문을, 정해진 시간에 외워 바치는 기도 방식입니다. 신앙의 선조들은 소리기도를 정해진 시간에 충실히 바침으로써 하루 생활을 거룩하게 보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즉시 조과(朝課: 아침기도)를 바칩니다. 그리고 점심 때나 저녁 때 성당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면서 삼종기도를 바칩니다. 식사 때마다 식사 기도도 빼놓지 않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는 만과(晩課: 저녁기도)를 바쳤습니다. 이런 식으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기도를 바침으로써 신앙의 선조들은 계속해서 하느님을 의식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2) 묵상
묵상은 정해진 기도문을 사용하지 않고, 이성을 사용해서 곰곰이 생각하는 기도 형태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성경 묵상입니다(성경뿐만 아니라, 영성의 대가들이 쓴 글들을 읽고 묵상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 생활이란 하느님을 찾아 가는 구도의 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계시)은 자연 만물 안에도 있고, 인간 내면에도 있지만, 가장 확실하게는 성경 말씀 안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 말씀을 꾸준히 읽고, 그 읽은 바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곰곰이 헤아리고 마음에 새기고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성경 묵상의 출발점은 성경이지만, 도달점은 삶입니다. “우리가 읽은 것에 대해 묵상하면, 그 내용을 자기 자신에 비추어서 생각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게 된다. 여기서 다른 한 권의 책, 삶이라는 책이 펼쳐진다. 생각에서 현실로 옮겨지는 것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2706항).
① 관찰 1 : 성경 본문 읽고나서 그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 묵상합니다. “이 성경 말씀이 말하고자 하는 중심 메시지가 무엇인가?” “예수님은 왜 이런 말씀과 행동을 하셨을까?”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② 관찰 2 : 이제 눈을 돌려 나의 생활을 묵상합니다. “요즘 나는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가?” “누구를 만났고, 어떤 일을 경험했는가?”
③ 판 단 : 성경 말씀에 비추어 내 생활을 묵상합니다. “이 성경 말씀은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가?”
④ 실 천 : 자연스럽게 실천거리를 찾게 됩니다.
3) 관상 기도
소리기도가 입으로 하는 기도이고, 묵상기도가 생각으로 하는 기도라고 한다면 관상기도는 마음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관상기도는 기도문도 사용하지 않고, 생각도 정지시키고, 하느님 앞에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내 곁에 계시고, 내가 하느님 안에 있음을 느끼는 것이 관상기도의 목표입니다. 노부부가 손을 잡고 말없이 산책을 하는 모습이나 아가씨가 애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지만 행복합니다. 이것이 관상기도의 모습입니다.
우리 가톨릭에서 가장 많이 하는 관상기도는 성체조배입니다. 그러나 관상기도는 일상 생활 안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관상 기도란 무엇인가? 데레사 성녀는 이렇게 답한다. “마음으로 하는 관상 기도란, 제 생각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느님과 자주 단둘이 지냄으로써 친밀한 우정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2709항).
[2014년 6월 22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의정부주보 6·11면, 강신모 프란치스코 신부(선교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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