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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26: 나누기 위해 존재하는 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8-05 조회수1,867 추천수0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26) 나누기 위해 존재하는 부

하느님께 받은 재화, 선행에 사용해야



공직자 청문회가 한창이다.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으로 직무 수행 능력 검증과 도덕성 검증이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런데 후보자 중 구설에 오르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은 과거 관례로 행해진 위장 전입, 탈세, 부동산 투기 등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재산을 증식했다는 점이다.

공직에 있으며 시가 십 억대 아파트 소유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직장인 월급으로는 서울 주요 지역 아파트값을 마련하기 힘든 사회에서 편법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상황이 부조리하고 불합리해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축적한 부는 합당한 것으로 볼 수 없다. 죽으라고 일해도 가난의 구렁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서민은 부자들의 자산 가치를 보며 절망감에 빠지곤 한다. 그래서 일반 서민들은 공직 후보자 첫째 덕목으로 도덕성을 꼽는지 모르겠다.


소수의 욕심으로 시름 하는 다수

‘통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가 된다’고 하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이 가슴속 깊이 파고드는 것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라기보다 자본주의의 탈을 쓴 새로운 기득권층의 욕심에서 비롯한 불의와 부정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계명이 분명한 선을 그어놓은 것처럼, 오늘날 팽배해 있는 배척과 불평등의 경제는 분명히 잘못된 것임을 강조한다. 배척과 불평등의 경제는 사람을 죽이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교황은 이해하고 있다.

교황은 나이 든 노숙자가 얼어 죽으면 기사화되지 않지만, 주가지수가 조금만 내려가도 기사화되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이러한 사회가 타인에 대한 배척과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라는 사실을 고발하고 있다. 교황은 세상이 자본주의 체계에서 경쟁의 논리와 약육강식의 법칙 아래 놓이게 됐고 힘없는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힘센 자에게 먹히고 있으며,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이 사회로부터 배척되고 소외되고 있음을 고발한다(「복음의 기쁨」 53항 참조).

시장 경제의 활성화와 자유화로 모든 이들이 필요한 부를 얻을 수 있다면 자본주의는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제도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다수 사람은 자유 시장 경제가 사회 안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며 어떤 패턴으로 활용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결국, 이러한 제도의 허점을 잘 아는 소수만이 자신에게 필요한 재화를 독점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과 자신이 속해 있는 소수 집단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지 타인이나 사회 전체의 삶에는 별 관심이 없다. 기업의 목적이 최대 이윤의 창출이라면 기업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 창출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이윤이 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일부 사람에게만 국한된다면 이윤 창출을 위해 일하는 모든 노동자는 그 이윤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부의 쏠림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른바 가진 자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구조적 악순환을 겪게 되는 것이다.


재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야

그렇다면 부의 편중은 오늘날에만 있는 문제일까? 사실 인류 역사에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분리가 항상 있었다. 더군다나 가진 자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가지지 못한 자의 것을 교묘한 방법으로 빼앗아 왔고, 자신들의 축재가 부정한 방법이 아닌 합당한 것인 양 제도와 법률을 교묘히 이용해 왔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인간의 모든 경제 활동과 물질적인 진보가 인간과 사회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경제적 활동을 통해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에 응답하고 이러한 응답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충실하게 수행해야 함을 말씀하신다. 인간은 정해진 한도 내에서 땅을 이용하고 지키며 완전한 것이 되게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인간은 경제활동을 통해 창조주의 위대하심과 선하심을 증언하면서 자신의 충만한 자유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따라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인 물질적 재화를 잘 관리하는 것은 그것을 부여받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타인을 향한 정의의 활동이 돼야 한다. 경제 역시 인간과 사회, 그리고 인간 삶의 전반적인 성장을 위한 도구로서 그 기능을 저버리지 않을 때 비로소 그 목적에 유용한 것이 된다(「간추린 사회교리」 326항 참조).

사회교리는 합법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재화라도 언제나 보편적 목적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모든 형태의 부정 축재는, 창조주께서 모든 재화에 부여하신 보편적 목적에 공공연히 위배되므로 부도덕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완전한 인간 해방을 뜻한다. 이러한 구원은 물질적인 결핍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소유에서도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328항 참조). 다시 말하면 재화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사회에 유익하게 쓰일 때 인간에게 봉사하는 기능을 올바르게 이행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329항 참조).

우리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모든 공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 전체를 위해서 일하는 일꾼들이 됐으면 좋겠다.

[평화신문, 2014년 8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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