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35) 교황청과 국제기구의 중요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해결책은
유학 시절 내가 다닌 대학은 이탈리아 정부 소속의 대학이 아니라 교황청에서 설립한 신학대학들 중의 하나였다. 신학을 공부하던 교황청 대학은 규모 면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대학 중의 하나였지만 그 상징성은 대단한 것이었다. 전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 교육을 담당하는 수많은 젊은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유학을 다녀갔고, 유학 중이었다. 또한 전 세계 곳곳에서 파견된 유학생들은 자신의 유학 기간 동안 가톨릭 교회의 중심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교회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바티칸 시국(Status Civitatis Vaticanæ)은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 시내에 자리하고 있다. 바티칸 시국은 바티칸 성벽으로 둘러싸인 영토로 이루어져 있으며, 독립된 도시국가 중의 하나이다. 국제 관계에서의 정식 명칭은 바티칸 시국이란 표현보다 교황청 또는 성좌(聖座, Sancta Sedes)란 표현이 주로 사용된다. 바티칸 시국은 바티칸 언덕과 언덕 북쪽의 바티칸 평원을 포함하며, 성 베드로 대성당과 함께 성 요한 라테라노, 성 바오로,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포함하는 0.44㎢의 면적에 약 900명 정도의 인구를 지닌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티칸 시국은 1929년 라테란 조약을 통해 그 자치권이 성립되었다. 이전에는 로마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반도 중부를 넓게 차지한 교황령(756~1870)으로 존속하였지만, 영토 대부분이 1860년 통일 이탈리아 왕국에 의해 강제 합병되었고, 1870년에 로마 지역과 함께 나머지 다른 지역도 거의 모두 이탈리아에 합병되었다. 바티칸 시국은 로마의 주교인 교황이 통치하는 신권 국가로서 가톨릭 교회의 상징이자 중심지라고 말할 수 있다. 바티칸 시국은 1947년 우리나라에 교황사절을 파견한 이후, 1948년 가장 먼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인정하였으며, 1963년 우리나라와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지금까지도 긴밀한 우호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인간의 선익을 추구하는 교회
바티칸 시국이 가진 국가적 권위는 세속적 차원에서는 그리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신앙적인 부분에서는 대단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많은 나라에서 외교사절을 파견하여 바티칸 시국 주재 대사로 일하고 있고, 서방 세계의 여러 외교관은 마지막으로 은퇴하기 전, 바티칸 주재 대사로 일하는 것을 가장 명예스런 것으로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이유는 서방의 오래된 관행의 하나로 여겨지는 교황청의 외교 활동이 신앙의 자유에 대한 수호뿐만 아니라 인간 존엄의 수호와 증진, 그리고 정의, 진리, 자유, 사랑의 가치에 토대를 둔 사회 질서에 이바지하는 도구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간추린 사회교리」 445항 참조).
그렇다면 어째서 가톨릭 교회는 이처럼 교황청을 법적인 인격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교황청은 국제 공동체 안에서 인정되는 대외적 주권을 모두 행사하며, 이러한 교황청의 주권이 교회 내에서 행사되는 것을 반영하고, 국가로서의 일치와 독립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는 가톨릭 교회가 하느님 나라의 건설이라는 자신의 사명을 실현하는 데에 필요하거나 유용한 모든 법적인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교황청의 국제적 활동은 국가 간의 외교 활동과 같은 다양한 측면에서 객관적으로 드러난다. 즉 적극적·소극적 대표의 파견, 협약의 약정을 통한 협약법 이행, 국제연합이 후원하는 정부 간 기구에의 참여, 분쟁 상황을 중개하는 역할 등을 수행한다. 이러한 바티칸 시국의 국제적인 활동은 바티칸 시국으로서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인류 가족의 선익을 추구하고, 모든 이해 관계를 초월하는 도움을 국제 공동체에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교황청은 인류 가족의 공동선을 실현하기 위해서 자체의 외교 인력을 특별히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444항 참조).
가톨릭 교회는 1945년 국제연합 기구의 창설 이후 진정한 국제 공동체로 나아가는 여정의 동반자 역할을 수행해 왔다. 국제연합은 인간의 존엄성 존중과 더불어 민족들의 자유, 개발에 대한 요구를 증진함으로써 평화 건설을 위한 문화적 제도적 토양을 마련하는 데 현저하게 공헌해 왔으며, 가톨릭 교회 역시 이러한 국제연합의 정부 간 기구들, 특히 특수 영역에서 활동하는 기구들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기구들이 만일 국제적인 문제를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게 다룰 때에는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교회 교도권은 국제 기구들의 평화적이고 질서 있는 공존을 위해, 특히 중요한 영역에서 인간적인 요구에 부응하기를 권고한다(「간추린 사회교리」 440항 참조).
인류 가족의 질서 있고 평화로운 공존에 대한 관심에서 가톨릭 교회는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있는 실질적인 권력으로 모든 사람의 안전과 정의 준수와 권리 존중을 보장하는 세계 공권력의 확립을 주장한다(「간추린 사회교리」 441항 참조). 따라서 교황청은 주권 국가로서 이 세상 안에 존재하면서 국제 기구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1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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