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36) 사회교리와 빈곤 퇴치
나라님은 왜 가난을 구제하지 못했을까?
로마 유학 시절 만났던 세계 각국의 신부들, 특히 아프리카 지역에서 로마로 유학을 온 많은 신부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웠었다. 한국 신부들은 대부분 소속 교구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아 학비, 기숙사비, 책값 등을 해결했는데 아프리카에서 유학 온 신부들은 이러한 물질적 지원을 자신의 교구로부터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방학이 되면 용돈(?)을 벌기 위해 유럽 전역으로 본당 사목을 떠나곤 했다. 학비나 기숙사비는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으로부터 지원을 받았지만 그 밖의 여러 경비는 그들 스스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형편 때문인지 많은 아프리카 출신 신부들은 공부가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엄청난 짐을 싸가곤 했다. 일상 생활용품부터 전자 제품까지 유학 기간에 자신이 사용하던 물건들을 커다란 화물용 가방에 모두 포장해서 돌아가는 그 신부들의 모습이 왠지 씁쓸하게 다가왔다. 그들에게 물질적 풍요는 유학 기간에 한정된 것이었고 자신들이 살아야 할 고향과는 멀리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아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래도 유학 신부들은 그들의 나라에서 선택받은 사람들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대다수 일반 사람들은 가난과 전쟁의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도 힘든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되풀이되는 비극
우리가 TV를 통해 보면서 감탄하던 아프리카의 넓은 평원과 자연, 그리고 풍부한 자원과 탐스러운 과일들은 모두 주인이 있었다. 일반 사람들은 배가 고프면 나무 위에 올라가 바나나를 따 먹고 야자수로 목을 축일 수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금과 다이아몬드를 보유하고 있어도, 아무리 많은 원유를 가지고 있어도 일반 사람들에게 그러한 부는 골고루 분배되지 못하고 있었다. 부의 편중은 결국 정치 권력과 연결되었고 가난한 대다수 백성은 전쟁과 가난을 피해 아프리카 땅을 떠나 목숨을 건 선상 난민 신세가 되곤 했다.
2013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착좌 뒤 첫 사목 방문지로 이탈리아 최남단의 람페두사 섬을 찾았다. 람페두사 섬은 전쟁과 가난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아프리카 난민들이 유럽으로 가기 위해 거치는 중간 기착지와 같은 곳이다. 교황은 람페두사를 방문해 ‘불법 이민자 수용소’에서 미사를 집전하면서 강론을 통해 이민자들에 대한 국제적 무관심을 비판하고 양심의 각성과 형제애를 촉구했다.
람페두사는 튀니지에서 불과 120㎞ 거리에 있어서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유엔 난민기구의 발표로는 2013년 상반기에만 8400여 명의 이민자가 이 섬으로 피신했고, 교황이 방문한 당일에도 166명의 불법 이민자가 배를 타고 이 섬으로 밀항했다. 그들은 구명조끼 같은 기본적인 안전장비도 없이 식량과 물 부족에 시달리며 정원을 넘어서는 작은 배를 타고 밀항을 시도했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도 컸다. 2012년 9월에는 튀니지 이민자 136명이 타고 가던 배가 람페두사 섬 인근에서 전복돼 50여 명만이 구조되고 나머지는 희생되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교황은 람페두사의 비극을 보며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제적인 연대를 호소했다.
힘을 모아 어려운 이들을 도와야!
그들은 어째서 목숨을 걸면서까지 자신의 고향을 떠나 유럽을 향해 밀입국을 시도했을까? 그 중심에는 가난과 전쟁이라는 인류 공통의 시급한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는 인류 역사를 통해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식민지 정책으로 인해 고통받는 대륙이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많은 나라가 독립을 이루었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일부 권력자들의 경제적, 정치적 독점이었고 다수의 일반 백성들은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만약 일반 백성들에게 부의 재분배가 올바르게 이루어졌더라면, 람페두사의 비극과 같은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교황은 세계화된 무관심을 지적하면서 교회와 사회가 이러한 빈곤 문제와 이민자 문제에 적극 나설 것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사회교리는 인류의 전인적 발전을 위해 빈곤 퇴치를 강력하게 주장한다. 빈곤 퇴치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교회의 우선적 선택’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가톨릭 교회가 사회교리 전체를 통해서 줄기차게 강조하고 있는 ‘재화의 보편적 목적’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한 사회교리는 연대성의 원리를 끊임없이 언급하면서,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만큼, 만인의 선익과 각 개인의 선익을 증진하기 위한 활동을 요구한다. 한편 사회교리는 빈곤 퇴치를 수행하는 연대성의 원리에는 언제나 보조성의 원리가 적절히 수반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가난한 나라들이 사회적 경제적 발전의 근본 바탕인 진취적 정신을 기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보조성의 원리를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간추린 사회교리」 449항 참조).
모든 사람이 공평하고 정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국제 공동체의 노력은 끊임없이 수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인간 발전을 이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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