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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37: 환경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11-18 조회수1,858 추천수0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37) 환경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

보시니 참 좋았던 자연, 지금도 그럴까?



내가 사는 이곳 신학교는 강화도에 자리하고 있다. 2005년에 신학교 소임을 받고 들어왔으니, 이제 거의 10년째가 다 되어 간다. 처음 이곳 강화에 들어왔던 것은 1996년 부제 때였다. 20여 년의 세월은 강화도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그 변화의 정도는 일반 도시들과는 차이가 크다. 도시와 달리 이곳 강화는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곳 중 하나다. 물론 농촌이라는 지리적 조건에 사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불편한 점도 있지만, 자연환경은 그러한 어려움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하다.

처음 황무지 같은 진강산 밑 벌판에 신학교가 지어졌을 때는 제대로 되어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학교 모습이 제법 꼴을 갖추었고 환경과 어우러진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십수 년 전에 학교 진입로에 심었던 어린아이 팔뚝 굵기의 느티나무가 자라나 이제는 몸통만하게 굵어졌고, 하늘로 뻗은 나뭇가지가 서로 연결되어 터널이 될 정도로 자라났다. 또한 철마다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들을 바라보며 행복함을 느끼곤 한다. 봄이면 진달래, 영산홍, 개나리, 철쭉의 향연을 볼 수 있고 요즘 같은 가을철엔 서서히 물들어가는 단풍으로 인해 눈 속에 가득히 들어오는 초록과 노랑, 빨강의 향연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큰 치유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학교 진입로 옆으로 펼쳐진 논을 보면 계절의 변화를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다. 겨울이 지나 봄철이 되면 황량한 논에 물을 대고 모내기를 시작하고 이내 황토색 벌판이 녹색으로 변해 간다. 그리고 들판이 초록빛으로 가득해질 무렵 신학생들은 여름 방학에 들어간다. 또 가을이 되어 황금 물결이 출렁이기 시작하면 신학생들이 학교로 다시 돌아오고 2학기가 시작된다. 벼가 여물어 추수하기 시작하면 다시 노란 들판이 황토색으로 변하게 되고, 이때가 되면 겨울 방학이다. 들녘의 모습이 바뀔 때마다 신학교의 시간이 흘러감을 직접 느낄 수 있다. 이처럼 곡식이 자라듯, 신학생들 역시 영적으로 성숙해지고, 곡식이 추수되듯이 신학생들도 사제가 되면 소중한 못자리를 떠나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주변 식물들의 변화와 함께 학교에서 사는 많은 생물을 만나기도 한다. 이따금 저녁 끝기도 후에 홀로 학교 주변을 산책하고 있노라면 다양한 종류의 동물을 만날 수 있다. 동네 주변에서 신학교에 놀러 온 고양이와 개들도 많지만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뒷산에서 내려온 고라니들이다. 철마다 이름 모를 철새들이 신학교 기숙사 옆에서 자신의 존재를 뽐내듯 지저귄다. 까마귀나 까치 같은 텃새들뿐만 아니라 ‘후투티’나, 새 울음소리가 마치 ‘홀딱 벗고’처럼 들린다고 하여 일명 ‘홀딱 벗고 새’라고 불리는 ‘검은등뻐꾸기’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곤 한다. 한마디로 동물농장이 따로 없는 곳이 바로 이곳 강화 신학교인 셈이다.

사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이처럼 시골에서 오랜 기간을 살아가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이곳에서 사는 것이 더 익숙해졌다. 어쩌다 일 때문에 나가는 도시의 환경은 오히려 나를 피곤하게 만들곤 한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발생하는 시끄러운 도시 소음과 공해 속에서 단 몇 분만을 보내도 쉽게 피곤해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인간의 삶이 모두 다 하느님의 은총이고 섭리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지금 내가 사는 이곳 신학교의 환경 역시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맡기신 자연

사회교리에서는 자연환경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사회교리는 자연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면서 그 근거를 성경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실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은 이 세상을 적대적인 환경이나 해방되어야 할 악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로 이해했다. 또한 그들은 이 자연환경을 하느님께서 인간의 책임 있는 관리와 활동을 하도록 맡기신 장소이자 계획으로 인식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당신이 만드신 피조물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보시니 좋았다’(창세 1,4.10.12.18.21.25 참조)라고 말씀하셨고, 마지막으로 그 창조의 정점에 인간을 창조하시고는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 1,31 참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셨고(창세 1,27 참조), 모든 피조물을 인간의 책임 아래 맡기셨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특별한 관계성 안에서 인간을 창조하셨고 모든 피조물에 대한 책임 있는 존재로서 인간에게 자연을 돌볼 임무를 부여하셨다(「간추린 사회교리」 451항 참조).

무분별한 개발로 신음하는 자연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환경보호를 무시한 무분별한 개발 앞에서 우리는 인간에게 맡기신 세상과 자연을 올바르게 돌보아야 한다는, 하느님께 받은 소명을 다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1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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