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42) 정의와 사랑의 열매로서 평화
우리는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가?
21세기를 살아가는 가톨릭 교회는 세상의 평화 정착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아직도 세상 곳곳에는 전쟁과 기아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이 존재한다. 한국 역시 전쟁의 고통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아니다. 한국은 6.25 전쟁 발발과 휴전 협정으로 60년 넘게 분단된 세계 유일의 국가기 때문이다.
유학 시절 만난 외국인 신부 중에도 내가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북쪽인지 남쪽인지를 묻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아직도 한국이 전쟁 중이라 인식했고,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종전 아닌 휴전 상태인 분단 국가이며, 아직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위험한 나라이다. 이따금 남북 간 군사적 무력 충돌이 있었고, 국지전 형태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총성 없는 전쟁은 지속되고 있다.
이 땅에 사는 모두가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지만 실제로는 서로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화가 한반도에 정착되려면 적어도 이러한 적대적 관계가 모두 청산되어야만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정의와 사랑의 열매 평화
그렇다면 가톨릭 교회에서는 평화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흔히 사람들은 평화를 적대적인 세력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전쟁의 중지나 균형 유지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가 이해하는 평화는 이들이 이해하는 평화의 개념과는 다르다. 가톨릭 교회는 평화를 하느님 안에 뿌리를 두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사회의 이성적 도덕적 질서 위에 세워지는 가치이자 보편적인 의무로서 이해한다. 하느님께서는 평화의 근원으로서 존재의 일차적 근원이시며, 근본 진리이시고, 최고의 선이신 분이시기에 평화는 이러한 하느님의 모습과 부합돼야 한다. 따라서 단순히 전쟁의 부재나 적대적인 세력 간의 균형 유지로 평화의 의미를 단순화할 수 없다. 평화는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하며, 정의와 사랑에 기초하는 질서의 확립을 요청하는 가치이기에 사회교리는 평화를 정의와 사랑의 열매로서 이해하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494항 참조).
사회교리는 우선 평화를 정의의 열매로 이해한다. 넓은 의미로 보면 인간의 모든 차원의 균형에 대한 존중으로 평화를 이해한다. 평화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모든 것을 받지 못할 때, 인간의 존엄이 존중받지 못하고 시민 생활이 공동선을 지향하지 않을 때 위협받게 되므로, 인권 수호와 증진은 평화로운 사회 건설과 개인과 민족과 국가의 완전한 발전에 본질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또한 평화는 사랑의 열매로서 이해된다.
정의의 역할은 모욕을 가하거나 손해를 입히는 것과 같은 평화의 장애물을 없애는 일이다. 그러나 평화는 이런 요인을 없애는 것으로만 충분히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사랑의 행위를 통해서 가능하다. 따라서 평화는 정의의 열매인 동시에 사랑의 열매가 돼야만 가능하다(「간추린 사회교리」 494항 참조).
이러한 평화는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원하시는 질서의 추구를 통해 날마다 조금씩 이룩된고 모든 사람이 평화 증진에 대한 책임을 인식할 때 비로소 꽃필 수 있다. 분쟁과 폭력을 막으려면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는 절대적인 가치로서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이렇게 될 때 평화는 가정과 사회, 그리고 다양한 사회 집단들로 확산하고, 결국 공동체 전체의 참여로 이어질 수 있다. 상호 간의 화합과 정의에 대한 존중이 배어 있는 공동체는 참된 평화의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게 되며, 이를 통해 국제 공동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의 행복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사람들이 신뢰로서 자신의 정신과 재능을 서로 나눌 수 있게 될 때, 진정한 의미의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495항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평화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적인 가르침을 그대로 유지하고 계신다. 지난 8월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 교황님은 공직자들과 만남에서 진정한 의미의 평화에 대해 말씀하셨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이사 32,17 참조)입니다. 그리고 정의는 하나의 덕목으로서 자제와 관용의 수양을 요구합니다. 정의는 우리가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하여 그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합니다”(‘대통령과 공직자들과 외교단과 만남 연설’중) .
교황께서는 우리 민족에게 앞으로 어떻게 이 땅에 평화를 이룩할 수 있을지 가장 기본이 되는 가르침을 제시하셨다. 그 가르침은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서 진정한 용서와 화해, 관용과 협력이라는 사랑을 통해 정의로움으로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며, 이 정의로움이 진정한 평화를 이 땅에 정착시키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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