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44) 정당방위와 정의로운 전쟁
도덕적 정당성 없으면 침략 전쟁
인간 생명을 일부러 파괴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까? 그러나 우리는 매일 매일 뉴스를 통해 무죄한 사람들의 죽음을 접한다.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테러는 수많은 희생자를 낳고 있으며 그 피해는 매우 심각하다. 더욱이 국가 간 전쟁 피해 정도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가톨릭교회는 모든 전쟁이 초래하는 불행과 불의 때문에 선하신 하느님께서 오랜 전쟁의 굴레에서 인간을 해방시켜 주시도록 모든 이가 함께 기도할 것을 간곡히 촉구해 왔다.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과 위정자들은 불의한 전쟁을 피하고자 모든 수단과 방법을 사용할 의무가 있다.
만일 우리나라에 갑자기 외부 세력으로 인해 전쟁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니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 믿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 한민족은 오랜 역사 속에서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끊임없이 침략당했으며, 힘없이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힘없는 나라여서 백성들은 설움 속에서 이민족의 침략과 지배를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침략 전쟁을 통해 수많은 무고한 백성들의 목숨이 희생됐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도 침략국의 속국이 되거나 식민지화되어 민족 정신의 말살과 같은 정신적인 상처를 받았다.
정의로운 전쟁에는 도덕성이 필요하다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여러 분쟁 중 가장 비도덕적인 전쟁은 타국에 대한 침략 전쟁이다. 가톨릭 교회는 침략 전쟁을 본질적으로 비도덕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또한 이러한 침략 전쟁에 대한 정당한 대항으로서 정당방위의 개념을 인정한다. 사실 침략 전쟁이 발생하는 경우, 침략을 받은 국가의 지도자들은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자신의 국가를 방어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흔히 이러한 자국 방어 수행으로 발생하는 전쟁을 ‘정의로운 전쟁’(Justice War)이라고 표현하는데, 정의로운 전쟁 개념은 정당방위 개념에 대한 국가적인 차원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방어적 개념의 전쟁이 정의로운 전쟁으로 정당성을 부여받기란 쉽지 않다. 몇 가지 엄격한 조건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무력을 사용하는 정당방위가 도덕적인 정당성의 엄중한 조건을 따라야 하기에 여러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킬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그 조건은 첫째, 공직자가 국가나 국제 공동체에 가한 피해가 계속적이고 심각하며 확실해야 한다. 둘째, 이를 제지할 다른 모든 방법이 실행 불가능하거나 효력이 없다는 것이 드러나야 한다. 셋째, 성공의 조건들이 수립되어야 한다. 넷째, 제거되어야 할 악보다 더 큰 악과 폐해가 무력 사용으로 초래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이러한 상황 판단에서 현대 무기의 파괴력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런 네 가지 조건들이 모두 충족될 때,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무력 사용을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309항 참조).
물론 이 같은 도덕적 정당성의 조건들에 대한 평가는 공동선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의 신중한 판단을 따르게 된다. 그러나 타국을 공격함으로써 자국의 위해를 방지하겠다는 명분의 전쟁은 실적으로는 침략 전쟁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국민을 보호하려는 군사 행동과 타국을 정복하기 위해 행하는 군사 행동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두 차례의 걸친 세계 대전의 비극은 인류로 하여금 더는 미래 세대들에게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게 하려는 의도에서 국제연합을 탄생하게 하였다. 국제연합헌장에서는 국가 간의 분쟁 해결에 대하여 원칙적으로는 무력에 의존하는 것을 금한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무력 사용을 허락하고 있는데, 그것은 정당방위의 경우와 평화 유지에 대한 책임 범위 안에서 안전보장이사회가 내리는 조치들의 경우에만 그러하다(“국제연합헌장” 6장, 7장 참조). 여기서 우리는 정당방위권을 행사할 때에 필요와 균형이라는 전통적인 한계를 존중하는 것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타국의 공격이 가깝다는 명확한 증거 없이 방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오히려 도덕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다시 말해 무력 사용은 엄격한 평가를 토대로 하고, 동기의 근거가 충분한 경우에만 담당 기구의 결정을 통해서 그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501항 참조).
정의로운 전쟁으로 포장되어 타국을 침공하는 침략 전쟁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우선 그 전쟁의 도덕적인 정당성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덕적으로 정당한 이유 없이 과도한 무력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정의로운 전쟁의 가면을 쓴 침략 전쟁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평화신문, 2015년 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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