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47) 사회교리와 평신도의 참여
모범적 삶 통해 복음 선포하는 평신도
어머니는 처음부터 신자가 아니셨다. 청량리 근처에 살던 고등학생 시절, 친구를 따라 우연히 명동성당을 간 게 아주 인상 깊으셨나 보다. 처음 찾은 명동성당의 거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되셨다고 한다. 신앙이 없으셨지만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면 꼭 성당에 다니겠다고 결심하셨다. 그러다가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셨다. 아버지 역시 신자가 아니셨다. 전쟁 후 피난 온 인천에 정착한 아버지의 누이들은 개신교에 다녔지만 아버지는 개신교의 모습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 교회로 인도하려는 고모들의 설득도 마다하고 결혼 전까지 특별한 신앙 없이 사셨다. 먹고 사는 일이 바빴기에 교회나 성당에 나가는 일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다가 어머니를 만나 결혼하셨다.
가난한 신혼 부부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당장 끼니를 잇는 일이었다고 한다. 미군 부대에서 일하셨던 아버지는 60년대 말 이른바 월남 바람(?)으로 전쟁 중이던 베트남에 파견돼 미국 회사의 기술자로 일하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부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남편 없이 우리 형제들을 키우던 어머니는 성당에 가고 싶다며 허락해 달라는 내용을 편지에 담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신앙생활을 허락해 주셨고, 어머니는 어린 우리 형제들을 데리고 인근 성당 예비신자 교리반에 등록해 신자가 되셨다. 아버지가 귀국하신 후, 아버지 역시 어머니의 회유(?)와 설득으로 막내 여동생이 태어나던 해 신자가 됐다.
친가는 물론 외가에도 신자 하나 없던 우리 집안은 어머니가 세례 받으신 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많은 친척이 가톨릭 신앙을 지니고 살아간다. 어머니가 특별한 선교 활동을 한 것도 아니신데 어머니 모습에 감화된 친인척들이 스스로 가톨릭 신앙에 입문했다. 한 여인이 집안 전체를 신앙으로 이끈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누구도 성당으로 이끌지 않았지만 어머니 스스로 성당을 찾았고, 가톨릭 신앙을 진리로 받아들였고, 신앙인이 되셨다. 이 과정을 들여다보면 우리 한국 천주교회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는 것 같다. 평신도가 중심이 되어 사회 전체를 바꾸는 모습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느끼게 된다.
평신도는 그리스도의 제자
평신도 그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사회 문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의하면 “평신도는 세례 성사로 그리스도와 한몸이 되어 하느님 백성으로 구성되고,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과 왕직에 자기 나름대로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 그리스도교 전체의 사명 가운데서 자기 몫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교회헌장」 31항)이다. 다시 말하면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자신들의 고유한 신분에 따라 세상 안에서 살면서 그리스도의 삶과 사명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소명에 따라 현세 안에서 일하면서 하느님의 뜻대로 세상을 관리하는 동시에 하느님 나라를 세상 안에 추구하는 직분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평신도 그리스도인은 현세의 여러 실재들 안에서 자신의 모범적인 삶의 증언을 통해 이 세상에 복음을 선포한다. 평신도들은 자신이 처해 있는 세속적인 실재들, 곧 가정, 노동, 문화, 과학, 연구 등의 분야에 직업적으로 투신하고 사회 경제 정치적 책임을 행사하게 되며 그러한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고유 영역에서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의 투신과 참여는 충분히 복음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541~543항 참조).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는 이러한 평신도의 사회 활동 참여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사실 세상 안에서 실제로 살아가는 평신도의 복음적 삶은 세상 안에서 그들의 투신을 의미 있게 한다. 신앙과 삶의 결합을 통한 이웃 형제들에 대한 봉사는 주변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직간접적으로 초대하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는 것이다. 평신도 자신이 자신의 영성적 도덕적 생활을 튼튼히 하고, 사회적인 의무를 더욱 유능하게 이행하면 할수록 평신도들은 자신들에게 내적인 동기를 부여해 주고 다양한 사회 영역 안에서 활동하는 평신도들에게 적합한 방법을 획득하게 해 주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546항 참조).
평신도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한 여인이 한 가족 전체를 복음화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평신도였던 어머니가 가정 전체 안에서 그리스도인다운 모범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평신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사회 안에 보여줌으로써 세상을 복음화 시킬 수 있다. 따라서 평신도 그리스도인의 사회 참여는 복음화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평화신문, 2015년 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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