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고 힘나는 신앙 -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111)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 (28) - 대왕, 다윗 (중)
다윗의 큰마음과 통회, 그리고 하느님 자비
■ 세 번의 기름부음
엄격하게 순서를 따지자면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왕이고 다윗은 2대왕이다. 하지만 성경은 이를 명시적으로 부인하지 않으면서, 왕으로서 사울을 ‘나기드’라고 불렀고 다윗은 ‘멜레크’라고 이름 붙였다. 유심히 봐 두어야 할 대목이다. 본디 나기드는 ‘수령’으로 번역하는데 이것으로 보아 사울을 일종의 왕이긴 하지만 아직 온전한 왕이 아니라고 보았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멜레크는 진짜 ‘왕’에게 붙여지는 이름이다. 이 호칭을 처음으로 다윗에게 헌사한 것이다.
왕이 되는 절차의 중심은 ‘기름부음’ 받음이다. 다윗은 복되게도 이를 세 번이나 받았다. 사무엘에게(1사무 16,13 참조), 유다 왕으로 등극할 때 원로들에게(2사무 2,4 참조), 그 다음 통일왕국으로 등극할 때 백성의 대표들로부터(2사무 5,3-5 참조), 도합 세 번이나 영광의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 대군(大君)의 조건
다윗은 통큰 리더였다. 통일국가 왕으로서 다윗의 공적은 타와의 비교를 불허한다. 나열하자면 지면이 모자랄 것이다. 여기서 그것이 무엇이냐를 묻기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를 묻는 것이 차라리 더 현명하겠다.
과연 무엇이 다윗으로 하여금 대군이 되게 했을까? 그가 두 번째와 세 번째 기름부음 받기 전 보여주었던 대인(大人)스러움에서 그 답을 발견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잠깐 당시 상황 속으로 들어가 보자. 사울이 거듭되는 불순명으로 야훼 하느님의 눈 밖에 난 이후, 급기야 사울은 필리스티아인들과의 길보아 산 싸움에서 요나탄을 포함하여 세 아들을 잃고 자신마저 적의 화살에 맞아 궁지에 몰려 비관 끝에 자결을 결행한다(1사무 31,4 참조). 곧이어 이 소식이 사울 진영의 한 젊은이에 의해 다윗에게 전해지는데, 거기 약간의 잔꾀 섞인 거짓진술이 가미된다. 그 젊은이 자신이 사울의 자결 결심을 도와 목숨을 끊어줬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내심, 사울로부터 그토록 핍박받아왔던 다윗이 사울 일가의 비극적 최후를 기뻐하고 그 죽음에 일말의 기여를 한 자신에게 포상을 내리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그 예상에 정반대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었다.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하였다. 그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탄, 그리고 주님의 백성과 이스라엘 집안이 칼에 맞아 쓰러진 것을 애도하고 울며, 저녁때까지 단식하였다”(2사무 1,11-12).
그 지도자에 그 무리배다. 다윗의 마음이 무리배의 공감을 얻었던 것이다. 그 가슴에 하늘과 나라와 백성을 품은 대인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감동을 연출할 수 있으랴.
그러면서 다윗은 되레 그 소식을 전한 젊은이에게는 “네가 어쩌자고 겁도 없이 손을 뻗어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를 살해하였느냐?”(2사무 1,14)라고 꾸짖으면서 그를 죽음으로 처단케 하였다. 역천 및 배신에 대한 이보다 더 명징한 경종이 어디 있으랴. 다윗은 7년 반 동안 그의 정적으로 있었던 이스 보셋을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어다 바친 두 명의 배신자들도 똑같은 잣대로 죽음으로써 엄단하였다. 다윗의 사려심과 냉철함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울의 사후, 다윗의 심경은 그가 바친 조가에 잘 반영되어 있다. 다음은 그 일단이다.
“이스라엘의 딸들아
사울을 생각하며 울어라.
그는 너희에게 장식 달린 진홍색 옷을 입혀 주고
너희 예복에 금붙이를 달아 주었다.…
어쩌다 용사들이 쓰러지고
무기들이 사라졌는가?”(2사무 1,24.27)
여간 통큰 가슴 지평이 아니다. 이 문장이 철천지원수나 진배없는 사울에게 봉정된 다윗의 헌시라니.
그렇다. 역천 및 배신에 대한 저런 엄단 의지와 대승적 화해를 위한 이런 아량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셨던 것이다. 그 마음에 하늘이 감동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그의 40년 통치기간 중, 예루살렘 도읍, 영토 확장, 제도 정비 등 굵직한 공적을 세우도록 하늘에서 보우해 주셨던 것이다.
■ 아라우나(오르난)의 타작마당
그렇다고 다윗이 흠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우리야의 아내 밧 세바에 얽힌 유명한 이야기 말고도, 다윗이 범한 결정적 과오는 전쟁을 치르기 위해 인구조사 곧 병적조사를 한 일이었다. 이는 절대적으로 하느님의 인준이 필요한 사안이었다. 다윗은 이를 감행했다가 곧 후회한다. 그리고 즉시 통회하며 용서의 기도를 바친다(2사무 24,10 참조). 하지만 이 죄는 온 백성이 다 알고 있는 과오였다. 공의로운 하느님께서는 공의로운 보속을 내릴 뜻을 예언자 가드를 통하여 전하며, 다윗에게 셋 중 하나를 택하도록 한다. 일 곱해 동안 나라의 기근, 석 달 동안 적들을 피해 도망다님, 삼일 동안 나라에 흑사병, 이 가운데 다윗은 세 번째 것을 택하며 이렇게 말한다.
“괴롭기 그지없구려. 그러나 주님의 자비는 크시니, 사람 손에 당하는 것보다 주님 손에 당하는 것이 낫겠소”(2사무 24,14).
참고로 당시 상식으로 ‘흑사병’은 하느님의 소관이었다. 다윗은 하느님의 자비를 믿고 이 선택을 했던 것이다. 막상 흑사병이 내리자 삽시간에 백성 7만 명이 죽는다. 이에 하느님의 자비와 다윗의 기도가 교차되는 가운데, 아라우나(오르난)의 타작마당 위에 제단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라는 하느님의 분부가 내려진다. 다윗이 이를 시행하자 비로소 재앙은 끝난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바로 이 자리가 훗날 예루살렘 대성전이 세워질 자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1역대 22,1: 2역대 3,1 참조). 알고 보니 그곳은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도록 부름받은 바로 그 모리야 산(창세 22,2 참조)이기도 했다. 아라우나(오르난)의 타작마당! 그곳이 바로 인류의 탄원 기도와 하느님의 자비가 마주 만나는 지점으로 간택된 성지 1번지인 것이다. 오늘 그곳을 오가는 순례객, 혹시 하늘을 향한 다윗의 애끓는 기도에 내려진 자비 응답의 이슬비를 맞을지 기대해 볼 일이다.
역시나 내 아들 다윗이로구나
너는 내가 뽑아 세운 왕다운 사제(탈출 19,6 참조)
네 ‘마음씀’이 너를 살렸다.
너 비록 나의 엄명을 크게 거슬렀으나 즉시 통회하였고,
그 보속으로
사람에게 괴롭힘을 받음보다 나의 자비를 택하였으니,
네 믿음이 너와 네 백성을 살렸다.
흑사병으로
죄 없는 백성이 숱하게 죽어나갈 때,
피눈물로 흐느끼는 네 탄원을 내가 들었고,
백성을 향한 네 단장의 비통을 내가 보았노라.
오르난의 타작마당
거기서
네 애간장 기도와
내 원조 연민이 조우하였지.
아브라함도
떨리는 손으로 제물을 바쳤던 모리야 산자락,
그곳은
자비의 청원과 자비의 응답이
오르락 내리락
마주 만나는 곳.
이 날을 기려
내가 그 곳을
내 자비가 머물, 나의 성전 터로 삼으리라.
내가 그곳에 내 이름을 두리니,
그곳에 와 내 이름을 부르는 이마다
내 이름을 만나리라.
*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4월 5일, 차동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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