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연민과 연대
아파하는 이들과 함께하자
지난 3월 한국 주교단의 사도좌 정기방문이 있었다. 이미 언론 매체를 통해 잘 알려졌듯이, 한국 주교단을 맞이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질문은 “세월호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어 가느냐”는 것이었다. 지구 반대편의 가장 상처받은 이들에 대한 연대의 표시였다.
작년 우리나라를 방문하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방한 이틀째부터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고 위로하셨고, 그들에게 전해 받은 세월호 리본을 끝까지 달고 계셨다. 그리고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의 물음에 이렇게 답하셨다.
“나는 유족들과 연대하기 위해 이것(세월호 추모 노란 리본)을 달았습니다. 이것을 달고 반나절쯤 뒤에 어떤 이가 다가와 ‘떼는 게 더 낫겠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러한 말씀과 태도는 그리스도교 사랑의 본질이 어떠한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가장 낮은 사람들, 가장 아픈 사람들,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한 연민과 연대로 드러난다. 가톨릭교회 사회교리는 이러한 연민과 연대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고 표현한다.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는 교황의 말씀이 보여주듯,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택은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의 영역이기 이전에 신학과 신앙의 영역이다. 하느님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는 백성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으며, 그들을 해방시키시고, 그들의 하느님이 되셨다. 하느님은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2코린 8,9) 우리 가운데 오셨다. 예수께서는 고통받는 이들과 가난에 짓눌린 이들에게 하느님 마음속에 그들을 위한 특별한 자리가 있음을 확신시켜 주었고,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다”(마태 25,35)고 말씀하시며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는 이들을 당신 자신과 동일시 하셨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가난한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불의한 사회구조와의 싸움을 통해서, 가난한 사람들과 빵을 나누는 연대를 통해서, 그들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는 연민을 통해서, 그리고 하느님 말고는 어떤 것에도 희망을 두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는 자발적 가난을 통하여 이루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오늘날 이웃사랑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물질에 대한 신앙인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 없다면 그 자체로 훌륭한 사랑의 형태인 복음 선포는 오해를 받거나, 대중 매체에 좌우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날마다 우리를 집어삼키려 하는 말의 홍수에 침몰될 위험’(복음의 기쁨, 199항)이 있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사회교리의 원리는 한편으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투신하는 수많은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지도자들에게는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투신의 영성을 불어넣어주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많은 이들에게 오해와 염려를 주는 것도 사실이다. 교황께 “중립을 지키기 위해 세월호 리본을 떼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 그 분의 염려가 그러하다. 그러나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수 없다”는 교황의 말씀이 정답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택은 정치 논리와 정치적 선택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이 1주년이 지났다. 가장 아파하는 이들과 얼마나 가까이에 교회가 서있었는지 스스로 물어볼 때다.
* 이동화 신부는 1998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2010년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부산교구에서 직장노동사목을 담당하고 있다.
[평화신문, 2015년 4월 19일, 이동화 신부(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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