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산책 (4) Q. 복음서는 전기(傳記)?
A. No(아니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福音)
“와서 보아라”는 예수님의 초대에 응답하며 복음서를 읽으면, 우리는 예수님의 어떠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일까?
누군가 복음서를 읽으면서 2,000년 전의 예수님의 생애와 인물 됨됨이를 파악하고자 한다면 이는 시작부터 잘못된 접근이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이후부터 돌아가실 때까지의 일들을 낱낱이 기록한 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생애를 연대기 순으로 객관적으로 무미건조하게 기록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아무리 복음서를 꼼꼼히 읽는다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할 수는 없다. 예수님께서 어렸을 때 어떠한 교육을 받으셨는가?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떠했는가? 공생활(세례를 받으신 후 이스라엘 곳곳을 다니시며 회개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삶. 마르 1,9~15; 가톨릭교회교리서 535항 참조)전까지 예수님은 무슨 일을 하시며 사셨는가?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호기심으로 이런 질문은 어떠한가? 예수님의 키와 몸무게는? 피부색은?
복음서가 예수님의 일대기를 나열한 전기가 아니라면 무엇을 전하고 있는가? 요한복음서는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변하고 있다. 복음서에 기록된 것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1). 복음서를 집필한 목적은 바로 예수님께서 메시아(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믿도록 하는데 있다.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집필되었다(70년경)고 여겨지는 마르코복음서는 더욱 간결하고 분명하게 이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마치 보고서나 책의 제목처럼, 시작(1장 1절)부분에 복음서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따라서 복음서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일대기를 알고, 그 생애를 그려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복음서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고 고백하도록 초대하고 있으며 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가에 대한 답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초기교회 공동체를 통해 선포되었던 ‘예수 그리스도’라는 신앙 고백이 그 시대를 넘어, 세상 끝까지 선포되어야 한다는 사명에서 복음서를 집필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복음서를 읽는다는 것은 초기교회 공동체의 신앙고백을 내 삶에서 이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2,000년 전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기쁜 소식(복음)’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 고백이 우리 삶에 구원의 ‘기쁜 소식’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을 활짝 열고 초기교회 공동체가 전해주는 복음의 기쁜 소식에 귀를 기울여 보자. 이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게 하는 생생한 증언이 되어 우리 각자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각자의 삶에 위로와 희망의 원천이 되며, 각자의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어 줄 것이다.
[2015년 3월 15일 사순 제4주일 청주주보 4면, 김대섭 바오로 신부(복음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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