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산책 (10) 교회는 ‘성사’인가?
예비자 교리를 모두 마친 후 세례를 받기 전, 배운 교리를 묻는 시간이 있다. 어려운 질문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예비신자들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져, 쉬운(내 생각에는 쉽지만 그분들에게는 어려운) 질문을 하게 된다.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원자는 누구인가요?” “예수님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한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을 무엇이라 하나요?” “삼위일체입니다.” “교회에는 성사가 몇 개가 있나요?” “7성사입니다.” 7성사가 각각 무엇이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꾸~욱 참고, “잘 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해준다.
교회는 성사가 일곱 개가 있다고 가르치는데, 세례, 견진, 성체, 고해, 병자, 성품, 혼인이 그 것이다. 그런데 혹, 교회를 두고 ‘구원의 성사’, 또는 ‘구원의 보편 성사’라고 부르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교회도 성사라고 한다면 교회는 8번째 성사인가?
성사(聖事)란 무엇일까? 먼저, 한국 천주교 초기의 교리서였던 「천주교요리문답」*을 보자. “성사는 무엇이뇨?” “성사는 예수 친히 정하신 유형(有形)한 표적이니 그 표시하는 성총을 이루어주는 것이니라”(203항). 좀 쉽게 풀어 쓴다면, 성사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보이게 하는 표지란 것이다. 현대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성사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 교회에 맡기신 은총의 유효한 표징들로서, 이 표징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베풀어진다”(1131항).
본래 성사(聖事; sacramentum)란 말은 그리스 말 mysterion(미스테리온)에서 나온 것인데, 비밀에 쌓여 있는 어떤 것(미스테리: mystery)이 밝혀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구원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세상 안에서 드러나고 실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성사는 이 세상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은총과 구원의 표지인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 안에서 이 표지는 무엇인가?
지난 글에서 밝힌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빛으로 인류를 비추어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 그리스도의 빛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말하는 것이며, 인류에게 비춘다는 것은 세상에서 그 빛을 드러내는 표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교회는 성사가 되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헌장 첫 항을 이러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와 같다. 교회는 곧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이다”(교회헌장 1항). 공의회 교부(주교, 대주교, 추기경)들은 교회는 하느님과 인간의 깊은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교회를 두고 하는 이 말이 성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교부들은 왜 교회를 ‘성사’라 하지 않고, ‘성사와 같다’고 했을까?
* 1934년 한국 천주교회 주교단이 조선대목구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펴낸 문답식 교리서(敎理書)로, 1967년 『가톨릭교리서』가 나오기 전까지 33년 동안 한국 천주교회의 대표적인 공식 교리서로서 인정받았다.
[2015년 4월 26일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이민의 날) 청주주보 4면, 김대섭 바오로 신부(복음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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