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부패와 민주주의
정치적 부패는 민주주의를 무너뜨린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가 우리나라 정치와 민주주의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자유선진당과 새누리당으로 옮겨 다니며 국회의원을 했던 성완종 경남기업 대표가 지난 정권의 자원외교 비리에 관한 수사에 반발하며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메모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그 메모에는 현 정권 실세 정치인들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고, 죽기 직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이들에게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건넨 것으로 언급했다. 이 문제로 사퇴한 총리와 경남도지사는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나머지 정권 실세들에게까지 수사가 확대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러한 비리와 부패 앞에서 우리가 함께 성찰해봐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기업의 비자금 문제이다. 개인기업도 아니고 주식회사에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이 비자금으로 조성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노동자들의 합당한 권리 요구에는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손해배상소송 등을 통해 탄압하는 기업들이 이렇게도 쉽게 비자금을 조성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기도 하다. 만일 유럽처럼 노동자 대표들이 주식회사 이사회에 의무적으로 참여하고,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기업의 회계를 감시할 수 있다면 이런 일이 가능할까? 바로 이런 이유에서라도 가톨릭 사회교리가 꾸준히 가르쳐오는 ‘노동자들의 경영 참여’(노동하는 인간 14항)는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둘째로, 경남기업에서 나간 돈이 정치권으로 흘러 들어가서 망해가는 기업의 재무 개선(work out) 특혜로 되돌아왔다는 점이다. 많은 경우 정치권으로 흘러 들어가는 자금은 대개 특정 기업의 특혜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기업이 더 많은 노력과 연구개발 그리고 창의력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로비와 접대로 기업을 유지할 때, 그 경제가 튼튼할 수 없는 일이다. 바로 이런 식의 정치와 경제의 유착 구조는 건강한 시장경제를 무너뜨린다. 더 나가서 이러한 부패는 국가의 올바른 통치를 위협하고, 국회와 같은 대의기구의 결정을 가진 자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으로 전락시킨다. 그래서 법과 제도 자체가 이미 가진 자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지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게 되어버린다. 그럼으로써 정치적 부패는 모든 이들을 위한 공동선에 걸림돌이 되고,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결과는 낳게 된다(간추린 사회교리, 410-412항).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많은 사람이 정치란 원래 더러운 것이고, 또 정치인은 “그놈이 그놈”인지라 다 똑같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도 정치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마치 더 깨끗한 것이고 바람직한 신앙인의 자세인 것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자세와 태도야말로,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더욱 부패하게 하고, 그 폐해가 고스란히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오게끔 하는 것이다. 사회교리가 말하는 참여의 원리는 선거와 투표에 참여함으로써 공동체의 중요한 결정에 참여하라는 것을 넘어선다. 그것은 공동체 전체의 일에 계속적으로 관심과 애정을 가지는 것, 그리고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사람과 정치권을 꾸준히 감시하고 감독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정치적 부패는 몇몇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주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건강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자체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노동자와 서민의 삶이 힘들어지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건강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후퇴하기 때문이다. 더러운 일이라고 치부하고 물러설 일이 아니라 우리들의 더 많은 관심과 감시가 필요하다.
* 이동화 신부는 1998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2010년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부산교구에서 직장노동사목을 담당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5년 5월 31일, 이동화 신부(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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