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산책 (14) 계시에 대한 우리의 응답 - 신앙(信仰)
어릴 적, 학교에서 돌아오기가 무섭게 가방을 내팽개치고, 학교 운동장으로 다시 뛰어갔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는 오후 내내 운동장을 뛰어 다니며 신나게 놀다보면 어느새 저녁노을이 주위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해가 지고 주위가 어둑해지기 시작했지만, 열심히 공을 차고 뛰어 놀았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렇게 한참을 뛰어 놀다보면 어디선가 멀리서 아득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막내야~ 밥 먹어야지~~” 주위를 둘러보면 운동장 가에서 목청껏 나를 부르시는 어머니가 보였다. 그 말씀에 나는 아쉬움을 뒤로 하며 놀던 것을 끝내고, 어머니께 달려갔다. “알았어요~~”라고 큰 소리로 대답하면서...
지난 시간에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고 당신과 친교를 이루도록 초대하시는 것을 ‘계시’라 하였다. 이러한 하느님의 초대에 우리 인간이 맞갖게 응답하는 것, 이를 ‘신앙(信仰)’이라 한다. 마치 어머니의 부르심에 아들이 대답하며 달려가듯이 ‘계시’와 ‘신앙’은 그렇게 마주한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계시와 연관된 첫 번째 명제, 즉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이 세상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확고하게 대답했다. “예.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신앙과 연관된 두 번째 명제에 접하게 된다. “그렇다면 당신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이에 응답한다. “예. 제 삶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신앙은 “인간이 인격적으로 하느님께 귀의하는 것이며, 또한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 전체에 대하여 자유로이 동의하는 것”(가톨릭교회교리서, 150항)이다. 이는 하느님의 부르심과 하느님의 뜻에 대한 단순한 동의가 아니라 하느님을 믿고 의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는 “믿음의 순종”(로마 1,5)이라는 표현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순종하다’라는 라틴 말 oboedire(오보에디레)는 ‘ob(에게)’와 ‘audire(듣다)’의 합성어이다. 즉 믿는다(순종한다)는 것은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말씀을 듣고 전적으로 온전히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각자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계시된 진리에 자신의 지성과 의지로 동의한다는 점에서 신앙은 인간적 행위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믿음은 “하느님의 도움의 은총”과 “성령의 내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실제로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께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신앙을 고백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말씀하셨다(마태 16,13-17 참조). 이러한 면에서 신앙은 하느님의 선물(에페 2,8)이며,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선물을 받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 선물을 온전히 받아 안고 기쁜 소식을 전하였던 바오로 사도의 고백을 우리 안에 새겨 보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2015년 5월 31일 삼위일체 대축일(청소년 주일) 청주주보 4면, 김대섭 바오로 신부(복음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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