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정치 공동체의 역할
공동선 실현 위한 경제정책 마련해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의 영역들을 크게 나누어 보면 정치와 경제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주식이나 펀드를 해본 적도 없고 신문의 경제 기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시장 경제 한 가운데서 살아간다. 마찬가지로 정치에 대해서는 아는 바도 없고 관심도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정치의 한 가운데 살아간다. 세속적인 영역이라고 외면하더라도 우리는 정치와 경제를 벗어나서 살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영역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신앙의 가르침대로 세상을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이다.
우리는 경제 영역 안에서 이마에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바로 그 노동의 대가로 자신과 가족을 부양한다. 사실 우리가 경제라고 번역하는 ‘economy’라는 말은 옛 그리스 말에서 ‘집’ 또는 ‘살림살이’를 뜻하는 ‘oikos’에서 나왔다. 이처럼 인간이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 얻은 것은 자신과 가족에게 돌아가야 한다. 이런 뜻에서 가톨릭 사회교리는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는 인간의 자연적 권리라고 천명한다.
그러나 경제는 인간의 욕망과 탐욕, 이익추구의 자리이기도 하다. 개인도 그러하고 집단도 그러하다. 특히나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이다. 물론 많은 기업가들 중에서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거나, 윤리적 경영을 하거나, 또는 사회적 필요를 위해 투자를 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기업과 경제가 이런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기업의 목적이 이윤 추구이다 보니 그 목적을 향해 달려가다 보면 관성의 법칙 때문에 이윤 추구가 탐욕으로 쉽게 변한다. 이윤 추구를 위해 노동자를 착취할 수도 있고, 비용 절감을 위해 환경을 해칠 수도 있으며, 안전하지 못한 작업환경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좀 더 정의롭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의 욕망과 이익 추구가 탐욕으로 변하지 않도록 적절하게 규제를 가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가톨릭사회교리는 “사유 재산권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 재산권을 규제할 필요”(간추린 사회교리 177항)가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면 기업의 이윤추구가 탐욕으로 변하지 않도록 누가 통제해야 하나? 즉, 사유 재산권에 대한 규제를 누가 할 것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정치 공동체이다. 국가는 기업이 시장 안에서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여 이윤추구를 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되지만, 각종 법률과 규제와 점검을 통해서 기업의 이윤 추구가 탐욕으로 변하지 않도록 통제해야 한다. 그래서 기업이 이윤 추구는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범위 안에서, 노동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범위 안에서, 생태와 환경에 큰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지역 주민과 청소년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의 존엄과 권리를 박탈하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도록 국가가 계속해서 감시하고 통제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이 국가가 사회전체의 공동선을 위해 시장을 조절하고 통제해야 한다(요한 바오로 2세 「백주년」 35항)는 것이 가톨릭교회 사회교리의 중요한 뼈대이다.
국가와 정치가 이러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민들이 가난하다. 온갖 경제법칙과 좋지 않은 경기를 내세워 변명하더라도, 가장 기본적으로는 정치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경제정책을 무너뜨리고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펴기 때문이다. 그것이 세계 10위권의 부자나라 대한민국에서 대다수 서민이 가난한 이유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더 발전하고 성숙하도록 우리가 깨어있어야 한다. 좋은 정치가 우리의 삶을 좋게 만든다.
* 이동화 신부는 1998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2010년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부산교구에서 직장노동사목을 담당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5년 6월 14일, 이동화 신부(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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