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천주교’에 관하여--(2)
2015-06-19. 금요일.
1. 지난 시간은, 여러분에게 ‘천주교에 관한 얘기를 말씀’드린 첫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이야기의 서론을 덧붙이기는 했습니다만, 우리 신앙을 간단한 ‘문답(問答)형식(形式)’으로 된 교리서의 첫 번째와 둘째 항목도 설명했습니다.
2. 지난 시간에는, 첫째 항목이었던, 사람의 탄생목적과 그 대답에서 연결되는 천주교회에 대한 내용을 말씀드렸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나 이유는 ‘천주, 즉 하느님을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태어났고,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천주교에서 가르치는 여러 가지 내용을 대하면서 따르고 실천해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내용’을 말씀드렸습니다.
3. 흔히 노파심(老婆心,=남의 일을 지나치게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소리입니다만, 신앙에 대한 이런 내용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나, 들어도 따르려고 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있을 때는 그들을 상대로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질문에 따른 대답이 복잡할 것 같아도, 실상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이고 그냥 내버려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좋고 올바른 것을 알려주면, 그것을 들은 사람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다 따르고 실천할까요?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 사람을 향하여 질문할 것입니다. 내가 당신의 말대로 따라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또 그 말대로 따라 살면 내게 무엇이 생기느냐고, 실천하는 것과 실천하지 않는 태도의 차이에 따라 이해(利害)득실(得失)을 계산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의 결과에 따라 행동할 것입니다. 그렇게 복잡하게 따지고 계산한 결과, 신앙에 대한 것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면 ‘그런대로 다행이고 좋을 수 있지’만,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마소(馬牛)라면 묶어놓고 억지로라도 좋은 것을 강제하는 방법을 찾겠지만,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는 일이 허락되지 않으니까, 결국 선택에 대한 것은 각 개인이 감당할 결실을 남기는 법입니다
4. 오늘은 천주교가 어떤 종교이고, 무엇을 가르치는 종교인지 말씀드릴 시간입니다. 신앙에 대한 것을 말로 설명하는 것이 이 시간의 특징이기는 합니다만, 여러분이 교회공동체에서 의도하는 바대로 정확하게 따라주고,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합니다.
5. 세 번째 문답입니다.
서양에서 시작한 종교인 ‘그리스도교’를 중국에서는 처음에 기독교(基督敎)라고 불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기독교라는 표현은 ‘그리스도’를 중국의 언어로 부른 일반명사입니다. 이 말은 대한민국에서 개신교가 부르는 것처럼, 자기들의 종파인 ‘개신교’만을 부르는 특별명사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 얘기를 반복해서 말씀드리는 이유는 알 건 알아야한다는 뜻에서 하는 소리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이 저를 통해서 배우고 익히고, 삶의 기준으로 따르고 살아야 할 종교와 신앙에 대해서 말씀드릴 시간입니다. 그것이 3번째 항목인 ‘천주교’에 대한 것입니다.
6. 아주 간단하게 세 번째 문답에서 제시하는 내용은 천주교회는 사람이 세운 종교가 아니라는 얘기이고, 그 천주교에서 가르치는 내용도 온전하게 사람의 생각에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아닌, 하느님에게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니, 세상에 있는 종교들 가운데는 사람이 세운 것도 있다는 얘기가 될 것입니다. 이 시간이 종교에 대한 일반적인 얘기를 할 시간은 아니지만, 아마도 천주교를 뺀 대부분의 종교가 인간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잘못된 표현은 아닐 것입니다. 불교는 싯다르타라는 인도의 왕자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아실 테고, 유교도 공자라는 위대한 성현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종교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지금을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가 되어 마치도 서로 다른 것처럼 취급되는 개신교(=프로테스탄트)역시 현실의 모습을 갖추는 데는 ‘마르틴루터’라는 사람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아실 것입니다.
7. 개신교보다 세상에 드러난 역사가 1500년 쯤 앞서는 가톨릭은 어떨까요?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낼 때는 천주교나 가톨릭이라고 불리지는 않았습니다만, 어쨌든 시작부터 말하면, 예수님이 세우신 종교일까요? 정답은 ‘아니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세상에서 모이기 시작했던 사람들의 삶에 하느님의 성령이 내려오시어 그 모임을 계속하도록 교회를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 모임이 시작될 요건에는 그리스도예수님의 가르침과 그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모임은 성령의 힘으로 시작된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뜻으로 세워진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으로 세워진 종교라는 얘기입니다. 훗날 여러분이 듣게 될 성령의 작용으로 세상에 그 모습이 시작되고 그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더구나 예수님이 시작한 것이라고 해도, 우리는 신앙에서 예수님을 가리켜 순전한 인간(人間)이 아니라, 하느님이라고 합니다. 혹시라도 여러분이 어디선가 ‘예수님은 반신반인(半神半人)이라는 소리’를 들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것도 사실과 다릅니다. 하느님이신 분이 우리 사람들과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세상에 사람의 몸을 지닌 분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셨고, 그분은 세상에서 대략33년쯤 사신 다음에는 인간의 몸을 세상에 두고 하늘로 오르신 분이신, 하느님이셨으니, 온전하게 인간의 생각만 적용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종교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8. 제가 여러분에게 하는 이 얘기는 인간의 경험을 기준으로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제가 천주교회공동체의 사제(司祭)로 살고는 있습니다만, 인간의 눈으로 하느님의 강생이나 탄생을 보거나 체험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 귀로 확인할 만한 무슨 확증이나 물증을 여러분에게 제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저는 여러분에게 ‘신앙에 따라서’, 그분은 하느님이셨으니, 그분의 가르침을 중심에 두고 이루어진 교회공동체는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10. 다음은 천주교회교리에 대한 교리를 나누는 방법에 대한 설명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할 이 시간에 다룰 교리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눕니다. 그 내용은 네 번째 문답의 항목에도 있습니다. 천주교회신앙의 교리내용은 믿을 교리와 지킬 계명 그리고 은총을 얻는 방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믿을 교리’는 글자 그대로 신앙(信仰)신조(信條,=신앙의 조목으로, 신자에게 믿게 하는 내용)에 대한 것입니다. 교리를 세부분으로 나눴으니, 상대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말하라면 뒤따르는 두 가지 내용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 ‘믿을 교리’에 대한 것입니다. 건물로 비교해서 말한다면 ‘믿을 교리’는 기둥이 될 것이고, 사람의 몸으로 생각한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혈관 혹은 내장기관들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말하는 것이 ‘지킬 계명편’의 내용입니다. 훗날 ‘믿을 교리’보다는 간단하게 대할 내용이고 여러분에게 간단하게 설명할 내용입니다만,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이 지키고 따라 살아야 하는 법칙에 대한 것을 가리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법칙을 강조하는 것을 싫어해서, 천주교회라는 종교를 몹시 고리타분하고 시대를 모르는 종교라고 폄훼(貶毁,=깎아내리고 헐뜯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런 사람들의 판단이나 말이니, 우리가 그들이 하는 말이나 내용들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도 아니고, 그들의 소리에 반응을 보일 필요도 없습니다. 세 번째 ‘은총을 얻는 방법’은 사람이 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한 방법으로 교회공동체에서 알려주는 하느님의 도우심인 은총을 얻는 방법으로 인간의 반응인 기도와 하느님이 응답인 성사를 말하는 내용입니다. 이에 대한 내용은 훗날 관련이 있을 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믿을 교리에 대하여 설명하기 전에, 문답의 항목에 나와 있는 사도신경을 읽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함께 하자고 말씀드리는 사도신경의 내용만 분리해서 설명하는 방법으로 예비신자교리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사도신경은 말 그대로 사도들이 믿고 따랐던 신앙에 대한 것을 글로 정리한 것이지, 그 내용이 예비신자교리의 주제를 모두 담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여기에 언급이 됐으니, 사도신경을 함께 하겠습니다. 사도신경의 내용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에 관한 내용, 교회에 대한 내용,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궁극적으로 믿고 따라 살아야 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지금 다섯 번째 문답을 말하는 자리에서 사도신경에 대한 내용을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하느님에 관한 것이니, 인간의 말로 한두 번 한다고 해서 그 내용을 쉽게 깨우칠 것도 아닙니다만, 이게 우리 그리스도교신앙의 기본내용이라고 한다는 것은 꼭 알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예비신자교리에 함께 하는 분들이니, 지금 당장 남들에게 여러분이 배우고 익힌 내용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여러분 자신에게나 훗날 다른 이들에게 말할 때, 외우고 익힌 사도신경을 통하여 내가 믿고 따르는 내용이 어떤 것인지 말할 수는 있어야 할 것입니다.
12. 믿을 교리편의 다음에 이어질 지킬 계명에 대한 설명은 6번 문답입니다.
사람의 사회에는 법칙(=법과 규칙)이 있습니다. 사람이 속한 사회가 잘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해서 정하고, 사람들이 지켜야 할 것이며, 지키도록 강조 혹은 강요하는 내용입니다. 모든 사람의 동의(同意)를 얻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악법(惡法)도 법’이라고 외치고 사약(死藥)을 먹은 사람도 있습니다만, 입법자들이 법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를 갖추기를 청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여기 여섯 번째 다루는 신앙의 내용은 ‘세상의 법’을 넘는 것입니다. 굳이 말한다면, 세상의 법들보다도 차원이 높다고 말하는 것이 낫겠지요?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담은 것이고, 사람이 사용하는 말로는 계명이나 사람이 사용하는 것과는 의미가 다른 법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 십계명은 히브리민족의 백성이 ‘아브라함의 아들인 야곱의 후손들’이 이집트에서 더부살이를 하는 것으로 시작으로 하여, 종살이로 전락했다가, 하느님의 배려와 사랑으로 그 생활을 시작한지 450년쯤이 지난 다음, 그 땅에서 탈출할 때, 하느님께서 히브리민족의 조상들에게 주신 내용을 가리킵니다. 지금의 이집트, 시나이반도 남쪽편의 어느 곳엔가 있는 산으로 말합니다만, 히브리민족의 백성이 이집트왕 파라오의 추격을 피해서 홍해바다(=RED SEA / REED SEA)를 건너고 90일쯤 지나서, 도착한 곳이었던 시나이산에서, 지도자 모세가 하느님에게서 받은 내용이 십계명입니다.
14. 십계명을 받기 위해서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40일을 머물렀습니다. 물론 그 기간을 참지 못했던 히브리민족의 백성들은 ‘지도자 모세’가 죽었다고도 생각했고, 자기들을 쫓아오던(?) 세상의 힘을 두려워하여, 황금으로 송아지 모양의 신상(神像)을 만들고, 그 황금신상이 자기들을 이집트의 압제에서 구해낸 하느님이라고 떠받듭니다. 이렇게 한 행동이 그들에게 다음 순간에는 삶의 족쇄가 되지만, 그 판단까지는 하지 못한 그들은 40일을 참지 못하고, 인간의 정신을 앞세워, 자신들의 삶에서 하느님을 밀어냅니다. 하느님을 몰아냅니다. 하느님을 쫓아냅니다. 그렇게 인간이었던 자신들의 삶에서 하느님을 밀어냈으면, 그 인간의 가치가 하느님의 위치까지 높아져야 했을 테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결국에는 그렇게 섣부른 행동을 함으로써 인간은 스스로 파멸의 길로 갑니다. 자유를 그렇게 제 멋대로 사용한 결과라고 생각하기에는 참으로 엄청난 결과였습니다.
15. 신앙에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면 인간의 품격(品格)이 더 높아진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기준에서는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지요. 그와는 반대로 눈에 보이지않는 하느님을 부정하면서, ‘그 그늘’에서 벗어나는 인권(人權)을 신장하는 일이라고 우깁니다. 그렇게 해서 인간은 하늘로 높이 올라갈 줄 알지만,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것만도 못하게 결국에는 땅속으로 빠지는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땅속으로 빠진다는 얘기는 멸망한다는 듯입니다.
16. 지킬 계명에 나오는 십계명 다음에는 교회공동체가 ‘십계명을 실천하는 방법’을 해석하고 제시하는 교회법이 있습니다. 2015년 현재, 통용되는 교회법은 1982년에 제정된 요한바오로2세 법전입니다. 이 법전은 1752조로 돼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내용을 전부 다 외우거나 알아야 하는 내용은 아닐 것입니다. 사실 저도 그 내용을 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법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처럼, 보통사람들이 한두 번 읽어서 그게 무슨 내용인지 알아듣기가 쉽지도 않은 내용이고, 신앙인들이기는 하지만, 우리들의 구체적인 삶에 전부 다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정도가 있다고 알기만 해도 충분할 것입니다. 관련되는 것은 훗날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17. 교리내용의 세 번째 부분입니다.
사람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사람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한 표현으로, 사람을 가리켜서 ‘만물의 영장(靈長)’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만, 이 말은 어떤 진리를 담고 있는 표현이겠습니까? 같은 글자라고 해도 대하는 사람에 따라 의미는 다를 것입니다. 진실을 담아서 정말로 그렇게 볼 수도 있고, 사실과는 다르지만 그렇게 말이라도 해서 뭔가 부족한 것을 채우자는 뜻일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은 허장성세(虛張聲勢,=실속은 없으면서 허세만 떠벌림)이라는 말을 아시지요? 겉으로 드러나는 일을 강조하는 방법은 그 안에 담긴 것이 보잘것없거나 드러나는 것보다 그 가치나 품격이 월등히 떨어지는데 그것을 감추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하는 때가 있습니다.
18. 사람이 올바른 믿음을 갖고 행동하기만 하면 내가 하는 일을 다 잘되거나 내가 원한 바를 이루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세상에 관련되는 일에 한정될 것이고, 다른 사람은 빼고 오로지 자기 자신이 움직여서 얻을 수 있는 결과에나 해당될 일입니다. 다른 말로 해서, 자기 자신을 벗어난 일에는 내가 갖는 바람이 내가 원하는 그대로 이루어질 가능성을 예상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에 비교해서 이 일곱 번째 항목에서 말하는 은총이나 기도와 성사는 출발점과 종착점이 온전히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도 지금, 교회의 정신을 우리가 사용하는 말로 설명하면서 우리 사람들에게 그 출발점이나 종착점이 있지 않다고 말씀드리지만, 피부로 느끼는 체험이 있기 때문에 하는 소리는 아닙니다.
19. 은총은 하늘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개를 들면 바라보이는 하늘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말사전은 하늘을 그렇게 설명합니다만, 제가 사용하는 하늘이라는 표현은 하느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을 들어서 위로 보았을 때, 보이는 창공의 하늘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에서 오는 힘을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방법은 기도와 성사라고 설명합니다. 기도가 무엇인지 또 성사가 무엇인지 지금 말씀드릴 내용은 아닙니다. 순차에 따라서 훗날 여러분에게 설명할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20. 지금까지 천주교회 교리의 분야를 셋으로 나누어 말씀드렸습니다. 그 낱말을 안다고 해서, 내용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세 분야로 나누어서 설명합니다.
21. 이러한 교리, 하느님에 관한 것이나, 우리가 실천하고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여러 가지 사항을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방법이 8번째 문답항목부터 11번째 문답항목까지입니다.
22. 하느님과 신앙의 진리에 관한 내용은 인간에게 주도권이 있는 게 아니라 하느님에게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람이 하느님에 관한 것을 알아듣는 방법으로 교회공동체에서 사용한 교육방법이 ‘계시’입니다. 계시라는 낱말을 커다랗고 짙은 휘장(揮帳,=여러 폭의 피륙을 이어 만든 둘러치는 장막)이 드리워져 있을 때, 사람은 그 휘장의 너머에 있는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시력의 문제는 아닙니다. 능력의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한계를 넘어서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능력으로 인간에 그 신비를 알게 해주시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가리켜서 계시의 힘이라고 합니다. 라틴말에서 이 계시라는 낱말은 두 대상의 가운데를 구별하고 가리는 휘장을 걷어낸다는 뜻이 있습니다. 물론 주도권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 있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23.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드러내시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계시에 따라서 인간이 글로 기록한 것이 성경(聖經,=Scriptura)이고, 성경만큼의 권위는 없지만 그를 통해서 하느님의 힘을 삶의 모습으로 드러낸 내용들을 가리켜서 성전(聖傳, =Traditio)이라고 합니다. 이 성경과 성전으로 구별하는 두 가지, 교회의 보물가운데서, 개신교가 세상에 나타날 때 성전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없앴습니다. 그래서 개신교가 곧대고 주장하는 것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입니다.
24. 이 성경은 글이 쓰인 두루마리의 첫 글자를 따라서 이름이 지어진 것이 히브리민족의 전통이었습니다만, 지금은 그 기준을 따라 부르지 않고, 내용을 따라 그 성경의 제목을 정한 ‘고유한 명칭’이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신 시간의 전에 쓰였는지, 후에 글로 기록되었는지를 따라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으로 나눕니다. 구약성경의 첫째권은 창세기이고, 신약성경의 마지막권의 이름은 ‘요한묵시록’입니다. 천주교의 성경권수는 개신교와 셈법이 조금 다릅니다. 구약성경을 천주교에서는 46권으로 셈하고, 개신교는 39권만 셈합니다. 하지만 신약성경은 천주교나 개신교나 27권으로 같습니다.
26. 이렇게 여러 가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교리의 내용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복잡하다거나 모를 내용은 아닐 것입니다. 열두번째 문답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신앙교리시간을 통해서 저나 여러분에게 좋은 결실이 있도록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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