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三位一體)에 대하여
2015-0710 (금) 이태원
1. (지난 시간까지) 하느님이라는 이름을 두고, 그 이름으로 묘사하는 대상에 대하여, 사람이 이름을 붙인 몇 가지 특징을 담아서 ‘하느님의 속성’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이미 지난 시간들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제가 하는 말을 어떻게 알아들었고, 들은 내용들 가운에 어떤 것이 여러분의 기억에 남았는지, 또 그 내용들이 앞으로 여러분의 삶에 어떤 모양이나 어떤 영향으로 나타날지는 모르지만, 그 하느님에 대해서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내용으로 ‘하느님의 속성’을 설명했습니다. 사실 저도 말씀드린 내용이기는 하지만, 모든 것을 다 알아서 글로 쓰고, 써 온 것을 여러분 앞에서 말로 반복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하느님에 대해서 말하거나 대하는 일에 한계를 먼저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2. 앞선 시간에 (1.2)천주(=하느님)라고 구별돼 있는 항목을 두 번에 걸쳐서 말씀드렸는데, 그 내용을 마치면서, 하느님에 대한 모든 내용을 여러분에게 제가 다 말씀드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에 관한 내용은 앞으로도 여러분이 신앙인으로 살면서 끊임없이 반복할 문제이고 끊임없이 대답할 문제요 답입니다. 반복하자면 여러분이 질문할 때마다 반복할 그 대답이 달라질까요? 사람의 지성이 발달하고, 지식이나 지혜가 쌓이면 뭔가 다른 표현을 사용해서 대답의 모습을 달리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에 대한 내용이 달라진다거나, 여러분이 듣거나 말할 수도 있는 대답에 기상천외한 대답을 하게 될 것은 아닐 것입니다.
3. 그래서 앞으로 반복하게 될 질문과 대답에는 이것처럼 하느님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한 속성(屬性)문제보다는 우리가 현실에서 부딪히는 일들 가운데, 그 현실의 파도(波濤,=②맹렬한 기세로 일어나는 어떤 사회적 운동이나 현상을 비유한 말)를 넘지 못하거나 그 앞에서 우리가 무너질 때, 도대체 하느님은 내게 도움을 주지 않으시는 대상이니, 사람인 내가 그 존재가 있기나 하냐고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푸념’(=①마음에 품은 불평을 늘어놓음)들을 담을 것이고, 그 대상이 있다면 그게 나와는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인간의 오만한 자세를 담을 것입니다. 그런 내용에 부딪히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갖는 내용은 심각한 문제이지만, 그런 때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자세를 정확하게 갖추려고 노력해야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말하는 것처럼 극복하는 일이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이란 그렇게 아주 묘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4.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내용은 하느님의 또 다른 속성인 ‘삼위일체(三位一體)’에 대한 것입니다. 신앙교리에서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규정하는 4가지 요소에서, 2번째에 해당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제가 2번째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게 2번째의 중요성이 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이 삼위일체는 하느님의 존재를 말하는 신앙의 내용과 함께 하느님이신 분의 속성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그 하느님이 인간에게 모습을 드러내실 때 우리가 알아듣는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삼위일체라는 표현을 우리말 사전에서는 ‘②⦗그리스도교신앙용어⦘성부인 하느님과 성자인 예수와 성령(聖靈)을 동일한 신격(神格)으로 여기는 교의(敎義)’라고 설명합니다만, 사실은 하느님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는 것은 사람이 잘 알기 때문도 아니고, 또 사람의 동의(同意)를 바라는 것도 아닌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하느님에 대해서 삼위일체라고 인정했기에 선언되는 ‘신앙의 진리’는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서, 하느님께서 당신을 인간에 드러내셨다고 하여, 계시(啓示)진리라는 말을 씁니다. 인간의 동의여부와 상관없이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인간에게 드러내신 것이라는 뜻입니다.
5. 삼위일체에 대한 첫 번째와 둘째 내용입니다. 교리문답22-23항.
사람이 하느님의 대해서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혹시 사람이 자신을 가리켜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스스로를 세상에서 최고의 존재로 여기는 것은 그렇다고 생각해주어도, 자신이 아는 것을 모든 지식의 최고요 완벽한 것이라고 우기지는 않을까요? 사람에게는 이러한 자신감이 좋은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만, 그것도 분야(分野-하느님 영역/인간의 영역)를 잘 구별해야 하고, 사람이 과연 모든 영역에서 최고의 존재인지는 한번 묻고 대답을 한 다음에 또 물어야하는 질문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 신앙에서 교리의 내용으로 표현하는 내용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인정할 내용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그렇다고 인정하거나 고개를 끄덕일 내용은 사람이 자기 눈으로 직접 보거나 배율이 아주 높은 현미경이나 전파망원경등 감각의 수단으로 확인한 것들에 대해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존재나 내용을 증명할 수 있거나 경험한 내용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전부일 텐데, 신앙에서 말하는 우리가 믿을 내용으로 표현하는 것들은 ‘인간의 호응’이나 사람들이 발명했다고 하는 그런 기구들을 사용해서 존재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똑같은 이론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6. 천주(=하느님)은 ‘몇’이냐고 묻고, 대답은 ‘하나’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이 표현된 배경에는, ‘천주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고 주장하던 이론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러한 과거의 사실들’을 배경으로 하는 얘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전에는 천주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고 말한 내용들이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내용인데, 우리 그리스도교신앙에서는 역사에서 그런 주장들이 있던 때 주장하던 내용들과는 달리, 그 하느님은 ‘하나’라고 선언하고 믿을 것을 강조하고 권고한다는 것이 이 교리문답의 내용이고 선언입니다. 천주를 여럿이라고 인정했을 때, 등장했던 논리의 한 가지는 인간의 삶과 비교하여 누가 더 강하냐? 누가 더 먼저 생겨났느냐 하는 상하관계, 강약의 관계를 묻는 내용도 포함할 수 있습니다.
7. 이 예비자교리에서 자세하게 설명할 내용은 아닙니다만, 세상을 창조한 대상으로 설명하는 성부(聖父)의 힘이 가장 강하고, 인간으로 오시어 세상에 사시다가 십자가에서 그 목숨을 마치고 죽은 성자(聖子)는 불완전한 하느님이었다거나 열등한 하느님이었다는 주장이 담긴 소리도 있었고, 성신(=성령)이 세상에 오신 것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승천 이후에 오신 것이니, 성신은 성부나 성자에게 종속된 신(神)이라는 이론들이 한 때는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이론들입니다. 이러한 이론들은 ‘사람의 삶을 기준’으로 ‘하느님’을 보려고 했을 때 생긴 현상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일에는 이러한 한계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인간은 태어났으니 언젠가 세상에서 죽음으로 그 존재의 모습을 다하고 사그라져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 존재의 입장에서 시작도 없고 마침도 없는 분으로 신앙에서 설명하는 하느님을 어떻게 알아듣겠습니까? 알아들을 수 없지요. 마치도 하루살이가 내일이나, 내년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설명하지도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8. 하느님에 대해서 이렇게 다양하게 인간의 사정을 적용하여 물었던 시도들은 기원 후 400년경부터 1545년, 트리덴티노 공의회가 열리기 전까지 있었던 신앙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었습니다. 교회의 역사를 다루거나 지금 이렇게 말하는 내용들을 그대로 반복할 시간적인 여유나 필요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성신(=성령)은 성부나 성자에게 종속된다는 내용으로 시작했다가 갈라진 그리스도교회가 1054년의 ‘동방정교회’였고, 처음부터 신앙의 내용에 차이가 나기 때문은 아니었지만 로마에 있는 성베드로대성당의 증개축에 관한 내용과 얽힌 돈에 관련된 사항으로 1517년에 분열된 것이 요즘 우리가 아는 기독교 다른 말로는 프로테스탄트교회입니다. 이렇게 시기상으로 분열된 개신교에 관한 내용까지 합쳐서, 가톨릭교회 혹은 천주교회에서 그 당시의 여러 가지 상황들에 대하여 나온 대답이 바로 삼위일체에 나온 사항들 가운데, 교리문답22번의 천주는 몇이냐는 질문과 대답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교리의 대본(大本)으로 사용하는 ‘트리덴티노 요리문답’이 나온 다음에 갈라지거나 생긴 종파로는 ‘임금의 혼인문제 때문에 생긴 성공회’도 있습니다만, 지금은 다룰 대상은 아닐 것입니다.
9. 세상의 모습에서는 그리스정교, 가톨릭(=천주교), 프로테스탄드(=개신교,-이후에 갈라지거나 성립된 교회들도 모두 개신교로 부른다)로 갈라졌으나 그 각각에서 다르게 대하고 다르게 설명하는 하느님은 말 그대로 그렇게 설명하는 것만큼 다양하거나 여럿의 천주나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은 그렇게 불러도 하나라는 것이 신앙의 기본진리입니다.
10. 하느님에 대해서, 존경이나 공경의 의미를 담아, ‘분’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올바른 표현은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에 사는 우리가 보거나 대할 수 있는 논리를 따라 설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존경의 표현이나 의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상황을 그대로 적용해서 하느님을 설명하려다보니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잘못 알아듣고 마치도 그 하느님이 여럿으로 구별되어 있는데, 우리가 하나만 받아들이는 것 같은 잘못된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용어가 잘못되면, 그 용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오해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11. 하느님(=천주)은 하나이시지만, 사람이 하느님을 한꺼번에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 하느님께서 인류역사에 모습을 드러내신 순서에 따라 인간은 다양한 이름으로 그 하느님을 부릅니다. 그리고 그 순서에 따라 하느님은 마치도 아주 다른 대상으로 생각하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 이름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신(=성령)의 셋입니다. 이 셋은 독립적이거나 대립적인 실체가 아니라, 사람의 사물을 알아보고 대할 수 있는 능력이 드러내는 한계 때문에 나누어보는 것입니다. 사람이 보고 구별하기에는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가리켜 성부(聖父)라 부르고, 세상을 구원하시려 지금의 이스라엘 땅에 2000년 정도 시간 전에 인간인 동정성모마리아를 통해서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하느님을 성자(聖子)라 부르고, 그 성자의 수난과 부활, 그리고 승천 후에 교회공동체를 형성하게 하시며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신 영적인 하느님을 가리켜 우리는 성신(聖神,=성령(聖靈)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의 지성과 한계에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독립적인 실체로 설명할 능력만 있지만, 사실은 하나이신 하느님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말하는 것이 ‘삼위일체, 동일본성이면서 세 위격 하느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12. 하나이신 하느님이 인간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실 때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세 위격으로 드러난다는 것도 사실은 사람의 인정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말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안타깝지만, 그 내용은 사람의 지식이나 지혜가 닿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그 어떤 동물보다도 뛰어나고 최고지성의 존재로 가졌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도 없는 계시진리의 내용입니다.
13. 이렇게 하나이신 하느님을 셋으로 구별했습니다만, 이 하느님이 인간에게 드러나는 모습에 따라 사용하는 표현이 교리문답24번에 나오는 내용이고, 앞서 말씀드린 상하관계나 종속에 대한 내용이 교리문답25번의 내용입니다.
14. 이러한 하느님의 특성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의 지성이나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닙니다. 사람의 지식으로 설명하려면, 어쩔 수 없이 하느님에 대해서 우리는 선후관계나 상하관계를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인간이 갖는 한계이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한계입니다. 그것을 벗어난 내용을 인간의 지성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때는 인간이 아니라, 신(神)이라고 해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15. ‘하느님을 셋’이라고 말하면, 인간의 지식이나 지혜는 어쩔 수 없이 그 등장한 시기에 따라 능력이나 위치를 다르게 보게 됩니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 이외에 다른 적당한 표현이 없기에, 하느님을 우리 인간이 정확하게 알아들을 재간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이면서 셋, 셋이면서 동시에 하나인 하느님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세상에서 우리가 대하거나 점유하는 위치에 따라, (자녀에 대하여)아버지나 어머니, (동시에 어른에 대하여)아들과 딸, (직장과 관련해서 생기는 또 다른 직책인) 사장이나 사모님의 표현으로 하느님을 설명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16. 하느님에 대해서 상하관계를 묻는 것은 인간의 태도입니다. 먼저 생기거나 나중에 생겼음을 말하고 싶은 것도 인간의 태도이고, 그 능력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절대로 같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도 인간의 태도입니다.
17. 사람들이 어떤 표현을 사용하면 하느님을 정확하고 제대로 설명하는 것이고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겠습니까? 문답25번의 내용에 나오는 대답은 그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담는 표현입니다. ‘①높고 낮음도 ②먼저 계시고 후에 계심도 없어 도무지 온전히 같으사 한 가지로 다만 한 천주시니라.’
18. 사람의 말로 하느님의 삼위일체를 설명하려고 애씁니다만, 사실 우리가 이렇게 설명해서, 우리들 각자에게 생기는 효과는 무엇일까요? 교리와 신앙의 내용이고, 우리가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 내용에는 영향을 주겠지만, 속된 표현으로 하느님께서 인류의 역사에 그렇게 다양하게 나타나신다는 것이 우리들의 구체적인 삶에 어떤 영향일지는 사실은 저도 모를 일입니다. 괜히 쓸데없이 인간이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하느님에게서 도망치려고 하면서 그 근거로 하느님을 다르게 보는 태도들이 적용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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